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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흐 함 Jan 07. 2024

무엇이 결정을 주저하게 만드는가

서로 만날 듯 말듯한 결과물과 과정, 의도

이 글은 여러 우물을 파고 있는 구불구불한 커리어를 가진 함의 이야기이다.


비어있는 조각

함이 커리어에 대한 막막함을 느낀 지는 꽤 되었다. 원하는 것이 없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꽤 뚜렷하다. 다만, 그것이 ‘의사’ ‘디자이너’와 같은 명사가 아니라 ‘~하는 사람’이라던가, ‘~단계에 ~하는 일’이다 보니, 그 일을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찾는 것이 어려웠다. 사실 어디서 그 일을 하는지 찾았더라도, 함이 현재 가지고 있는 커리어라던가 학위라던가 네트워크와는 거리가 있어, 어떻게 그 원하는 것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야 할지가 고민이다. 혹은 그 일이 필요하지만, 이 일만 하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다던가,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 부분이라던가. ‘존재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 준다는 <이키가이 ikagai>의 눈으로 보면, 함이 원하는 일을 이러지 저리 돌려보고, 각각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도, 조각 하나씩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는 없으니 있는 것을 최대 활용해서 원하는 것에 도달하는 길을 굴려보고 있다.


이키가이에 도달하기 위한 조각 찾기


보이는 방식에 따라 불려지는 이름

설계에서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함은 여전히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당장 직접 공간을 직접 만들고 운영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기에 일단은 공간을 공부할 때 했던 것처럼 다이어그램으로 본인의 생각을 그려나갔다. 공간보다는 다이어그램에 너무 진심이었는지도 모른다. 함은 일러스트레이터로 불렸다. 예상했던 방향과는 달라 의아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공간이 어떤 방향성으로 쓰여야 하는지, 어떤 협력을 만들어야 내는지를 연구하고 소통하는 일을 원하는 스튜디오에서 하게 되었으니까.



스튜디오 밖에서의 함 본인은 일러스트레이터로 인지되는 일이 잦아졌다. 함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더 멀어지게 될까 봐 두려워졌다. 그 간극을 좁히고자 건축가 교수님이 계시는 곳에서 좀 더 현실적인 사회 이슈를 기반으로 공부하는 석사를 하였다. 실현할 수 있는 규모 내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미디어, 공간 설치 등으로 결과물이 나왔다. 영상이 결과물이다 보니, 영상 일이 들어왔다. 하고 싶은 것은 여전히 공간이었다. 여러 공간 관련 작업을 기회가 닿는 대로 하였다. 잡았던 기회는 공간 전체를 설계하는 일보다는, 오브제를 설치하여 공간을 임시로 바꾸는 일이었다. 오브제 디자이너 혹은 아티스트로 불렸다.



무슨 일 하신다고요?

함이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공간 혹은 건물의 형태를 만들기 전, 윤곽을 정하고 만드는 방식을 고려하고 운영방식까지 기획하는 일이다. 잘 쓰이는 공간은 그에 맞는 기획과 협력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믿음에서다. 함이 이 일에 대해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보았다. 한국에서 이 일을 하는 곳은 보통 젊은 건축 사무소였다. 그리고 이 일을 필요로 하다고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보이는 결과물이 미미하기 때문에 아무도 지불하고 싶어 하지 않는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 일은, 어차피 건물을 만들 건축가에게 할당된다고 들었다. 건축사무소의 추가 소득이 될 수도 있기에 사무소의 영역을 확장하여 이 일을 따오기도 한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이 일이 건축 사무소의 주 업무는 아니라고 한다. 많은 건축 사무소의 주 업무는 건물을 만드는 것 자체인, 설계와 때로는 시공까지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함이 하고 싶어 하는 일만 할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혹 고용한다고 해도, 설계를 할 수 있는 건축가를 고용하지, 함과 같은 디자이너는 고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앞서 <영웅의 여정보다는 몸부림과 설렘>에서 언급했듯이, 함이 하고 싶어 하는 그러한 일을 하는 회사가 존재하였고, 더 놀랍게도 그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회사는 함이 꿈꾸던 바로 그 일을 하던 곳이었다. 교육과 같은, 공간에 필요한 프로그램을 구성하기도 했고, 그에 따라서 필요한 공간의 용도, 크기, 운영 방식, 예산 등의 윤곽을 팀과 함께 만들기도 했다. 선행연구*을 하였고, 관련 이해관계자와 인터뷰와 워크숍을 하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공감을 만들어 냈다. 그 규모가 때로는 단지가 되기도 하고 도시 전체가 되기도 했다. 현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보다 더 나은 접근 방법이 필요한지를 찾았다. 기반을 탄탄하게 하여 실제 공간으로 구현할 생각을 하니, 설레었다.



다만, 함이 하는 일의 클라이언트는 보통 공공기관이나, 지자체로, 실현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함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정치적 요소들도 컸다. 그렇기에 제안한 그대로 구현되는 경우는 드물다. 보이는 결과물이라고는 보고서밖에 없었기에 만든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큰 무기인 디자이너로서 무엇을 만들었는지 설명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함이 다녔던 회사가 위치한 영국에서도 이 일을 부모님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로 알려져 있거니와, 한국에서는 더더욱 익숙하지 않은 업무와 과정이었다. 설명이 어려우니, 소통도 어려웠다. 알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함은 자꾸 들었다. 자신감이 낮아졌다. 함은 이 일을 너무 좋아했지만, 한국에서 비슷한 일을 동료를 찾기도, 이 커리어를 계속 쌓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비슷한 분야를 만나기도 개인적으로 확장하기도 어려워 자꾸 고립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선행연구는 최신의 이론이나 기술 수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의 동향, 나와 비슷한 문제를 다른 연구자들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알아봄으로써 연구자는 동일한 연구의 반복을 피하여 연구의 독창성 획득할 수 있으며, 연구 활동과 관련한 전문 지슥 습득하고 연구 주제를 더욱 구체화할 수 있다. (출처 - 경희대학교 중앙 도서관)



함의 이런 고민에 “너의 하고 싶은 직업에 네가 그냥 이름을 붙여” “다른 사람에게 꼭 설명해야 해?”라고 하더라. 굽히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이었으리라. 함이 조직 내에 있을 때는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조직 밖에서는 함의 일을 소통할 수 없으면 네트워크나 니즈를 찾기 어려워 고립되는 것 같았다. 적어도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함의 경우에는, 규모가 너무 커서 그리고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그조차 쉽지 않았다. 또 다른 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본인이 정의하려고 하기보다 사람들이 알아서 부르더라고요.”



공유할 수 있음 = 닿을 수 있음

함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학교 수업도 학생들이 수업에서 진행한 내용도 함에게는 너무 신이 나고 뿌듯한 일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수업 내용은 수업을 들은 학생들 이외에는 알기 어렵다. 게다가 수업 과정은 공유가 쉽지 않다. 예전에 함의 은사님이 학생들의 결과물로 과제 전이나 책을 만드는 것은 어떠냐고 추천해 주셨다. 대부분의 결과물이 디지털이었기에 웹사이트로 만들었다. 웹으로 만들었기에 사람들에게 수업 결과물과 과정을 간단하게 공유하기도 용이했다. 은사님에게도 기쁜 마음으로 링크를 보내드렸다. 비슷한 방향성의 워크숍 기회가 생겼다. 함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었다.



전통 공예라는 길고 긴 길을 걷고 있는 모습에 만날 때마다 작업도 본인의 작업에 대한 설명도 아름다워지는 함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전통공예는 30년을 수련하고 그 후에서야 조금씩 자신만의 영역을 개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사실 그 이후에도 인간문화재로 선정되는 사람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바라고 이 길을 걷기에는 너무 지친다는 것이다. 친구는 묵묵히 한 걸음씩 내디디면서 과정에서 자신만의 방법론을 발전시키면서 영역을 키워나가고 있다. 천을 다루기 때문에 패션으로도, 인테리어도 접근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많은 협업을 통해 가능성을 모색하고 싶다고 하였다. 함은 친구에게 “네가 가고 싶은 업계의 결과물을 만들어서 보여줘 봐. 패션 업계를 가고 싶으면 패션 아이템을 만들고, 인테리어로 가고 싶으면 인테리어로 결과물을 만들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내뱉고서 오래 전 선배가 함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네가 일하고 싶은 업계가 어디야?” 정작 함은 일하고 싶은 업계에 대한 생각을 놓치고 있었다.



건축의 길이 가고 싶어서, 남들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꾸준히 한 발씩 건축 설계의 길을 걷고 있는 멋진 지인에게 어떻게 설계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냐고 물었다. 하고 싶어서 공간을 혼자 만들어보고 기사 자격증도 땄다고 하였다. 너무 당연한 사실인, 보여주는 결과물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포트폴리오에 “저에게 맡기면 이 정도는 뽑아냅니다.”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는 또 다른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과정이 곧 결과‘라는 믿음

사실 함이 고민하는 이유는 함의 관심사는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이며, 혼자 뚝딱뚝딱 만들기에는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함은 과정이 곧 결과가 된다고 믿는다. 다만, 함이 어려워하는 이유는 과정은 종종 관심사가 아니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 과정이 공유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하지 않은 주제라면 더욱더. 함은 본인의 결과물이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누구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물었다.



가고 싶은 목적지는 저기인데, 그럼 그것으로 돈을 벌고, 전문성을 찾는 (가능하면 가까운) 방법을 찾아보자



전통공예라는 긴 길을 가고 있는 함의 아름다워지는 친구를 떠올렸다. 함이 하고 싶은 일에 도달하기 위해 함만의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고 불확실한 길이지만, 했다는 사실에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 혹은 안 하면 후회할 것이 무엇인지 본인의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함은 여전히 앞으로 나가기를 계속 주저한다. 자꾸 그 전의 의도와 다르게 소통된 기억이 떠오른다. 마음속 언저리에 계속 남아있는 공간 설계 대한 미련이 마음을 붙잡는다. 함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는, 설계를 빼놓고서는 이야기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설계의 길을 가자니, 하고 싶은 일과 멀어질 거 같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길 위에 설계가 닿을 듯 말 듯 놓여있어 함의 마음이 자꾸 간질간질하게 만든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성공하지 못해도 후회는 안 해요. 내가 하고 싶은 건 문학이었는데 할 수 없이 사업을 했다? 사업에서 대성하더라도 후회해요. ‘그때 문학을 했어야 되는 건데’하고. 난 미술사에 도전했던 게, 지금까지 나의 기쁨이고 보람인 거지.” - 유홍준 교수, 롱블랙과의 인터뷰에서



피트 데이비드가 <전념>에서 말하는 ‘헌신’에 어서 진입하고 싶다고 함은 생각한다. 이 고민의 과정 헌신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주겠… 지…? 라면서.



“선택하고, 행동하고, 전환하고, 공표하는 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면, 헌신의 결심이 내 정체성에 선명하게 새겨진다. 대개 이쯤 되면 그때까지 남아 있던 ‘후회에 대한 두려움’도 전부 사라진다. 나의 외부에서 헌신을 선택하고 그것이 잘 맞을지 고민하는 대신, 그것을 내 안으로, 나와의 관계 속으로 가져와서 내 정체성의 일부가 되게 한다. 두려움은 희미해진다. 이제 헌신은 선택이 아니라, 내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_167p 피트 데이비스 <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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