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되지는 않아도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견뎌내야 할 시련의 정도
이 글은 여러 우물을 파고 있는 구불구불한 커리어를 가진 함의 이야기이다.
2005년부터 2018년까지 방영된 무한도전은 대한민국의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지만, 함은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짤막하게나마, 몇 클립을 보았는데, 그중에 종종 생각하는 노래가 있다. 바로, 이적과 유재석이 부르던 ‘말하던 대로’다. 이 노래는 만 39세의 유재석이 본인의 이십 대 무명 시절 이야기를 만 37세의 이적과 만든 노래다. 미친 듯이 달려든 적 없는 본인을 다시 일으켜 세웠고, 그리고 말하는 대로 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리고 생각한 대로, 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함은 국민 프로그램의 국민 MC 유재석과 오랫동안 좋아하고 있는 가수 이적은 이런 이야기를 할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젊은 날의 시련이 있었기에 현재의 그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수긍이 갔다. 그렇게 본인들의 여정을 회고하는 그들의 현재 모습이 부러워진 동시에 현재의 내 모습에는 조급함이 생겼다.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은 작가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이 정리한 개념으로 여러 영웅의 이야기에서 유사하게 보이는 패턴을 설명한다(이 모델에는 비판이 많지만, 이해하기 쉬우니, 일단 이 모델 자체에 집중해 보자). 평범한 세상에서 살던 주인공이 미지의 세계에서 시련과 고난의 모험을 겪으면서 탈바꿈을 한다. 그리고 원래 살던 세상에 선물 혹은 깨달음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함이 세미나나, 강연 혹은 목소리를 내는 사람(=어느 정도 본인의 자리를 잡았기에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에게는 항상 이야기될 만한 시련과 모험이 있었다. 그리고 강연장에서 그 이후의 깨달음을 전달하는 것을 보았다. 대단한 영웅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려면 시련과 모험이 충분해야 할 거 같았다. 함은 본인이 생각하기에 본인의 시련과 모험은 충분한지 의문이었다.
시련과 고민은 더 매몰차야 할 것 같고, 더 도전하고 험난한 과정을 뚫어야만 할 것 같았다. 함은 누구처럼 100번이나 퇴짜 맞은 적도 없고, 눈물을 마를 때까지 고통스러운 가족의 비극을 겪은 것도, 며칠을 배곯을 정도의 가난을 겪은 것은 아니다. 이 정도면 함은 본인이 배가 부른 사람은 아닌가 싶었다. "그런 세찬 환경도 아닌데 왜 그것밖에 못 해? 충분히 한 거 맞아?"라며 함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함은 이미 불태울 만큼 불태웠고, 지칠 대로 지쳤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들은 이미 많이 도전도 해본 것 같은데 여전히 충분치 않은 것인가? 동시에 "다들 어떻게 견딘 것이지?" 싶었다.
충분히 도전하고 시련하지 않았다고 하기는 함은 억울했지만, 함의 성취는 본인이 보기에 너무 보잘것없어 보였다. 여전히 무언가 도전하려고 하면 한없이 자격이 부족한 것이 많았다. 반면, 함의 주변에서는 하나, 둘 본인의 일을 10년 차, 그 이상에 접어들면서 본인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랫동안 한 업계에 있다 보니 그러더라고” 그 자리에 오기까지의 여정을 회고하며 자리 잡은 듯한, 여유로운 얼굴의 친구가 말했다. 안정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에 함의 고민은 영웅이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 아닌 단순 칭얼거림 같았다.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난 함은 한 치 앞도 길이 보이지 않아 머릿속이 일렁일렁 복잡해졌고 속도 울렁거렸다. 뜬금없게 함의 어머니, 생각만큼 배려 깊은 이 씨가 아침마다 요구르트와 냉동 블루베리를 넣어 갈아주던 블루베리 요구르트가 생각났다. 쉬워 보여서 만들어봤는데, 그 맛이 전혀 아니었다. 레시피를 핑계로 함은 이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잘할 거라고, 잘해왔다고 이 씨는 함에게 말했기 때문에 함은 그런 토닥임이 듣고 싶었다. 칭얼대고 위로받고 싶었다.
전화기를 붙잡고, 전공을 살려 대기업을 여러 해째 안정적으로 다니고 있는 함의 동생에 비해 본인은 왜 이렇게 방황하는지 모르겠다며, 전화를 붙잡고 한탄했다. 이 씨는 딸을, 이야기를 듣더니, 현실적이고 안정적인 길을 놔두고,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은 선택해 온 것은 너라고 말했다. “지금도 안정적인 방향이 있는데, 그렇게 안 할 거잖아? 너 하고 싶은 거 할 거잖아” "응 그러네."
덧붙이자면, 함이 발견한 이 씨의 블루베리 요구르트의 비밀은 요구르트 선정이었다. 이 씨는 깊은 맛의 조합을 찾기 위해 아무 요구르트를 쓰지 않았다. 가장 깊은 맛을 내는 요구르트를 찾았는데, 그 맛은 여러 요구르트와 조합해 본 후의 결과였다.
함은 막연하게 회사에 다니면서, 학교에 강의도 나가고, 본인의 일도 하고 싶었다. 함 본인의 일을 하면서 작은 프로젝트를 직접 실험하기도 하고 회사에 다니고 싶었다. 큰 커뮤니티에서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예상치 못한 것들을 할 기회를 접하고 그를 통해 배운 것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었다.이 순환과 균형은 이상적으로 보였다. 동시에, 의미 있는 그리고 더 나아가 함이 관심 있고 공감하는 일을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물론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디자이너의 접근 방식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도시 기반으로 대안의 기술에 대해 연구하고 기획하고 싶어”라고 함은 말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어디서 그런 일을 하는지는 막연했다. 함이 디자이너로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상대방은 뜬금없다거나 아리송한 표정을 했다. 사실 아리송한 것은 함도 마찬가지였다.
놀랍게도 함이 상상만 했던 회사는 실제로 존재하였고, 더 놀랍게도, 함은 지난 3년 반 동안 그 꿈의 직장에서 함이 원했던 일을 하였다. 회사에 다니면서 감히 꿈에서만 생각하여 말로는 표현조차 하지 못했던,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을 벌써 3년째 하고 있다. 디자인을 시작할 때, 대학생일 때부터 하고 싶었던, 당시에는 시도했지만, 접근이 쉽지 않아 포기했던, 초등학생들과의 도시에 관한 워크숍도 감사한 기회와 인연 덕에 지난 4년간 운영했었다.
함과 함께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함의 씩씩한 친구가 말했다. “넌 하고 싶은 거 다 해 오지 않았어?”
불안 불안하지만, 함은 예상치 못한 방향과 방법으로 어찌어찌 생각한 대로 된 듯하여서 함은 스스로 놀랐다. 하지만, 어쩌다가 걸린 운 덕분에, 그리고 너무나도 감사한 분들 덕분의 여기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 운은 언제 다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함은 미치도록 불안하였다. 앞으로도 그러할지 전혀 확신할 수가 없었고 여기까지 온 것도 본인의 온전한 힘으로 이룬 것 같지 않아서 더 불안하였다. 상상 속 회사를 찾아다니던 4년 전처럼, 함은 여전히 안개가 너무 짙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의 조각배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서 있는 바닥조차도 출렁거리며, 안갯속에는 방향을 잡을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듯했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아, 조심스레 배의 방향도 바꿔보고, 소리도 질러보고, 노도 저어 본다. 지치면 안갯속에 뭐가 있을지 상상도 해보고, 안개를 뚫고 나가면 뭘 제일 하고 싶은지도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다시 배 속에 던져볼 것이 있으면 닿지 않더라도 안갯속으로 돌멩이라도 던져보고 귀라도 기울여 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4년 전의 상황에서의 함 본인의 몸부림들을 되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전과, 그 전전의 몸부림도. 수많은 몸부림이 모여서 현재에 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동일한 상황에 놓이더라도 함은 아마 똑같은 선택을 할 듯하다. 이렇게 헤매고 불안할 걸 뻔히 알면서도. “당시엔 최선의 선택이었는걸”
몇 년 전 공항을 잘 못 가는 바람에 비행기를 놓쳐버렸던 함에게, 항상 핵심을 찌르는 말을 하는 함의 거침없는 친구가 그 당시에 이렇게 말했다. “그냥 그럴 운명이었던 거야(its meant to be)” 함이 당시에 비행기를 놓쳤던 것은 다른 운명을 만나도록 하려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은 계획이었던 것일까.
누군가의 그런 계획 때문에 함은 앞으로 길이 불안하면서도 설렘을 연료로 앞을 디뎌볼 용기가 난다. "나는 이때 이런 방식으로 이런 모습으로 설렐 거야"라며, 본인의 설렘을 본인이 직접 계획한다면 그것은 설렘이 될 수도 없을 거다. 안갯속에서 뭘 발견할지, 안개가 어떤 방식으로 바뀔지는 모르지만, 그 짙은 안갯속에서도, 작은 조각배 속에서의 함의 몸부림과 상상은 그럴 운명이고 또 그런 때였던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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