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흐 함 Dec 09.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이너

성공한 디자이너, 비슷한 것이 되고 싶었습니다만 그게 뭐죠?

이 글은 여러 우물을 파고 있는 구불구불한 커리어를 가진 함의 이야기이다.

더불어, 신인아 디자이너의 번갯불 토크 <초봉 3000만 원 디자이너였던 내가 이 세계에선 월 수입 800만 원 스타 디자이너?>를 듣고, 함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디자이너라면 적어도

함에게 모교에서 수업해 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은 함이 남몰래 꾸던 꿈이었다. 대학교 시절의 수업을 하시던 교수님들이 멋져 보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졸업한 후 10년 가까이 된 후의 학교가 궁금해서였을 수도 있고, 졸업하게 나와보니 함이 학교에서 배워온 디자인과는 다른 디자인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이 꿈을 남몰래 꾸어야 했던 이유는 함이 봐온 교수님들과의 모습과 함의 모습은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강단에 서려면 왠지 미디어에 여러 번 소개된 스타 디자이너이거나, 본인의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거나, 누구나 다 아는 그런 기업을 다니고 있어야 할 거 같은데, 함은 어디에도 해당이 되지 않았으니까.



성공이라기보다는, 막연하게 이런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라는 환상이 있어요.  어릴 때부터 감각이 비범했고, 왠지 멋있는 옷을 입고,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작업을 하고. 집에 항상 유명 디자인 체어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 신인아 디자이너의 번갯불 토크 <초봉 3000만 원 디자이너였던 내가 이 세계에선 월 수입 800만 원 스타 디자이너?>



함이 수업한 지 3년이 지나, 마냥 신입 강사만은 아니기에 이제 와서 그가 고백하기를, 당시 함은 지난 몇 년간 작은 스튜디오에서 말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프리랜서로 생계를 근근이 잇다가, 강의를 시작했을 당시 석사를 막 졸업하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밥벌이를 하는 회사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였다. 그전에 하던 일과는 꽤 다른 일을 하고 있어, 매번 상사에게 혼이 나고 있었기에 함은 잔뜩 움츠려 있었다. 그 당시의 본인 모습과 함이 생각했던 대학에서 강의하는 선생님들의 이미지 간극에서, 신입 강사 함은 선생님으로서의 수업에 필요한 신뢰를 쌓지 못할까 봐 조마조마하며 수업을 시작하였다. 사실 함이 생각한 디자이너의  성공한 모습이 함이 특별히 원하는 상도 아니었다(물론 절대 거절하지는 않겠지만). 그런데에도 함은 그렇지 못함에 강단에 선 본인이 그 상에 미치지 않는다면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였다. 동시에 왜 성공한 디자이너의 이미지들은 왜 비슷비슷한 모습인지 다른 것은 없는 것인지 불만이었다.



디자이너의 마법의 지속가능성

각 업마다 대표되는 이미지가 있듯이, ’ 디자이너‘라 하면,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르는, 다음과 같은 모습을 가져야만 할 것은 압박감이 한번 스스로 있다. “본인의 일에 열정과 자신감을 가지고 번뜩이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사람. “ 이 사람은 영감을 받아 후루룩 휘리릭 어느 날 갑자기 멋진 안을 가지고 온다. 신데렐라의 마음을 읽고 늙은 호박을 호박 마차로 변신시켜 신데렐라의 니즈를 마법처럼 충족시켜 준다. 정책, 건축, 경제, 컴퓨터공학 등등 각 분야가 뒤섞여 있는 일하던 함의 일터에서도 디자이너에게 이러한 마법사의 모습을 기대하는 모습을 많이 발견하였다. 이것은 다른 사람도 디자이너에게 그러한 기대를 할 뿐 아니라, 디자이너 본인도 그러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습이 깨지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는 않지만.


디자이너가 마법을 부리는 과정



이러한 멋진 마법사 같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함이 보기에, 디자이너는 진로를 선택할 당시, 의사나 법조인과 같이 환영받는 업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디자이너가 받는 대우와 일하는 환경을 떠올렸을 때, 화려한 모습과는 정반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과로사로 사망한 디자이너라던가 밤을 새웠다는 디자이너도 일상에서, 기사에서도 함은 쉽게 볼 수 있었다. 불타오르는 디자이너의 열정을 반영하듯, 함이 디자이너의 모습을 떠올리면 많은 디자이너가 젊은 모습을 하고 있다. 희한하게도 그 젊은 디자이너들은 중년이 되기도 전에 불타버려 사라진 듯하다. 10여 년 전에 졸업한 함의 졸업 동기들을 생각해 보았을 때, 현재까지 디자인하는 사람은 몇 되지 않더라. 환상적인 디자인을 요구하지만, 작업 환경은 환상적이지 않다. 정말 마법처럼 기대하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마법 뒤에 복잡한 사정

디자이너는 지식 노동자다. 함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디자이너는 재료나 물리적 노동이 아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아이디어와 그를 현실화시킬 그림(설계, 밑그림)으로 돈벌이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한데, 이 아이디어라는 것은 애매하다.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아이디어로는 실제로 어떤 결과물을 받게 될지 클라이언트는 알 수가 없다. 다행히 신데렐라는 요정 대모의 단 한 번의 마법으로 만들어진 호박 마차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모든 클라이언트가 첫 번째 호박 마차를 마음에 들어 할지는 미지수이다. 첫 번째 호박 마차가 신데렐라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요정 대모는 다시 한번 마법을 부려할 것이다. 신데렐라의 마음에 드는 호박 마차를 나올 때까지(혹은 대모가 더 이상 못하겠다고 할 때까지).



매번 완성된 호박 마차를 보여주기에는 시간과 자원의 무리가 있다. 대신, 디자이너 대모는 어떤 호박 마차를 만들지 스케치나 3D 렌더링을 보여주며 신데렐라와 어떤 마차를 만들지 의논한다. 너무 새로운, 즉슨, 아직 검증되지 않은 대모의 아이디어에는 신데렐라 클라이언트는 주저할 것이다. "이건 좀... 너무…." 하지만, 대모가 너무 차별성 없는 디자인을 제안한다면, 파티에서 조금이라도 눈에 띄는 차별성 있는 호박 마차를 원했던 신데렐라는 이왕이면 가장 저렴하게 호박 마차를 만들어줄 대모에게 갈 것이다. 대모는 익숙함과 차별성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클라이언트에게 마법으로 여러 안을 선보인다. 첫 번째 안, 두 번째 안, 세 번째 안... " 여러 안들을 만들어내는 마법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왜 묻지 않는 것이지?"라며 함은 궁금했다. 마법에도 분명, 대가가 있을 테니까. 요정 대모 뒤에 수많은 미니온들이 있거나, 대모가 미리 며칠 밤을 새워왔거나, 대모의 체력을 무장시킨 마법의 묘약이라던가... 그렇다면 묘약을 구매할 에너지와 비용은 어디서...? 열정...? 열정은 무한히 가능한 거야?



열정은 디자이너가 오늘날 자본주의의 가장 이상적인 노동자로 만드는 요소다. 디자이너는 유연하게 일하고 언제나 일하며 멀끔하게 입고 노동조합을 만들지 않으며 주문한 대로 영감 받는다

-  루벤 페터 (Ruben Pater)의 Caps Lock



함은 디자인이 활용되는 방식에도 의문이었다. 신데렐라가 화려한 호박 마차를 타고 갔다고 해서, 심성까지 바뀔 리는 없지만, 클라이언트는 마치 그럴 것이라고 종종 기대하는 듯하다. 디자인으로 화려하게 포장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종종 여겨지는 것처럼. 혹은, 신데렐라가 호박 마차로 성공적으로 무도회에 입장을 했다고 들은 옆집도 본인에게도 호박 마차가 있다면 동일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며 요정 대모에게 호박 마차를 주문한다. 하지만, 과연 옆집 클라이언트에게도 과연 호박 마차가 필요한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오히려 이것저것 고려했을 때, 호박 자전거나 고양이 버스가 더 적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호박 마차가 정말 필요한지 다시 생각해 보자'라고 것은 추가 비용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클라이언트의 주문은 "호박마차"에만 집중되고, 디자이너는 왜 호박 마차를 필요한지 목적을 잃어버린 채, 남은 시간과 비용으로 호박마차 완성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사실 요정 대모 디자이너의 진짜 역량은 주변에 있던 저렴한 자원인, 호박을 적절하게 이용해 신데렐라에게 필요한 가장 효과적인 운송수단을 만들었다는 그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었을까 함은 생각한다. 하지만, 요정 대모의 디자인 스튜디오는 '호박마차'로 유명해져 버려 다른 것들은 잊은 채, 호박 마차를 만드는 공장이 되어버렸다. 물론 마차가 계속 잘 팔리면 좋겠지마는….



도전적이며, 화려한 디자인을 하는 것과 돈이 벌리는 디자인이 항상 같이 않다는 것 또한 함은 깨닫는다. 대모의 디자인 스튜디오는 신데렐라의 멋진 새하얀 호박 마차로 유명해졌지만, 스튜디오에 실상 돈을 벌어다 주는 것은 보급형 마차인 평범하게 생긴 노란 호박 마차 거나, 신데렐라가 썼던 새하얀 마차를 렌트하는 사업이다. 멋지다고 알려진 디자인 스튜디오는 실제로는 두 가지 파이프라인을 꾸리는 것을 함은 종종 보고 듣고 경험하였다. 스튜디오의 이미지를 만들어준 도전적인 디자인과 실제 팔리고 있는 디자인, 두 가지로 구성되어 운영된다. 그리고 이 두 개의 팀 위에는 스타 디자이너가 존재한다. 문제는 모두가 스타디자이너는 아니기에, 혹은 두 개를 한꺼번에 할 에너지와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신데렐라를 변신시킨 화려한 호박 마차와 같은 것을 만들고 싶어 잔뜩 기대를 하고 디자이너가 되었던 함은 이러한 화려한 마법으로 만들어지는 디자인은 간혹 들어오는 일이고, 디자이너가 실제로 돈을 버는 일은 마법은 커녕, 지루하다고 여겨지는 반복적인 일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디자이너라면 응당, 화려한 마법의 호박 마차를 만드는 요정 대모의 이미지로 항상 창의적인 마법을 휘리릭 보여줄 것 같다. 실제로 하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디자이너로서의 처우와 디자인에 대한 환상 속에서 만들어지는 디자인에 대한 기대, 그리고 디자인이 실제 하는 역할을 생각하며, 함은 디자인에 대한 의구심이 불어났다. 함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큰 키의 동기가 함에게 말하길, "디자이너는 참 멋진 사람인 거 같아. 나는 내가 디자인한다는 것이 참 자랑스러워"라고 하는데 함은 괜히 눈물이 났다. 동기는 디자이너는 여러 과정에서 여러 분야의 사람과 각기 다른 언어를 써가며 협력하면서 추상적인 생각을 현실화하는 사람이라면서, 그가 생각하는 디자이너가 멋진 이유를 덧붙였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함 또한 본인이 디자이너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기존 디자이너의 모습과는 다르게 멋지고 싶다고.


블랙박스 안의 디자인 마법이 이루어지는 과정



함은 디자인 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가르친다. 험난한 입시 경쟁을 뚫고 디자인을 배우러 온 친구들이 가까운 미래에 디자인하도록 가이드하는 일을 한다. 디자이너가 과연 추천할 만한 업인가 고민을 한 것도 사실이지만, 디자이너는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멋질 수 있는 직업이라고 여전히 믿는다. 다만, 성공한 디자이너의 모습이 좀 더 다양하길 바라면서, 함은 신진 디자이너는 디자인 과정을 마법이라는 이름으로 블랙박스 속에 숨겨두기보다는, 열어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디자인 의사결정 과정 안으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올 수 있어야 마법에 대한 대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디자이너가 역량을 뽐내며 일하기 위해서는 호박 마차를 생산해 내는 것 자체뿐 아니라, 디자인하는 환경 또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함은 생각했다. 마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블랙박스를 까보지 않고 계속 디자이너에게 마법을 부려주기를 요구하면 디자이너의 마법은 지속되지 못하고 금방 소진되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호박 마차에 디자이너의 영광과 생사가 달려있기 때문에 호박 마차를 공급하는데에 모든 에너지를 계속 부을 수 밖에 없다. 누군가는 되려 디자인하는 과정을 디자인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커리어는 구불구불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어떤 선택을 하고 계신지 너무 궁금합니다. 언제든지 공유해주세요.




이전 02화 영웅의 여정보다는 몸부림과 설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