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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흐 함 Dec 24. 2023

떳떳한 경제 일꾼이 될 수 있을까

장래희망은 지속가능한 생산성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 글은 여러 우물을 파고 있는 구불구불한 커리어를 가진 함의 이야기이다.

짚고 넘어가야만 하는 녀석

함이 이 이야기를 썼다 지우기를 계속했다. 이 이야기에 관해서 얘기해 보고 싶은데, 감정적이지 않은 채,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데 그렇게 어려워하냐고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함이 주저하며 대답하길, 첫 번째는 칭얼거림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데 자꾸 칭얼거리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고, 그리고 본인이 너무 바보 같아 보일 것에 망설여진다고 했다. 두 번째는 아픈 손가락의 이야기인데, 본인의 아픈 부분을 이야기하기에 본인을 부정하게 되는 것 같아 망설여 진다고 하였다. 스스로를 잘 포장해서 팔아도 어려운 세상에, 이런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함으로써 현재로서는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존재할 듯한 가능성을 막을 것도 괜스레 우려된다고 하였다.



그럼 이야기 안 하면 되지, 그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굳이 왜 얘기를 꺼내고 싶은지 다시 물었다. 이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함은 또다시 또박또박 이유를 나열하였다. 첫 번째는 아픈 손가락을 그대로 두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손가락도 손의 일부이고 함의 일부이기에 보듬어서 잘 활용하고 싶다는 것이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다 써먹어도 모자란데 아프다고 내버려 두면 함 본인만 손해이고, 손가락에 스며든 아픔이 다른 곳에도 번질 수도 있다고 하였다. 두 번째는 무엇보다도 이 손가락이 함을 가만히 두지 않고 함 본인이 집중하는 데에 방해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작게 구시렁대던 이 녀석이 본인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서 어느새 커져버려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녀서 당최 정신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 녀석의 이야기를 잘 듣고 다독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정리가 안될 거 같다고 하였다. 그 손가락 녀석의 이름은 “찬란”라고 하였다. 한 때 함 내부에서 꽤나 오랫동안 잘 나가던 녀석이라고 한다.



간절했던 ’찬란‘이라는 녀석

이쯤 되니, 정작 ‘그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고 주변 부만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예의 상이라도 그 이야기에 대해 물어야 할 거 같았다. ”그래서 ‘그 찬란의 이야기’가 뭐예요? “ 본인 관심사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함이 기다렸다는 듯이 썰을 풀기 시작하였다. 사람 만나고 헤어지는 많은 이야기가 그러하듯, 왜, 어떻게 이 녀석과 마주하게 되었는지부터 펼쳐놓기 시작하였다. ’찬란‘은 머리에 있는 것을 꺼내서 간단하게 소통하는 데에 굉장히 유용하기에 함이 욕심내던 능력이라고 하였다. 그런 측면에서 실내 건축 도면은 물론이거니와, 기계 사용 설명서라던가, 특허를 위한 기술 설명서도 함이 참고하는 소통 방식이라고 했다. 이 그림들은 생각을 형상화하기에 유용하였고, 만드는 자와 만들 자, 사용자 간에 최대한 객관적이고 명확한 의사소통 기반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한다고 하였다. 게다가, 공간을 직접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다이어그램과 그림은 적은 자본으로도 생각을 형상화하고 소통하는 데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추가적으로 재미있는 상상도 해볼 수 있었어서 함에 오랫동안 갖고 싶었던 능력이라고 했다.



간절하게 원하던 이 ’찬란‘이라는 능력과 친해지는 데에는 꽤 오래 걸렸다고 한다. 주변을 서성이던 것이 10여 년, 그리고 또 인사라도 건네고, 주춤거리던 것이 3-4년이다. 이래서는 도저히 가까워지기 어려울 거 같아, 본격적으로 매일 마주하고 나서야 몇 달 후에야 제대로 서로를 알게 되었다.



찬란한 손가락씨가 그림 그리는 법

함이 ’찬란‘과 본격적으로 친해지면서, 함 본인만의 ’찬란‘의 사용법을 찾기 위해 둘은 우선 마음 가는 대로 여러 가지를 시도하였다. 당시 입사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야 목적과 방향성 그리고 방법도 더 뚜렷하게 찾게 되었는데, 그것은 건축 도면을 그리고 설계한 자와 만드는 자 사이에서 소통하듯, 사용자들이 공간이 사용하는 방식을 그리는 방식이었다. 이미 사무실에서는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무엇이 달랐는지는 정확하게는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함이 ’찬란‘을 활용하는 방식이 대표님의 마음에 들었나 보다. 물리적 공간을 설계하고 다른 협력자들과 소통하듯, 함도 소통하기 위하여 공간 사용 설계서를 먼저 그렸다. “이 공간은 이렇게 만들고 쓰는 것을 생각했어요”라며, 머릿속에 있던 공간을 그렸다. 이 공간 디자인은 물리적 공간보다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행위들과 그 행위들을 구성하도록 하는 공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물리적 공간보다는 공간 내의 행위를 중심에 두고 그렸다. ”이런 모습을 생각하고 있어요 “라고 보여줄 수 있어는 것은 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공간 사용 설계 도면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함의 찬란 활용방식에서 조사(리서치)와 사실 검증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그림 하나를 그리기 위해서는 필요한 자료가 상당하였다. 꽤 많은 양의 자료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그림으로 소화하였다. 그림으로 소화했던 이유는 글이나, 간단하게 추상화된 다이어그램으로는 도저히 그 복잡한 관계성은 확인하기 어려워서 그림으로 서로의 연관성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었다. 복잡한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의 함의 그림은 어떤 특정 공간에서 바라는 비전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를 전달하기 위해서 특정 행위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그 공간은 어떤 구조로 만들어졌는지 찾아 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목했던 것은 과연 그 구조 안에서 그 행위가 일어나는 것이 가능한지, 그 행위는 다른 어떤 행위랑 연결되는지를 조사하는 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버섯 농장과 카페와 같이 관련 없다고 생각했던 조합들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았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 행위에 관심이 있을지, 그 사람은 곱슬머리인지, 히잡을 쓰는지, 어떤 톤의 피부인지, 그 공간에서 그 사람은 어떤 자세를 하고 어떤 가구나 물품을 쓰는지를 조사한 후 공간 내부에 하나하나를 구현하였다. 이를 위해서 관련 이미지뿐 아니라, 사례, 문헌도 뒤졌다. 통용되는 다이어그램은 무엇인지, 시대별로 공간과 오브제, 사람은 변한 것이 있는지를 자료를 찾으면서 검증하였다. 그렇게 연결관계를 찾다가 빠진 곳이 있는 것을 발견하면, 정보를 알 만한 사람에게 묻고 그 정보를 채웠다. 새로운 연결을 만드는 것도 함과 찬란의 몫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연결을 발견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는 과정이 함은 참 재미있었다. 함이 처음에 생각했던 그림의 목적 대로 그림은 머릿속에만 있던 아이디어를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듯하여 의미 있다고도 생각되었다.



예상치 못했던 흐름

각자가 생각하는 상품의 범위

찬란을 활용한 함의 결과물은 사람들에게 반응이 좋았다. 사람들은 찬란과 함의 조합을 ‘일러스트레이터‘라고 불렀다. 어쩌면 당연할 지도 모르겠다. ‘일러스트레이터‘로 불리었을 때 이 둘의 그림 그리는 방식은 사치스러운 과정이었다. 우선, 함의 통장에 떨어진 그림의 대가는 일하는 방식과 시간 대비 너무 겸손하였다. 지불의 대가는 ‘그림’이지 ‘그림 그리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과정과 그림 안에 들어가 있는 내용과는 별개로 그림 개수로 그림의 대가를 지불하였다. 대가를 지불하게 된 사정도 알고 있었기에 대가가 너무 낮다고 이야기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나 그 사정과는 별개로, 겸손한 대가만큼 함이 본인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함부로 하는 날도 많아졌다. 그리고 그림을 공급하고 받은 대가 자체가 함 본인의 가치라고 생각되었다. 투자하는 시간과 금액을 계산해 보면, 카페알바를 하는 것이 함의 노동과 시간을 두세 배는 더 귀하게 대해 줄 것 같았다. 게다가, 함이 의도했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목적 또한, 요구하는 그림에는 사치스러운 의도이었다. 사람들이 지불하고자 하는 것은 썸네일 자리를 채운다던가, 검은색과 하얀색으로 가득 찬 텍스트에 쉬어갈 수 있는 어떤 무언가의 느낌을 주는 것인데, 그러기에는 함의 찬란을 활용한 접근 방식은 불필요하게 부담스러운 과정이었다. 그러한 반응들을 보니, ’그냥 뭐든 상관없으니, 빈자리를 채우는 그림‘이라는 생각은 함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본인들이 그리는 내용이 ‘뭐든 별 상관없다. 자리만 채운다면’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현실 속의 그림의 목적 또한 하찮게 느껴졌다.



겸손한 대가도, 추구했던 목적도 함이 찬란을 통해 기대했던 처음과는 너무 달랐다. 함은 찬란을 잘 활용하여 ‘공간 사용’을 설계하고 싶었지,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를 열망한 것은 아니었기에 대가도 기대도 열망과는 다른 이 일을 계속할 이유는 많지 않았다. 둘이 관심 있던 것은 공간의 비전을 보여주고, 공감하고 함께 달성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이었다. 과정과 목적이 빠진 채, 겸손한 대가에만 매달려 지속하기에는 함이 찬란을 앞세워 그림 생산을 지속하기 위한 연료가 부족하였다. 함이 ’찬란‘이라는 능력과 더 깊게 관여하게되면 ‘일러스트레이터’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공간 디자이너의 길이 더 멀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은 ’찬란‘이라는 능력을  끊어버리고 모른척하기 시작하였다.



생산성 높은 경제일꾼이 되기 위해서

이때, 함의 현실적인 녀석이 또다시 참견하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어차피 과정은 알 수가 어려워, 결과로 말할 뿐이야. 너에게서 일러스트레이션을 봤으니까 그걸 요구하는 거지. “ 이 녀석의 이름은 놀랍지 않게도 “현실”이다. 그런 겸손한 대가를 받고 앉아있던 함에게 오히려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현실“이 이야기하였다. 함이 가만히 대가를 수용하지 말고, 과정을 설명하며 대가를 요구했어야 했다고 한다. 함은 왠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쭈그러든 자신감은 그런 요구할 용기도 없었거니와 클라이언트도 더 많은 돈을 지불할 사정이 아니었다고 대답한다. “현실”은 ‘쯧 더 열심히 했어야지, 배가 부르는구먼’이라는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다면 함에게 남은 당장 팔 있는 다른 무언가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함은 함이라는 상점에 어떤 상품이 매대에 올라와 있는지, 정말 당장 팔만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시작하였다. 본인의 상점에서 이제껏 팔았던 상품을 죽 둘러본다. 만드는 시간에 비해 가격이 너무 적게 책정되어 팔수록 손해 보는 제품, 다른 더 큰 상점에 들어가야만 제 자리를 찾는 상품, 재미있고 끝인 상품, 의미는 있지만, 경제적인 가치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운 상품 등등, 모두 효과적인 경제적 이득을 만들어내기에는 미비해 보였다. 마치 무료 시식하는 김밥 천국 같았다. 함은 카레 전문점과 같은 어느 하나의 전문집이 되고 싶었는데 말이다. 실제 접한 현실이 예상과는 달라 그 간극에서 충격을 받았던 함의 마음은 더 빨리 뛰기 시작하였다. 이번엔 예상에 맞아야 한다. 함은 더더욱 신중해지기 위해서 이 전문점 저 전문점 기웃거리고 이리저리 재기 시작하였다.



지속적으로 길게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면서도 함이 믿는 것과 일치되는 일. 충분한 시장이 있어서, 함이 내놓는 상품에 적당히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 위해서 함은 머리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동시에 함의 동생 목소리가 들렸다.

”몰랐어? 돈을 벌려면 돈이 있는 쪽으로 가야지. 돈 벌려고 했으면 디자이너를 선택해서는 안되었지. “

디자인을 벗어나 큰돈이 있는 곳을 생각한다. 금융 상품 개발, 자산 운용, 투자, 테크 특허... 사용자를 주축으로 생각하는 디자이너인 함은 이미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인터넷 소셜망에서는 이렇게 외친다. ‘내가 xx만원에서 n억을 n년만에 만들 수 있었던 방법’ 혹해서 썸네일을 클릭한다. 자본주의 경쟁 세상에 어쩔 수 없다며, 누구보다 다른 사람의 의자를 많이 빨리 뺏으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부럽긴 했지만, 마음이 불편해졌다. 직접 해보고 나서야 예상했던 것과 달랐던 것을 깨달았다고 겸연쩍게 이야기하는 함에게 목소리가 들린다.

“커리어 상담을 잘못 받으셨군요.”

커리어 상담을 받으러 간 함은 조언을 들었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심히 깊게 찾아봐. “



아악.

함의 장래희망은 장기적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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