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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흐 함 Dec 16. 2023

궁금한 것을 따라가보니 구불구불해져버렸다.

네? 공간이 궁금해서 여기까지 오셨다고요?

이 글은 여러 우물을 파고 있는 구불구불한 커리어를 가진 함의 이야기이다.



함은 실망하여 다시는 가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궁금한 식당에는 꼭 가더라. 차라리 가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면서. 디자인도 연구하는 과정도 왜 그런 지를 찾아가고, 새로운 것을 대입해 보며 과연 달라질 수 있을지 질문을 풀어가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 밖의 세상도 나가보고, 예전 직장들도 찾았다고 했다. 궁금한 일을 찾아보니 도착하게 된 곳이라면서. 광기 어린 눈을 가지고 참 열심히도 궁금한 것들을 주욱 열거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공간의 기분

그 시작은 공간이었다고 한다. 함은 '공간'에 무척이나 집착하였다. 이야기하면서도 '공간'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썼는지 머릿속에 이 단어가 울렸다. 공간이 유도하는 행동, 그리고 그에 따라 달라지는 경험이 신기하고 궁금하였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의 기분이 되고, 절에 가면 절의 기분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센과 치히로의 공간에서는 센과 치히로의 기분이 되지 않겠냐면서, 같은 사람도 공간에 따라 기분도 페르소나조차도 바뀌게 하는 듯한 그런 공간을 직접 만들고 싶었다고 하였다.



공간이 주는 경험이 너무 재미있지 않냐면서 함은 신이 나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고는 간단한 예를 들었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과 혼자 컴퓨터로 영화를 볼 때 큰 차이가 있다고 하였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다는 것은 예매하고, 상영 시간이 되기를 기다리고, 상영관으로 들어가기까지의 경험이라고 하였다. 혼자 컴퓨터로 영화를 보러 가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하였다. 영화관에 들어서면 느껴지는 선선한 공기와 자리를 찾고, 영화가 시작되기까지 자리에 앉아서 기다린다. 그리고 불이 서서히 꺼지는 그 순간이 설렌다고 하였다. 게다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예상치 못한 장면이나 슬픈 장면이 나오면, 옆좌석의 감정이 전달되기도 한다면서. 한국 영화 <1987년>에 예상치 못한 강동원의 등장에 극장전체가 술렁이는 것도 너무 재미있지 않냐고, 이것은 넷플릭스(Netflix)와 같은 노트북으로 보는 영상을 혼자 볼 때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라면서. 평소에 조용했던 함이 말이 빨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이유로, 그런지 공간을 무언의 의사소통(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함이 말했다. 공간의 물리적 구성요소를 언어로 사용자의 행동 틀을 만드는 것이 공간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여기는 보도로 디자인했으니, 여기를 안심하고 걸으시오’라던가, ‘여기는 초록 공간과 볕이 많이 드는 공간이니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오’, 혹은 ‘여기는 벽을 두었으니, 이곳은 저곳과 구분해서 생각하시오’와 같은 물리적 환경은 사용자의 행동과 그에 따른 경험을 만드는 것이 공간인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다 보니 공간의 재료나, 디테일보다는 공간 구조와 공간 프로그램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함은 공간을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인식해서 그런지, 함이 영화판에서, 뮤직비디오, 광고 촬영장에서 프로덕션 일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공간 디테일이 공간디자이너에게 주로 더 중요하게 기대된다는 것은 열심히 후자(공간 구조, 프로그램)를 쫓고 나서 나중에야 알았다고 함은 말했다. 전자(공간 디테일)를 하지 않고서는 그 앞단을 할 기회를 얻기도 어렵다는 것도 조용히 듣고만 있던 평소에 함의 내면에 살고 있는 현실적인 녀석이 그 당연한 것을 몰랐냐며 함과 눈빛을 주고받았다.



디자인의 효용성

때로는 새로운 디자인들이 너무 비슷하거나, 공간 디자인에 압도될 때도 종종 있다고 함이 말했다. 그럴 때 '디자인되었다'는 것 자체가 마치 단것을 너무 많이 먹은 것처럼 메스껍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고 하였다. 오래되어도 시간을 머금고 매일의 쓸고 닦으며 예쁨 받으며 방문객의 이모저모를 생각하여 배려한 공간은 태가 난다면서 그런 공간이 오히려 담백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과연 디자인이 항상 필요한가, 오히려 진심 어린 운영, 유지, 관리가 오히려 효과적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함의 내면에 자리 잡은 현실적인 녀석이 듣다가 참다못해 불쑥 껴들며 말했다. "디자이너가 할 필요 없는 참 쓸데없는 걱정이다. 먹고살 걱정이나 해. 그건 네가 신경 쓸 게 아니야. 디자인은 그냥 돈 받고 요구한 디자인을 하면 돼."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공간의 물리적인 요소에만 있지 않으며 공간 디자이너가 의도한 디자인대로 사용자가 공간에 반응하는 일만 일어나는 것은 아닌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그 당연한 것을 몰랐다고, 그래서 스스로 민망하다는 것이 표정에 미세하게 드러났다. "건축 책, 디자인 책에 너무 심취했었구먼. 너무 당연한 거 아니야? 어쨌거나 너는 그냥 요구받은 디자인을 하면 돼. " 라며 함의 내면에 자리 잡은 현실적인 녀석이 옆에서 뚱하게 작게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함은 현실적인 녀석의 말을 애써 무시하며, 처음엔 그저 본인의 디자인만 탓하였다고 한다며 함은 말을 이어갔다. 그저 열심히 잘 디자인만 해 놓으면 사람들이 알아서 의도대로 행동할 것으로 생각하였다면서. 디자인 형태 요소만 가지고는 안 풀리더라고, 충격이었다고 더 작게 흘러가듯 말을 이어갔다. 오히려 정책, 정치적 상황, 경제적 요소, 투자 등이 공간에서의 행동도, 공간이 변해가는 모습에 더 큰 영향을 만든다고, 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과연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길 경우가 많다며 작아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동시에 디자인하는 과정, 심지어 회의하는 모습, 공간 속 이야기 전달 방식, 그 이후에도 온오프라인으로 연결하는 방식 모두가 공간 경험의 일부분 되고 있다면서 함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 부분은 오히려 운영의 영역이고, 예산 문제, 계약 문제가 있으니... 라며 다시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옆에 있던 현실적인 녀석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자꾸 '왜'냐는 둥, 영향이냐는 둥 하고 묻지 좀 마. 그냥 디자인 보내. 돈 받아. 끝이야. 어차피 디자이너의 영역이 아니야."



사용자 입장에서의 공간 경험의 영역의 요소들



이보시오 고개 좀 들어보시오

사용자 중심의 공간에 대한 답은 디자인 속에만 있지는 않다면서, 함은 오히려 정책, 경제, 기술을 이해하면서 궁금증이 풀렸다고 한다. 그리고 괜히 궁금증의 범위만 넓어졌다고 걱정했다. 때로는(많은 경우가) 정책과 경제가 이미 공간이 어떻게 쓰일지 그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것 같다며, 함은 남들은 다 아는 당연한 이야기를 본인이 하는 것 같다는 표정을 하며 조심스레 언급했다. 어차피 공간에서 장사하는 본업으로는 먹고살기 어렵다면서 권리금 장사라고 하더라는 이 말을 들었을 때, 공간디자이너의 사용자 경험을 배려하는 접근 방법이 과연 필요한 곳은 어디이냐고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고는 사용자를 최대한 사로잡기 위하여 공간 경험을 극대화하는 단기 임대로 진행하는 팝업으로 가득 찬 시끌벅적한 함의 동네인 성수동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반대에 서 있는, 공간을 투자자산으로 보는 경우들도 떠올렸다. 부동산 투자로서 소유만 하고 거주자가 없는, 즉, 사용자가 없어 밤에도 빛이 켜지지 않는 런던의 부촌이라던가, 30년 만에 건물도 사람도 도시 전체가 나이 들어버린 본인의 고향인 분당도 생각났다. 옆에 있던 현실적인 녀석은 함에게 또다시 그런 생각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라면서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너는 너 할 일만 하면 되지, 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런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는 거지. 게다가 네가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디자인 요소들을 결정하는 상위 요소들



이렇게 질문을 쫓던 함은 고개를 들었다. 함과 눈을 마주친 스마트하게 입은 사람이 함에게 말했다. “디자이너가 여기서 뭐 하시는 거죠?"라며 이곳에서는 디자이너를 마주칠 거라고 예상치도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옅게 웃으며 함의 손에 하얗고 까만 문서를 꼬옥 쥐여주었다. "아! 디자이너라고 하셨죠? 그럼, 이것 좀 예쁘게 해 주세요. 내일까지 가능하죠?" 이 모습을 보던 함의 내면의 현실적인 녀석이 함이 핀잔을 주었다. "네가 말했잖아. 당연한 거 아닌가. 너 자리 나 잘 지키는 것부터나 잘해. 자꾸 쓸데없이 돌아다니면서 왜냐고 묻지 좀 마."



스마트하게 입은 사람이 쥐여준 리포트를 바라보던 함은 본인도 모르게 마우스를 빠르게 클릭하며 리포트 배경색을 바꾸었다. 하지만 눈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물리적인 것을 외에 그 안에 숨겨진 것들을 보여주고, 가시화된 것들을 관리까지 하게 해주는 디지털 정보가 함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바쁘게 손을 움직이는 함의 눈에는 희번덕거림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였다.


일단 저기를 가보자. 궁금하다. 너무나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어떤 선택을 하고 계신지 너무 궁금합니다. 언제든지 공유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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