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에 초점 맞춰진 선택은 과연 효율적일까
이 글은 여러 우물을 파고 있는 구불구불한 커리어를 가진 함의 이야기이다.
어떤 업계의 회사에 갈지 정하고, 퇴사하기로 하고, 다음 과정을 정하는 등등 선택의 순간이 온다. 어떤 목표를 두고 어디로 향해 가느냐에 따라 함 본인의 인생을 바뀔 것을 생각하니, 그 무게에 짓눌린다. 이 선택이 결국에는 과연 옳은 선택이 될 것인지 판단하려고 하니 현재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진다. 자연스럽게, 가장 낮게 달린 과일을 똑 따듯이, 이제까지 살아온 것을 가장 잘 살려줄 가장 가까운 길로 사뿐히 갈아타면 좋을 텐데, 함이 서 있는 곳에는 그런 길은 없어 보인다. 앞에 놓인 모든 선택지는 손가락 움직이는 법부터 단련하여 팔다리를 있는 힘껏 뻗어도 겨우 잡을 듯 말 듯 멀고 어려워 보인다. 이제까지의 함 본인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각각 선택들로 인해 레퍼런스 없는 길을 가고 있는 함은 이번에는 조금은 남들에게도 익숙한 길로 가고 싶다. 그렇기에 함의 선택의 무게는 더더욱 무거워진다. “이번 선택은 정말 잘해야 해”라면서 신중해진다. 더 신중해지면 선택이 뾰족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선택 자체가 더 부담스럽고 혼란스러워졌다. 어렵고 부담스러우니 가능한 한 선택을 미루고 싶어진다.
함은 가장 ‘효율적’으로 선택하기 위해 가장 적은 자원을 투자하여 선택의 결과를 미리 맛보고, 가능한 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생각해 본다. 이미 그 업계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를 해본다던가, 관련 분야 강연을 듣는다던가, 책을 읽어본다. 하지만, 각각의 경우가 너무 달랐고, 깊이 있게 알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듬더듬하고 싶은 것을 잠깐이라도 배워 판단하기로 한다. 작게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본다. 해보면서도 이리저리 선택에 따른 결과를 재본다. 급료가 박하지는 않은지, 오래 지속 가능하게 성장할 수 있을지, 어떤 길이 함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을지. 지속 가능한 경제일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재고 또 잰다. 하도 재다 보니 집중하기 어렵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효율적인 선택이라는 것이 존재하나? 결정하고 효율적으로 만든 건가?
이렇게 저런 조건들을 열심히 재다 보니, 함은 무력감이 느껴졌다. 모든 선택지가 현재 서 있는 위치에서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인간이 되고 싶었다. 이제까지 잠을 줄여가며 주말을 주말답게, 저녁을 저녁답게 보낸 날을 손에 꼽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앞뒤 안 보고 마냥 열심히만 살아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 이미 멀리 와버린 이 길을 꺾고 다듬기 위해서 본인을 얼마나 더 채찍질해야 하나 막막해졌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함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역량 자체가 부족한 것이거나, 방향이 잘못되어서 효율적이지 않거나. 혹은 그냥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거의 다 온 것인지. 답답하게 느껴졌다. 누가 함의 커리어 길을 그려주고, ‘당신의 현재 위치(You are here)’라고 빨간 말풍선이라도 붙여주면 좋으련만. 쓸모는 과연 누가 정하는 것일까. 함 본인의 쓸모를 너무 남에게 의탁하여 판단해 주길 기다렸던 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놓치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구독하여 읽고 있는 인터넷 기사에, 지인들로부터 들려오는 소식은 함을 더욱더 조급하게 만든다. 누가 어디 회사에 갔다더라, 누가 뭘 해서 얼마를 벌었다더라, 어떤 새로운 툴이 론칭했다더라, 근미래에는 이런 역량이 필요하다더라.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에 느리게 변하고 있는 함 본인을 바라본다. 숨이 턱턱 막힌다. 함은 다들 이 어려운 결정들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주변의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물었다. 사업을 하기로 하고, 지도 교수를 선택하고 연구 주제를 찾고, 새로운 일을 어떻게 결정 내렸는지 물었다. “oo 교수님이 소개해 주었어요.”, ”같이 일하던 동료가 아는 사람 소개해 주어서 하게 되었어요. “, 주변에서 이거 하라고 하면 딱 맞는다고 하더라고요. “ 함은 본인이 들었던 이야기를 꼼꼼히 되짚어 본다.
인터넷을 열면 각종 채널에서 성공해 보이는 듯한 누군가가 전문가로서 당당한 목소리로 본인의 견해를 내놓는다. 함도 본인의 선택에 대해 믿음이 찬 목소리로, 본인의 길을 닦으며 가고 있다며, 본인의 언어로 이런저런 생각을 공유하고 싶은 욕망이 솟구친다. 본인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팀에, 프로젝트에 기여하는 모습과 기분을 욕망한다. 초반에는 모호하고 어려웠던 프로젝트도 어느새 활력을 얻어, 함께하는 팀원들의 얼굴에 자신감이 생기는 그 순간을 욕망한다. 몸은 녹초가 되어도, 앞에 놓인 문제가 조금은 골치 아파도 풀 수 있을 거 같다는 두근거림을 욕망한다. 다음날 해야 할 일을 쭉쭉 상기하며 스르륵 잠들고 아침에 설렘에 번뜩 일어나는 그 순간을 욕망한다. 그 모습과 기분은 어디로 가야 느낄 수 있을까.
함은 본인이 너무 가고 싶은 회사에 친구의 지인을 소개받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회사에 지원하고 싶다고 하였더니, 시간을 내어 준 고마운 분은 “본인이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이 필요하나요?”라고 함에게 물었다. 조직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는 질문이었다. 함이 욕망하는 그 기분을 느꼈을 때의 주변 환경을 되짚어보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서로 의지할 수 있는 동료였다. 잘 모르던 그 동료를 어떻게 의지하게 되었는지 더듬어보았다. 각자의 뚜렷한 역할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함의 경험상, 아무리 뚜렷한 역할도 상황에 따라 새로 발견되기도 하고, 바뀌기도 하더라. 그렇기에 분명한 역할도 어느 정도의 유연함도 필요하였다. 역할이 너무 딱딱하게 구분 지어지면, 네 일, 내 일 하며 서로 미루게 되더라. 어떤 환경이 가장 중요했는지 다시 한번 더듬었다. 함과 가장 가까이 일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던 동료들과 투명하게 공유했던 정보와 작업 과정을 떠올렸다. 본인의 의견을 시간이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설명하고 솔직하게 의견을 맞추어보는 과정이었다. 끈덕지고 느려 보이는 이 과정은 일하는 데에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불안함을 잠재우고 서로의 믿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가장 고마우면서도 결국에는 효율적인 환경이 되었다. 이 믿음과 패턴으로 그 팀원과는 그 무엇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 같았다.
함은 욕망하는 그 기분에 자리 잡고 있을 본인의 전문성에 대해서 생각한다. 디자인은 방법론이기 때문에 프로젝트마다 흙의 영양분 관리라던가, 도시 문제의 시민 참여라던가, 혹은 주택 공급의 물 부족 문제가 같이 매번 다른 도메인을 마주하는 것이 함이 일하던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방법론으로서 함의 디자인 전문성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함의 설명은 복잡해진다. 명확한 것은 긴말이 필요 없다고 하던데, 아직은 단어 몇 개만으로 함이 하던 일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보여주려고 해도 과정 자체가 결과물이다 보니, 디자이너로서 함이 포트폴리오를 내놓았을 때, 기대했던 어떤 그래픽이라던가, 공간이 시공된 사진과 같은 결과물이 아니기에, 혼란스러워하는 눈동자를 함은 자주 목격하였다. 혹은 과정 중에 시각화된 것을 보고, “그래픽 디자이너시구나!”라고 하거나.
함이 디자이너로서 해오던 일은 돼지 입술의 립스틱 색을 정하는 ‘의사결정과정’과 그에 따라 새로운 길을 만드는 일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몇 년째 당연하게 여겨왔던 돼지 입술의 립스틱에 대해서 ‘돼지 입술에 과연 립스틱이 필요한 것인가?’를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연하게 여겼던 돼지 입술의 립스틱의 효과에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 립스틱이 무엇인지라던가, 돼지 입술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지칭하는 것인지, 립스틱이 의도한 효과를 정말 내는지 있는지 등등을 각각의 립스틱 제조 전문가, 돼지 전문가 등과 결정하는 일을 한다. 이를 위해서 최신 립스틱의 트렌드라던가, 돼지의 최신 트렌드, 그리고 돼지에게 영향을 주는 트렌드를 조사하고, 립스틱 외에 비슷한 효과를 내는 볼 터치용 제품이라던가, 보습용 립밤 등의 다른 대안들도 찾아본다. 사전 조사를 바탕으로 각 전문가의 의견을 미리 듣고 필요한 논의가 무엇인지를 파악한다. 그러고는 각 전문가를 한곳에 모아 서로의 의견을 듣고 공감대를 만드는 자리를 만든다. 이 자리에서는 같은 것을 지칭해도, 분홍색, 핑크색, 마젠타, #ff0090와 같이 입장에 따라 각각 다르게 쓰는 용어를 모두가 동의하는 언어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그리고 서로의 어려운 점과 입장을 들으며 집중해야 하는 목표라던가 우선순위나 역할을 재조정한다. 디자이너로서의 함은 각 전문가로부터 각각의 입장을 듣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구체화하고 모임에서 논의의 방식과 다음 단계를 구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함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통화할 때마다 함의 고민을 몇 시간씩 묵묵히 받아주던 선배가 함이 하던 일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 역할이 필요한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인지는 다들 설명하기를 어려워해." 구체화하는 것이 이 역할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인데, 본인의 업은 정작 구체화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려운 일이라니. 이 일을 ‘마음공부’라 지칭한 솔직한 분의 단어 선택이 머릿속에 맴돈다.
함께 이 필요하지만,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일에 대해 논하던 선배와 함은 ‘꼬여버린 커리어’라며 허허 웃었다. 꼬인 것을 풀어 어떻게든 다른 것과 비슷하게 만들 것인가, 꼬인 대로의 매력을 찾아 다른 것과 잘 어울릴 모양을 만들 것인가. 꼬인 커리어를 가까이서도 보고, 멀리서도 보고, 해체도 하며 열심히 뜯어본다.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한다. 고심하던 함은 역시 이런 골치 아픈 결정은 선택지에도 없었던 선택을 본인도 모르게 덜컥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결정해 왔기 때문에 이렇게 구불구불해진 것인가 싶기도 하고. 이 고민이 커리어의 이때쯤에 하는 당연히 거쳐 가야 하는 것인지 혹은 채워지지 않은 조각인지 누가 명확하게 데이터를 근거로 현재 위치를 분석해 주면 좋으련만.
함은 지속 가능한, 전문성을 가진 경제 일꾼이 정말 간절히 되고 싶다. 뚜벅뚜벅. 하지만 도달 지점은 어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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