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줄 몰랐어요? 네, 몰랐어요.
이 글은 여러 우물을 파고 있는 구불구불한 커리어를 가진 함의 이야기이다.
함이 그의 동생이랑 이야기하다가 두고두고 곱씹게 되는 이야기가 있다. "디자이너가 돈 못 벌 줄 몰랐어?, 돈 잘 벌고 싶었으면 의사가 되었어야지. 본인이 한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지." 마침 함은 인터넷에서 의사가 다른 직업보다 6배 정도 돈을 잘 번다는 기사를 보았다. 커리어 내내 이런저런 이유로 대부분의 계약이 프리랜서로 되어 있어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이 있던 그에게, 고부가가치 전문직은 한편으로는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왠지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는 의사를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피를 보지 못하고 살아있는 것에 칼을 댈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워서 일찌감치 단념했다.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는 거니까.
동생의 말이 함의 머릿속에서 자꾸 맴도는 데에는 상반된 이유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어느 정도는 수긍하기 때문이다. "아, 어른들 말 들을걸.." 함이 보기에는 어른들이 좋다고 한 직업, 의사, 판사, 변호사, 교사를 선택한 친구들은 지금쯤 다들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보였다. (물론 그 안에도 수많은 고뇌가 있겠지만) 그때 어른들 말을 들었어야 했을까 하고 돌아보게 된다. 그의 부모님은 한 번도 의사, 판사를 하라고 하신 적은 없지만, 선생님을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라고 교사를 권유하셔서 초등학교 내내 교사를 장래 희망으로 적었었다.
두 번째 이유는 함은 사실 디자이너가 그런 직업인지 모르고 선택했다는 것이다. "얼마나 '알고' 선택을 할 수 있나?"라며 함의 동생의 말에 반문이 들었다. 어떤 선택을 할 때 앞날이 쭈욱 보여서 예상한 대로 뻗어진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이 있지만, 가보니 예상과 달라서 길을 바꾸고 돌아가야 하는 사람도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다고 해도, 모든 것은 정말 그 개인의 책임인가?”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것은 마치, 개인의 선택은 결과가 어떻든 간에, 개인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선택은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 말인즉슨, 개인의 선택은 모든 것을 통제 가능하다는 것인데, 과연 그런 것일까?
이 생각 속을 맴도는 사이에, 호기심과 모험심이 강했던 함의 마음에, “결과물이 예상하기 어려운 위험을 감당하며 나만의 길을 파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이 삐쭉 들어섰다. 서른 중반이 된 함의 주변에도 한 우물을 우직하게 판 듯한 사람들은 어느덧 그 업계에서 자리를 잡고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적어도 밖에서 보이기에는, 한 자리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전문성을 쌓아가 그 자리가 탄탄해 보이지만, 마구잡이 이곳저곳 쑤시고 다닌 함 본인의 우물들은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막막했다. 궁금증을 연료로, 한 우물 대신, 여러 우물을 이곳저곳 파온 함 본인의 구불구불한 커리어가 원망스러웠다. 사실 불안해도 돌아가기에는 이미 늦었지만. “첫 단추가 제대로 꼬였는데, 앞으로도 괜찮은 걸까?”
함이 선택한 디자이너라는 업은 열대여섯 살의 함이 함의 어머니의 제안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 당시 십 대의 함은 디자이너가 하는 일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돈을 얼마나 버는지 몰랐다. 사실 십 대에 미래의 모든 것을 점쳐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가혹하고 무거운 일인가? 고등학교 때의 그 좁은 경험 스펙트럼으로 평생을 결정해야 한다니.
만약 부모님의 직업이 디자이너였고, 일하시는 모습을 보았다면 함의 선택이 달랐을 수도 있다. 함의 아버지는 사회에서 말하는 소위, 잘 나가는 직업 중 하나였지만, 어린 함이 가까이서 보았을 때는 아버지 본인이 직업과 학업의 선택에 만족하시거나 직업으로 인해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렇다 보니, 남들이 아버지의 업에 대해 뭐라 하든 간에 함의 아버지의 직업을 선택할 동기가 전혀 없었고, 아버지도 추천하신 적이 없었다. 사회에 나와서 보니, 아버지 직업의 이제야 흥미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함에게 그 업을 추천하셨어도 좋았을 터라는 늦게서야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사실 접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것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부모님과 친척의 직업, 선생님, 그리고 미디어에서 접하게 되는 업들이었다. 함의 가족 중에는 교사나, 의사가 대부분이었고, 딱히 많이 번다던가 적게 번다거나 탄탄한 장래와도 십대의 함은 연결해서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그 당시에는 한 직장에 2~30년 근무하고 은퇴하는 것이 당연하였기에 의사, 선생님이 되든, 회사원이 되든, 같은 직장에 평생 몸담는 것은 비슷해 보였다. 그 와중에 디자이너는 좀 더 재미있어 보였고, 의사나 선생님처럼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았다.
주변의 디자인이라는 것을 접하기 어려웠던 십 대 시절에 함이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는 제일 덜 지루해 보였다. 건너 건너, 아마도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미지의 디자이너라는 업은 다른 직업보다 더 다양한 일을 하고 매번 새로운 일들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런 환경은 배움의 기회가 더 많이 만들 수 있어 보였다. 또한 사람들의 일상 경험에 변화를 주는 일이 좋아 보였다. 주변에 디자이너가 없었기에 표면적인 부분만 알았고, 몰랐기 때문에 궁금하였고 궁금해서 더 알고 싶어서 선택하였다. 그 당시 함의 직업 선택의 기준은(그리고 지금도) 좀 더 궁금한 일이었다.
선택한 지 이십 년, 직접 경험한 지 십오 년이 지나야 함이 알게 된 디자인이라는 업은 십 대의 함이 상상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영역들이 더 컸다. 디자이너의 일이라는 것이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디자인을 활용하는 방식이라던가 일하는 환경은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더 나은 경험 디자인인가라는 질문을 함은 하게 되었다.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서 돈을 못 버는 직업의 상위 순위에 해당하는 것도, 의사결정에서 종종 밀려나 우선순위에 밀려난다는 것도, 평가절하된다는 것도 함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건축가이자 도시 전략가의 단 힐 Dan Hill은 그의 책 <다크매터 앤 트레젼 호스 Dark Matter and Trojan Horse>에서 디자인이 하는 역할에 대한 오해를 설명하며 디자이너는 종종 돼지 입술의 립스틱 색을 정하는 정도의 역할로 여겨진다며 안타까운 현실을 묘사하였다.
사실 입술 위의 립스틱 색도 단순하지만은 않다. 돼지가 받을 조명, 돼지의 입술 구조, 돼지의 얼굴 전체의 톤, 돼지가 할 포즈, 다른 돼지들과의 관계, 그날의 행사 맥락, 립스틱의 소재 등 립스틱 색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한 공간 경험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도, 공간 자체도 중요하지만, 공간이 운영되는 방식, 공간과 공간 사이, 공간들의 이야기들, 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 등 다양한 관점이 고려되어야 하더라. 그리고 그 영역은 디자인의 영역 밖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것을 함은 발견하였다. 다만, 립스틱 색 자체에는 영 관심이 없었던 함은 그렇게 구불구불한(non-linear) 길을 걷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 분명하게 규명되지 못함에서 오는 불안에, 스스로가 본인의 경험을 부정하는 데에 다다른다. 함의 스무 살 이후의 끼워온 단추들이 그 순간순간마다 나름 확신하는 선택을 한 것 같은데, 지나고 나니 예상과 다르게 구불구불해졌다. 구부러진 만큼 느려진 본인의 길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비난하기도 하였다. 전부 다 거부당하는 기분이 들어서 괜히 억울하기도 하였다. “단추 끼우다 보니 첫 단추가 잘 못 된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된 경우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망한 건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것 만한 가스라이팅이 또 없다. 모름지기 처음엔 개같이 조져야 한다. 그래야 다음번에 편한 마음으로 새로 시도할 수 있다.
- 스레드에서 보았는데 출처를 잃어버렸습니다. 출처 찾습니다.
이쯤 스스로를 비난을 실컷 하고 나니 함은 슬슬 이것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첫 단추가 잘 끼워 매번 단추를 잘 끼운 사람은 단추 잘 못 끼워본 경험은 모르지 않겠어? “ 단추가 한 번에 잘 맞으면야 좋겠지만, 단추 잘 끼우려고 단추 시장도 가본 경험, 단추 이것저것 대본 경험, 그래서 단추와 단춧구멍의 다양한 종류를 아는 것에 대한 가치도 중요하지 않을까? 라고 함은 생각해 보았다.
잔뜩 주눅 들어 있던 함에게 멘토이자 연구자이자, 시인으로 활동하는 친구가 말했다. "너의 경험을 통해 그들에게 가져올 수 있는 것들을 어필해 보아" 이 말에 함은 "나는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머릿속을 탈탈 헤집기 시작하였다. 구불구불한 이 우물 저 우물을 파 본 커리어에 가장 진귀한 것은 얕아도 여러 우물을 파본 경험이다. 정보가 자산이 되는 시대이다. 그리고 경험을 팔려면 경험을 재고에 쌓아놓아야 하지 않나. 일단 경험을 쌓아보기로 한다.
동시에 사실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구불구불해 보일 수도 있고, 직선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활동하고 있는 커뮤니티의 동료 말도 함은 떠올렸다. 우물 파신 경력이 꽤 되어 보이던 그분의 말에 의하면, 파온 구멍들을 연결하는 것은 사실 본인의 역할이 아니라 남들이 알아서 연결해 주기도 한다는 거다.
동생의 ”그럴 줄 몰랐어? “ 한 마디에 ”그럴 줄 몰랐다 “는 함의 이야기가 이렇게 길어졌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어떤 선택을 하고 계신지 너무 궁금합니다. 언제든지 공유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