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이 현실이 될 때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낼 힘

by 조이엄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친다


그림책을 좋아하게 된 후 그림책 관련한 것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들러 성인들을 위한 책이 있는 2층과 3층을 모두 지난 후에는 참새 방앗간 못 지나치듯 꼭 1층 어린이 도서관에 들어가 민망함을 무릅쓰고 그림책을 몇 권씩 읽었다.


어린이 도서관의 오색찬란한 매트에 앉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짜인 책장 속 그림책들을 그윽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흘깃흘깃 바라보는 시선들이 느껴진다.


'괜찮아. 어른도 그림책을 읽을 수 있지 그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라고 나 자신에게 몇 번씩 되뇌며 최대한 그림책에만 시선을 둔다. 여기서부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민망함에 물러설 것이냐, 괜한 어색함에 자꾸 들썩거려지는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그림책을 읽을 것이냐.


이 과정에서 얻게 된 팁이 있다면 퇴근 후 저녁시간에 찾은 도서관에는 어린이들이 많지 않아 그나마 불청객이 된 듯한 느낌을 덜 받을 수 있다는 것. 문 닫기 직전의 도서관에서, 마지막 남아있던 어린이까지 떠난 어린이 도서관에 혼자 앉아 『할머니의 아기』라는 제목의 그림책을 읽으며 눈물 콧물 다 뺐던 기억이 난다.(마스크를 껴서 어찌나 다행인지!)


7913986.jpg 윤재인,『할머니의 아기』(2010) /사진 출처: YES24



모두의 그림책전


'내맘쏙 : 모두의 그림책전'을 봤을 때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다. ‘모두의 그림책 전 <내·맘·쏙>’ 은 국내 유명 그림책 작가 7인과 미술 작가 3팀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로, 그림책 원화 외에도 즐기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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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에 같이 가줄 만한 친구를 떠올리다 빠르게 마음을 접고 혼자 다녀오기로 했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그림책전 예매처 앞에는 어린이들과 어린이의 보호자로 참여한 부모님들 뿐이었다. 그동안 3x3제곱미터 크기의 어린이 도서관에 앉아 책 읽기 수행을 해온 덕분에 어린이들 사이에 우두커니 껴 있는 민망함을 견딜 수 있게 된 것이 참 다행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겨준 것 중 하나는 서현작가의 '호라이', 그리고 '호라이 호라이' 작품 원화였다. 계란을 스스로 깨고 태어난 호라이는 '왜 나는 호라이일까'와 같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공깃밥 위에만 머무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우주로(?) 날아간다.


파란 벽지에 그려진 수많은 호라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좋은 의미로 정신이 아득해지는 듯했다. 옛 선인들은 바위를 바라보며 폭포수를 느끼고 자연의 삼라만상을 느꼈다던데, 나는 호라이들을 바라보며 자아성찰을 하고 우주의 진리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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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컬러풀하게 조합된 원색의 조합을 좋아하고, 또 이런 근거 없지만 유쾌한 발상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취향에 맞는 그림책을 하나 더 알게 되어 기쁠 따름이었다.


그림책의 원화뿐 아니라 그림책 속 내용들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존도 마련되어 있었다. 안녕달 작가의 수박 수영장에 들어가 약 1분간 반신욕을 즐길 수도 있었고, 이수지 작가의 '선'이라는 동화책 체험존에서는 사람이 움직이는 동선대로 바닥에 그림이 그려졌는데, 어린이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줄이 가장 길었다.)


또, 커다랗게 만들어진 '이파라파 냐무냐무' 속 털숭숭이를 만나볼 수도 있었다. 책 '이파라파 냐무냐무'에 대한 나의 애정을 가득 담아 털숭숭이를 바라보았지만, 내 옆의 한 어린아이는 경기를 일으키며 부모님의 품으로 파고들어 금방이라도 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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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이 현실이 될 때


처음 그림책에 관심을 가졌을 때, 나는 지쳐있었고 불안했고 두려웠다. 직설적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아서 이야기로 마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는 그림책에게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그림책 속 그림들을 감상하는 법을 배웠고, 그림책이 주는 귀여움과 아기자기함에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그림책이 보여주는 이상적인 세상과 현실이 무척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림책을 읽다 보면 순수한 이야기가 주는 잔잔한 감동을 느끼다가도 냉소적이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서로 다른 것은 '차이'지, 차별의 대상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동화를 보면서도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의구심을 품는다.


그림책 전시를 통해 현실에 펼쳐진 세상을 보면서도 그랬다. 울컥하기도 하고 킥킥대기도 하며 즐겁게 감상했지만, 나는 수박 수영장에 몸을 담그지도, 내가 움직이는 대로 선이 그려지는 체험존에서 뛰어다니지도 않았다.


대신 수박 수영장이 1평 크기라는데 아쉬워했고 움직임에 따라 선이 그려지는 원리에 대해 생각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재단해서 기존의 생각에 붙이는 것이 익숙해진 탓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지켜주고 싶은 수많은 동심을 만났다. 책에서만 보던 수박 수영장이 현실이 되자 1평이 채 안 되는 그 안으로 다이빙해 들어가고 싶어 했을 마음에서, 자신의 움직임에 따라 선이 그려지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며 땀을 뻘뻘 흘리고 뛰어다니는 모습에서.


그림책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고 그저 충실하게 즐기던 아이들을 보며 느꼈다. 그림책은 그저 방향을 잡고 나아가는데 조금 힘을 보태줄 뿐이지 그림책을 현실로 만들어나가는 건 우리들의 몫이라는 것을.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희망과 즐거움을 찾는 것은 나의 몫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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