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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엄 May 15. 2023

땅콩들의 소라 축제

우도소라축제(2)

  그러고 보니 우도 소라축제는 전형적인 마을 축제 같았다. 우도 소라축제의 주체도 우도면민, 주된 참여자도 우도 면민으로 우도민의, 우도민을 위한, 우도민에 의한 축제라는 느낌이 여실히 들었다. 우도 4개 리에서 각기 다른 음식을 준비해 쉴 새 없이 만들었고 우도면 연합 청년회는 소라를 계속해서 구워댔다.



  무대 위에서는 우도사랑합창단의 공연과 우도 중학교 밴드부의 공연이 이어졌다. 우도에는 중학교가 딱 하나 있는데, 부설 유치원과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모두 통합된 학교다. 섬에 학교가 딱 하나 있으니 우도중학교 아이들은 우도민 모두의 아이들인 셈이다. 우도 중학교 아이들은 무대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췄다. 밴드부 아이들은 유난히 따뜻한 관람객과 축제 주최자, 그러니까 우도 부모님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하지만 우도 소라축제의 경쟁자는 우도 그 자체라서, 뜨문뜨문 진행되는 일회성 행사에 사람들이 쉽사리 남아있지 못하고  곧 우도의 다른 관광지를 보러 떠나 버렸다.  





  별다른 컨텐츠가 없는 시간 동안 음악으로라도 축제장을 채우겠다는 뜻인지 무대에서는 빠른 박자의 음악을 대화를 나누기 힘들 정도의 큰 소리로 틀어댔고, 귓청을 울리는 음악소리와 함께 함께 식사를 마치고 나니 멍해져서 정처 없이 부스를 한 바퀴 돌았다.


  몇 개의 천막들 사이 지역 계간지인 '달그리안'을 소개하는 부스가 있었고, 곧이어 우도민보다 열정적으로 계간지를 소개하던 미스테리한 부산 출신 여성(심지어 계간지 일원도 아니었다!)의 손에 이끌려 부스에 앉아 '달그리안 화이팅!'같은 응원 메시지를 적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우도 사람들은 멍게 철에도 한 집이라도 땅콩 파종이 끝나지 않으면 물질을 가지 않고 다 같이 도울 정도로 공동체 정신이 강했다. 점점 기술이 들어오고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우도를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과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이 나뉘어 주민 간 갈등이 심화되었다고. 그런 상황 속 우도의 계간지 달그리안은 공동체 정신과 '우도다움'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직 '제주다움'이 뭔지도 잘 모르겠는데 '우도다움' 이라니! 그 우도다움이 뭔지 알고 싶다는 호기심에 계간지를 몇 부 얻어 읽기 시작했다. 창간호에는 우도 계간지가 생기는 것을 반기는 사람들, 특히 우도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인물들의 축사가 담겨 있었다.


  이밖에도 나름 탄탄한 구성으로 다양한 코너가 담겨 있었는데 '우도밥상'이라는 이름의 코너에서는 마을 주민 한 명의 인터뷰와 그가 잘 만드는 음식 레시피(소라무침, 땅콩강정 등)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땐 경허멍 살아수다(그땐 그렇게 살았지요)'라는 코너에는 옛날 사진과 함께 우도 주민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출처: 계간지 '달그리안'


  어버이날을 맞아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경운기를 타고 우도봉으로 나들이를 간 모습은 영화 오만과 편견이나 드라마 브리저튼 속 중세 영국 귀족들의 나들이 장면의 우도 버전을 보는 것 같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때를 추억하며 "가난해서 먹을 쌀이 없어도, 좁쌀 한 솔박만 있어도 서너 집 이웃들을 불러 나눠먹어신디..."하고 이야기하는 인터뷰를 보면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끈끈했다던 공동체 정신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었다.


  그 밖에도 한방병원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와서 침을 놔주었다는 소식, 우도 어르신들을 모시고 옛날처럼 우도봉 나들이를 갔다 온 사진, 리별 체육대회에서 어느 리가 줄다리기에서 우승했는가 하는 내용과 함께 우도중학교 아이들이 직접 그린 만화 등 연령과 성별을 떠나 우도 주민 모두의 소식과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같은 추억과, 같은 헤어짐과, 같은 어려움을 공유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자꾸 귀 기울여졌다. 마을 문고를 만들고자 원정 물질을 다녀오는 해녀들이 책을 사 와 기부했던 일이나,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제주도 본섬으로 헤어진 아이들(우도에는 고등학교가 없다)이 다시 만나 놀았던 추억, 우도 학생들이 등하굣길에 겪는 교통의 불편함을 지적한 글까지. 모두 우도에 대한 각기 다른 형태의 사랑 고백처럼 들렸다.


  도시화가 진행되며 천지개벽하듯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에 상실감을 느끼는 이야기는 근대 소설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우도에서는 현재진행형이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수많은 사람들 사이 익명성이라는 편안함을 느끼며 자라온 나는 이와 같은 애향심과 공동체 정신, 특히 지역을 기반으로 한 연대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 생경했다.


  계간지를 다 읽고 부스를 나설 때까지 '우도다움'이 뭔지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쩌면 우도 땅콩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도 땅콩은 보통의 땅콩보다 알이 반쪽만 하게 작은 대신 더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물이 빠르게 빠져나가버리는 현무암의 지반 때문에 크기를 키우는 대신 작은 크기지만 그 안에 영양소를 응축하는 식으로 적응한 것이다.

 

  땅 속에서 오밀조밀 다 함께 자라는 땅콩, 물이 빠르게 빠져나가 크기를 키우지 못하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고소함을 단련하는 땅콩을 생각하니 우도 사람들이 떠올랐다. 어려워도 나누고, 함께하고 연대했던 우도 사람들. 그렇게 어려움 속에서도 우도를 지켜온 땅콩같은 사람들로부터 우도다움이 생겨났으니, 오늘의 축제는 땅콩들의 소라축제였다.



커버사진 출처: JTBC, "[지금이제철] 제주 우도엔 '볶지 않고 먹는 땅콩'이 있다?", 201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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