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소라축제(1)
가장 제주다운 섬이자 2022년 말 기준 1700명이 채 안 되는 주민들이 사는 우도에서 ‘우도 소라 축제‘가 열렸다. 우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땅콩인데, 땅콩 축제가 아닌 소라 축제를 한다는 것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땅콩 축제가 아니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른 아침부터 소라 축제를 보러 우도에 오는 사람이 없었던 걸까. 일찍 우도에 도착한 나와 몽은 아직 한산한 축제장에서 몇 없는 사람들의 의아한 눈길을 받으며 서 있었다.
우도 천진항에 마련된 축제장은 ㄱ자로 꺾인 항구 공간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ㄱ자 항구의 한쪽 면에서는 간이 무대와 우도의 4개 리(천진리, 서광리, 오봉리, 조일리)에서 준비한 향토 음식점 부스,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어 음식을 먹으며 무대를 관람할 수 있었다. ㄱ자가 꺾이는 중간 지점에는 금소라 은소라 잡기 행사가 펼쳐질 간이 풀장이 놓여 있었고, ㄱ자 항구의 다른 한쪽 면에는 지역 홍보를 위한 부스나 체험존, 우도 음식점들이 참여한 먹거리존이 마련되어 있었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여지없이 풍물패였는데, 10시 반에 축제의 포문을 열기로 한 풍물패가 축제장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의아하게 생각하던 무렵, 사람을 가득 태운 한 척의 배가 우도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아직 한산한 축제장에서 사람들은 일제히 배가 들어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음식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애써 신경 쓰지 않는 척 힐끗힐끗 바다를 내다보았고 음향 팀은 즐거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당신들이 와야 비로소 이 축제가 즐거워진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아직 항구에 도착하지도 않은 배를 향해 강렬한 비트의 음악을 틀었다.
어쩐지 나까지 간절한 마음이 되어 배 난간에서 축제장 쪽을 살피는 사람들을 애타게 바라보던 중 어디선가 풍물놀이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설마 하는 생각에 축제장을 뛰쳐나가 배가 정박하는 항구 쪽으로 달려가니, 아니나 다를까 전략적으로 배가 정착하는 곳에 자리를 잡은 풍물패가 온몸으로 자신을 봐달라는 듯 빙글빙글 돌며 배에 탄 사람들을 향해 구애의 풍물놀이를 펼치고 있었다. 풍물패는 승객들이 하차함과 동시에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그들을 모두 이끌고 축제장 안으로 들어왔다.
"소라 축제 하나 봐!"
다행히 많은 사람들이 축제 천막에 관심을 가졌고, 예약을 하고 온 식당을 찾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착석해 우도의 4개 리에서 준비한 음식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해물파전과 소라무침을 시킨 우리는 다른 축제장에서 먹었던 것과 차원이 다른 감칠맛에 감탄했다.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이 아니라 우도 부녀회(주로 해녀들)에서 직접 준비한 음식들이기에, 다양한 제철 재료를 꾹꾹 눌러 담아 방문객들에게 주고자 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해물 파전에는 부추와 오징어 외에도 톳과 당근이 빈틈없이 차 있었고 신선한 야채와 소라가 매콤한 소스로 버무려진 소라무침은 막걸리를 불렀다. 실은 한 익명의 우도 부녀회원이 음식을 내어주며 안타까워 이루 말할 수 없다는 목소리로 "여기에는 우도 막걸리를 같이 곁들이면 딱인데...!"하고 말했는데, 상술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진실한 어조에 우리도 중요한 무언가를 막 기억해 낸 사람처럼 무릎을 탁 치며 막걸리를 구입할 수 있었다.
제주 이주 7개월 차, 제주도가 좁다는 것을 새삼 느끼던 나는 내내 전을 부치고 쪼그려 앉아 재료를 다듬고 상을 치우던 우도 여성들이 어쩐지 건너 건너 아는 누군가의 어머니일 것 같아 퍽 마음이 쓰였다. 그들의 헌신에 보답하는 길은 먹어서 응원하는 것뿐이라는 그럴듯한 변명과 함께 소라무침과 파전과 막걸리와 소라구이까지 먹어치운 우리는 다음 차례인 '금소라 은소라 잡기'를 기다렸다.
금소라 은소라 잡기는 소라 껍데기가 있는 수영장에 들어가 앞이 보이지 않는 물안경을 쓴 채 제한시간 안에 금소라와 은소라를 줍는 게임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진행자가 금색, 은색으로 칠해진 뿔소라 껍데기를 무작위로 뿌렸고 참여자들은 손을 내저으며 금소라와 은소라를 찾기 위해 소라 껍데기를 잡히는 대로 주워 담았다.
금소라나 은소라를 바로 앞에서 놓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심장도 꽤나 쫄깃하게 만들어서 "오른쪽!", "앞으로 세 발짝!", “좀 더 왼쪽에!”와 같은 지령이 난무했고 저마다 아우성이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참여해 볼까 내심 몸을 풀던 나는 물에 반쯤 몸을 담그고 네 발(?)로 보행하는 어린이 친구들의 기세와 쏟아지는 포효를 견딜 자신이 없어 꼬리를 내렸다.
나름 축제의 인기 프로그램이자 대표 프로그램이었던 금소라 은소라 잡기는 축제 기간 내내 여러 번 진행되었고, 축제 마지막 날 진행된 금소라 은소라 잡기에는 몽도 바지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그의 주변에 금소라는커녕 은소라도 떨어지지 않아 (나의) 안타까움을 자아냈고, 그런 상황을 알리 없던 옹은 열심히 그냥 소라 껍데기만 한참 주워 담다가 옆 사람과의 치열한 접전 끝 가까스로 은소라 하나를 집어 들었다.
마지막 금소라 은소라 잡기 대회에는 음식을 만들던 우도 부녀회에서 파전을 부치던 뒤집개와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나섰다. 그동안 열심히 구운 소라를 손질하고 소라를 무치기만 하던 그들에게서 금소라를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앞이 가려진 물안경을 쓰는 게 규칙이었지만, 게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녀분들 모두가 물안경 따위는 내팽개치고 그저 보이는 대로 금소라와 은소라를 주워 담으며 깔깔대고 웃었다. 사회자는 이 누님들 안 되겠다며 농담조로 타박을 했지만 우도 부녀회 해녀들은 애초에 상품권이나 규칙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 금소라와 은소라를 한가득 품에 안고 서로를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축제 한켠에서 읽은 우도 해녀의 인터뷰 기사가 떠올랐다. '부잣집 잔칫상에서나 볼 수 있었던 뿔소라 음식을 이제 편히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며 환히 웃었다던 모습과 눈앞에 펼쳐진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제야 비로소 땅콩이 아닌 뿔소라를 테마로 축제를 만든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땅콩이야 밥에도 넣어 땅콩밥을 해 먹을 정도로 주식이었지만 뿔소라는 옛날 우도민들에게도 귀한 음식이었다. 물도 안 나오는 척박한 섬 우도에서 뿔소라는 해녀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고, 잡는 족족 일본 상인에게 파느라 그들조차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관광객의 시선에서만 보고 우도 하면 땅콩이니 땅콩 축제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했지만 소라야말로 옛날 우도민들의 삶을 지탱해 온 원천이자 그 자체로 축복이었으니 우도에 잘 어울리는 축제는 소라 축제가 맞는 듯하다. 어쩌면 우도 해녀들에게는 모든 소라가 금소라, 은소라였을지도 모르겠다.
출처: 이인경, "이봉춘 할망의 뿔소라무침", 달그리안, 2017년 겨울 창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