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좋아하는 모스카토 와인과 내가 선호하는 가격대의 와인이 어느 정도인지 감을 잡았지만, 음식과의 궁합을 찾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남자친구가 모스카토를 사서 집으로 오고 있었고, 나는 함께 먹을 치킨을 미리 시켜놓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원래 시키기로 한 치킨은 달달한 양념 맛을 자랑하는 교X치킨의 허니콤보였지만, 때마침 친구에게 치킨 기프티콘을 받았던 것이 생각났다. 선물 받은 기프티콘은 핵불닭맛 치킨.(정확한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스파이시미사일, 마라불바다 같은 혁명적인 어감이었다) 매콤한 게 당기는데 굳이 메뉴를 바꿔야 하나 싶어 그대로 주문을 했다.
때맞춰 배달온 치킨을 먹기 좋게 세팅해 놓고 기다렸지만 정작 이 모습을 본 남자친구는 난색을 표했다.
"모스카토랑 핵불닭맛 치킨을 어떻게 같이 먹어?"
이게 무슨 소리요
그날 저녁 핵불닭맛 치킨과 모스카토를 먹는 건 우리밖에 없을 거라는 이야기를 귀에서 핵불닭맛 소스가 나올 때까지 들었다.
내 표정이 급격히 안 좋아지는 것을 목격한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수습했다.
"아... 몰랐구나~ 몰랐었을 수 있지. 맞아."
"... 그래도 상식적으로 어떻게 이걸...(중략)"
쉽게 끝나지 않던 이야기 끝에 그의 짧은 와인특강이 있었다. 와인 맛의 강도와 음식 맛의 강도는 비슷하게 맞추는 것이 좋다.
달콤한 디저트 와인은 케이크, 과일, 마카롱처럼 단 음식과 함께하면 좋다.
화이트와인은 미네랄이 풍부하고 산미가 있어서 해산물의 비린 맛을 잡아주고, 입맛을 돋우어서 회나 초밥, 바지락 술찜, 봉골레 파스타 등과 잘 어울린다.
그보다 바디감이 높은 편인 레드와인은 육류와 잘 어울린다. 육류 중에서도 후추와 허브를 뿌려 양념을 한 정도, 불 향을 입힌 정도가 강할수록 맛이 강한 와인이 잘 어울린다. 가령, 잔당감이 있는 미국 진판델은 불고기나 갈비, 진득하고 묵직한 이탈리아 아마로네는 족발이 잘 어울린다고 한다.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
때로 음식 맛을 와인이 따라오지 못할 수도 있고, 와인이 음식의 콧대를 누르며 압도적인 향을 뿜어낼 때도 있다.
"잘 봐 언니들 싸움이다"에 이어, 와인의 세계에서는 음식이 강한 놈일수록 더 강한 와인이 적수로 등장해야 하는 '스트릿와인파이터'적 성장 드라마도 있는 것이다.
그 후로 와인을 즐길 때는 함께 먹을 음식도 잘 선별해 고르려 노력한다. 식당에서 와인을 시킬 때에는 음식을 선택한 후 꼭 그와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 달라고 해서 페어링 해 먹는다.
와인은 기성품인 사이다나 콜라와 달리 살아있어서, 병입 한 후에도 어떻게 보관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도 하고 색이 변하는 속도와 와인의 성숙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운반 과정에서 미세한 떨림을 계속 겪은 와인이 현지에서 마시는 와인에 비해 더 빨리 숙성되는 것은 고생을 하면 빨리 늙는 우리 모습과도 닮아있다.
또, 수십만 개를 만들어도 맛이 같은 탄산음료와 달리 포도를 발효시켜 만들다 보니 흙의 비옥도, 그 해의 날씨, 오크통에서 숙성을 거치며 머금게 된 오크의 향 등은 매년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것들을 함께 느끼며 마시는 게 와인이라고.
보관이 어렵고 맞추기 까탈스러운 음식은 내 취향이 아니다. 어디에든 잘 어울리는 사이다나 콜라와 비교하면 와인은 예민한 공주님 같달까... 대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와인이 '살아있다'는 점은 그 무엇보다 나를 매료시켰다. 생식을 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조리된 음식을 먹는다. 음식은 재료의 조화와 간, 온도 등이 절정에 이르러 완성되고 서서히 생명이 꺼져가듯 온기를 잃는다.
그러나 와인은, 깨지거나 흔들릴 세라 조심스럽게 다루고, 적절한 온도에서 직사광선을 피해 보관하며, 잘 숙성되었을 때 코르크를 열면 이에 화답하듯 연 직후와 1~2시간이 지난 후, 3~4시간이 지난 후, 하루가 지났을 때 모두 각기 다른 맛을 보여주며 자신을 뽐낸다. 품고 있던 생명력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살아있는 와인을 마시니 자연스럽게 그와 어울리는 살아있는 음식, 갓 만든 좋은 음식을 먹게 되고, 나 자신을 대접해 주는 듯한 느낌도 받는다.
까탈스럽지만 생명력이 있어 와인 자체가 좋아졌다. 와인 덕분에 생명력을 가진 것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까탈스러움이 있다는 것과, 생명력을 가진 것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그 가시까지 껴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까탈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소주보다, 캔맥주보다 와인이 더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