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보다 넓은 맛의 세상
그렇게 음식에는 어울리는 와인이 있다는 걸 알고, 모스카토의 다음 단계인 화이트 와인으로 넘어가려 했지만 좀처럼 마음이 가지 않았다. 모스카토의 단맛을 어찌 잊으란 말인가.
보통 와인을 배울 때 모스카토부터 시작해 화이트와인, 레드와인 순으로 넘어가는데 산미가 높은 종류의 화이트와인이나 미네랄이 강해 쓴맛만 나는 와인을 몇 번 마시고 나니 정이 떨어졌다. 취향을 모르니 취향을 찾는 과정에서 맞지 않는 와인만 마셔 정이 떨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호하지 않는 화이트 와인 종류도 알게 되었는데, 오크향이 강한 와인이었다. 산뜻함을 기대하며 마신 희고 투명한 화이트 와인에 오크향이 강하면 인지 부조화가 온다. 마치 귀여운 아이에게 "애기야 까꿍! 안녕 해봐. 안녕~" 이라고 했는데 걸걸한 목소리로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말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개 찾아온 와인 권태기, 혹은 다시 모스카토만 마시려고 하는 모스카토 퇴행기를 한번 넘어가 보고자 일일 와인 수업을 들으러 갔다.선생님의 현란한 말솜씨와 함께 엄선된 와인을 조금씩 마시며 와인을 마시는 법과 맛을 느끼는 법,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들에 대해 배웠다.
그곳에서 맛본 몇 가지 화이트 와인 중 허브 향이 나는 와인이 있었는데 내 취향에 딱 맞았다. 뉴질랜드의 소비뇽블랑으로 만들어진 '배비치(Babich)'라는 와인이었는데, 단 맛은 없어도 파릇파릇한 풀 향이 상쾌한 느낌을 주었고 과실향과 약간의 산미가 입맛을 돋웠다.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네가 제대로 된 걸 안 먹어봐서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완강한 태도가 수반될 경우 그들의 의도와 전혀 다르게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도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다가 점점 좋아하게 된 것들이 있다.
양꼬치를 처음 먹었을 때 비린 맛이 나서 내 취향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양꼬치로 유명한 식당에서 맛있게 먹은 후로 양꼬치는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축하할 일이 있어 잔을 부딪치고 싶은 금요일 저녁이나,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버린 주말을 만회하고자 식사만은 정말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일요일 저녁) 찾는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마음에 쏙 드는 화이트 와인을 한 잔 마시니 그동안 마신 화이트 와인은 그저 경험이다 치며 심지어 높게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모두 비슷하게 단 맛이 두드러진 모스카토와 달리, 화이트 와인은 맛과 향이 더 다양하기에 내 취향에 맞는 것을 찾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내 입에는 맞지 않은 화이트 와인이었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입에는 맞았겠지.
불닭볶음면만 먹어보고 한국 음식은 매워서 내 취향이 아니라고 말하거나, 청국장만 먹고 한국의 국은 냄새가 나 싫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다면 우리는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를 것이다. 우리가 누구던가, "밥 먹었냐"는 말로 안부 인사를 하는 K-민족. 그 자리에서 맵지 않고 향이 강하지 않은 다양한 K-음식 리스트를 늘어놓으며 요리라도 해다 줄 태세를 보여도 부족하지 않다.
이처럼, 어떤 것이 취향에 맞지 않다면 때로 그 안에 탐험할 수 있는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영원히 멀리할 줄로만 알았던 화이트 와인 중에서 새로운 취향을 발견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탐험한 화이트 와인 세상 속에는 푸릇한 향의 싱그러운 와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