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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혹의 우뇌 Jan 07. 2017

루비콘 강의 고독

행하라,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아니다

때는 바야흐로 기원전 1세기 이탈리아 반도. 라벤나에서 왼쪽으로 아드리아해를 바라보며 남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30km 정도 남하하면, 역사의 중심에 있던 강 루비콘 강을 만날 수 있다. 폼페이우스와의 승부를 내야 했던 줄리어스 시저는 역사적인 그날 아침 7시쯤, 루비콘 강 앞에 섰다.


고향인 로마로 돌아가면 자신의 반대파들과 일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돌아서자니 폼페이우스 측의 자신에 대한 모함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던 시저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 강을 건너면 인간세상이 파멸하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 나아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의 명예를 더럽힌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시저가 루비콘 강을 건너는 모습을 묘사한 사진. 출처: MailOnline (http://www.dailymail.co.uk)


그는 결단을 내렸다. 루비콘강을 군대와 함께 건넌다는 것은 자신을 기다리는 정적들과의 피할 수 없는 대결에 임하겠다는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세상을 살며 적을 만드는 것은 결코 유익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결단을 내릴 때는 항상 찾아오기 마련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다. 결단력, 인생의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용기다.


몇 년 전 인터넷을 통해 회자되었던, 어느 노 교수의 퇴임식 일성이 떠오른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해라.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도전은 용기를 필요로 하고, 용기는 항상 두려움을 동반한다. 역사상 최고의 농구선수라고 평가받는 마이클 조던은 “두려움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라고 했다. <데미안>의 ‘아브락사스’, 새가 날기 위해서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 새하얀 속살이 거친 껍질의 표면과 부딪히는 고통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날아오를 수 있다. 그 고통 자체를 거부하면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과도한 분석으로 인한 행동불능 (paralysis by analysis)’이라는 용어가 있다. 결국 결단할 때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한 예로,  산업화의 주역 기업 포스코(전신: 포항제철) 창업을 적극 지원하겠다던 대한민국 정부의 계획을,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은행(World Bank)이 여러분석 끝에 반대했다는 일화

는 이러한 관점을 뒷받침해준다. 혁신의 가장 큰 적은 바로  과도한 분석, 혹은 막연한 권위에의 의지이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의 삶이 어떤 상태인지 뒤돌아 볼 필요가 있다.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민족의 흥망성쇠에 관해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은 적이 있다.


“도시 건설에 나타난 사고방식의 차이가 이 세 민족의 이후의 운명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방어에는 완벽하지만, 발전을 저해받기 쉬운 언덕을 좋아한 에트루리아인. 방어가 불완전한 곳에 도시를 건설한 덕분에 결과적으로 밖을 향해 발전하게 된 로마인. 통상에는 편리하지만, 자칫하면 적의 존재를 잊게 만드는 바닷가에 도시를 세운 남부 이탈리아의 그리스인.”


팍스 로마나의 밑바탕에는 앞을 향해 전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로마의 지정학적 배경이 일조를 했다는 이야기다. 百尺竿頭進一步(백척간두 진일보). 앞도 뒤도 옆 물러날 곳이 없는 가운데 내딛는 한 걸음. 물러날 곳을 만들지 않는 삶이 가장 지혜롭고 안전한 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다.


올해부터는 일터에서든 개인 생활에서든 이것저것 따지는 것을 많이 줄여보려고 한다. 원래 그런 성격도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랫동안 행동하고 싶은만큼 하지못하고 고민만 한 적이 많은 것 같다. 즉흥적인 (동시에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행동이 나오지 않는다면, 글로라도 적으려고 한다. 당장 오늘부터 회사에서 보낼까 말까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던 이메일을 그냥 보내버렸다. (약간 후회는 하지만 시원하기도 하다. 아니면 말고. 어쩌라고! - 의외로 결과는 괜찮았다.)


우연히도 오늘 퇴근길에 잠깐 들른 곳에서 일하는 31세의 사장님은, 디자이너를 하다가 갑자기 낮시간을 오롯이 가지고 싶어서 그냥 밤에만 잠깐 일할 수 있는 위스키 가게를 오픈했다고 한다. 자기가 아마 생각을 많이 했다면 아마 못했을 거라고, 사업이 이렇게 복잡한 일인지 몰랐다면서 말이다. 동시에 지금은 낮시간이 있어 좋고, 해보지 않은 것을 하며 배운 점이 있어 좋다고 했다.


그러니 고독한 당신이여. 두려움은 허상이다. 지금 루비콘 강에 서있든, 아님 어디에 있든, 무엇이든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로 지금 말이다. 

If not now, then when?


참고자료

코리아타임스: Men of steel: the founding history of POSCO

"로마인 이야기 1: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 저, 김석희 역, 한길사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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