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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혹의 우뇌 Jan 09. 2017

설렁탕 패러독스

Why, how, and what?

무대는 한 기업의 신입사원 면접장이다. 최종면접이 끝나고 지원자들과 임원들이 설렁탕 집에 들렀다. 지원자들은 누구나 합격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 설렁탕을 앞에 놓은 지원자들은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어 좋았겠지만, 사실 그 식사는 비밀리에 진행된 최종 인터뷰였다. 설렁탕을 먹을 때는 사람마다 기호가 다르다. 소금을 넣는 사람들이 있고, 후추까지 넣는 사람들도 있다. 기호는 제각각이고 먹는 것은 사람 자유인데, 식사가 끝나고 난 후 기업 임원들은 최종합격자를 결정했다. 정말 (치사하게) 먹는 것 가지고 사람을 판단한 것이었을까?  


가끔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이 질문을 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답변들이 ‘밥을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는지’, ‘어른들이 숟가락을 뜨는 것을 기다렸는지’, ‘깍두기를 다른 사람들을 위해 먼저 잘라놓았는지’등 (재미있었지만) 한국 사회의 소위 처세술 혹은 예의에 관한 내용이었다. 답변들을 들으며 아직도 뿌리 깊은 유교 문화가 창의성 계발을 저해하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결정의 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러나 논리적이었다. 설렁탕 국물을 먼저 떠먹고 난 후 소금이나 후추를 넣은 사람을 합격시키고, 국물을 맛보지도 않고 양념을 친 사람은 탈락시킨 것이다. 국물의 맛을 먼저 봐야, 개인의 기호에 맞게 소금이나 후추를 넣어야 할지 아닐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는 관성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하는 대로 사는 것이다. 평가자들은 설렁탕을 먹는 참가자들을 보며, 누가 ‘문제(국물의 맛이 어떤지)’를 먼저 파악하고 ‘해결(소금이나 후추 첨가)’할 수 있는, 리더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인지, 작은 습관을 통해 엿보았던 것이다.


과연 우리는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본질적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 적이 있었던 가? 아니면 살다 보니 남들이 그저 하는 대로, 세상의 관성에 이끌려 살고 있는 것인가? 나의 오늘이 스스로 원하는 삶에 얼마나 근접해 있느냐는, 스스로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지며 하루를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지 모른다.


리더십 전문가 사이먼 사이넥 (Simon Sinek)은 "영감을 주는 리더들 그리고 단체는, 내부에서부터 바깥으로 (inside out) 생각하고, 행동하며, 소통한다"라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what)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how)하는 게 최적인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고, 무엇보다 왜(why)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간과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했다.


유튜브 링크 참조.

사이먼 사이넥의 TED 강연은 어떻게 리더들이 생각을 했는지를  Why, How, What의 간단한 아이디어를 통해 설명한다.


예전에 경력개발과 관련해 고민하다 박사학위 지원 여부를 놓고 대학원 은사께 자문을 구한 적이 있다. 그때 받았던 이메일 답변은 아직도 마음에 깊이 남아있다.


“학위는 배움과 지식 탐구가 목적이지 나머지는 허구다. 5-6년 동안 학위를 위해 공부한다는 것은 기회비용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 사이좋은 직장에서 진급하고, 혹은 이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경우에도, 공부에 대한 의지로 공부를 마친 이후의 불확실한 미래를 충분히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경우, 멋으로 학위를 따는 것이며 언젠가는 후회한다. 따라서 학위를 받고 싶으면 그 이후의 과정을 생각하지 말고 배움 그 자체에 큰 행복과 만족을 느껴야 한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필자는 멋을 생각했었기 때문에 이 충고가 가슴 깊이 박혔다. 개인의 필요와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채 획득한 자격은 사실 껍데기에 불과하다. 유엔 근무를 포함해 이제 국제기구에서 일한 지 꽤 되다 보니, "국제기구 입사"를 위해 필자에게 질문을 하는 후배들이 많다. 비슷한 논리로, 필자가 준비해놓은 답변은 이렇다.



“국제기구는 사실 그 수가 너무 많다. 주제는 환경, 인권, 경제, 사회, 문화, 여성, 안보, 통신, 지적재산권 등 광범위하다. 그러니 국제기구라는 허울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어떤 주제를 다루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싶은지, 대체 왜 그 일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 그게 꼭 국제기구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면 국제기구 취업에 도전하고, 그게 아니라면 다른 방안을 찾는 게 좋다. 무조건 국제기구에 취업을 하겠다는 의지는 위험하다.”


그렇다고 굳이 우리의 하루의 행위를 대변하는 동기나 이유가 거창할 필요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왜 지금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지를 스스로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언가 불편하다면, 그 존재의 이유를 찾아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경영학자 윤석철은 현대인들에게 “복잡성을 낮추고 단순성을 회복하라”라고 했는데, 우리의 업(業)의 목적, 나아가서는 삶의 이유를 단순화시키기 위해 고민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짭짤한 설렁탕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단 자리 앞에 놓인 국물을 먼저 맛보아야 소금을 넣을지 아닐지 판단할 수 있다. 이미 소금 간이 많이 되어있는데, 무턱대고 소금을 들이부으면 한 끼 식사를 망칠 수 있다. 시간은 앞으로 흐를 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에 아무 양념이나 무턱대고 칠 필요는 없다.


참고문헌

1. 설렁탕 관련한 면접 이야기는 수프를 먹을 때 (소금이나 후추로 간을 조절하는 지를 보고) 채용여부를 결정했다는 해외 사례를, 필자가 한국적 상황에 맞게 각색한 내용이다. 관련 참고서적은 <생각 3.0>(노경원, 엘도라도 2010)

2. <삶의 정도> (윤석철, 위즈덤하우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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