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6년도 넘은 이야기다. 작은 마을에서 그들은 염색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공장이라고 해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집 뒤뜰에서 과일이나 약초를 삶아, 천연염료로 옷을 만들고 있었다. 베틀을 짜는 동네 아주머니들을 고용했다. 그 아주머니들에게 쌀값은 될 것이다. 쉽게 말해, 사회적 기업이다. 홍대에 이들이 생산하는 옷을 파는 디자이너 숍이 생겼다.
염색 옷을 만드는 사장님은 명민하고, 논리적인 분이었다. 그는 거대 자본을 신뢰하지는 않았다. 비즈니스가 현지인들과 함께 마을기업이 되어 천천히 운영 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깊은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국, 한국을 마다하고, 굳이 스스로 캄보디아까지 와서 살 필요는 없었다. 몇 번의 방문 중 한 번은, 그의 5살 난 딸이 열이 나고 아팠다고 했다. 같이 걱정이 되었다.
필자는 정부와 국제기구의 돈과 힘을 가지고 드러내는 일을 하러 자주 그곳에 방문했었다. 그들의 고귀한 인생 앞에서, 미천한 자금과 사회적 지위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직도 개발에 서툰 우리는 새마을 운동 홍보나 한다고 세계를 누볐다. 도움 주러 왔다고 대단한 척하는 것은 하수다. 사실, 대부분 도움을 주러 온 사람들이,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게 배우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을, 눈을 보며 한 수 배우고, 초심을 생각하고, 인류애를 머금고 가면 그것으로 족하다.
메콩강은 그 날 밤에도 고요히 흘렀다. 이들이 만드는 천연염료처럼, 강물에 다채로운 색깔이 비치는 듯했다. 저녁에 혼자 미풍을 맞으며 강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는 자우림의 노래가 생각이 난다.
개발협력 일을 하며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과, 또한 느긋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교차했다. Festina Lente.
"내 가슴속에 폭풍은 언제 멎으려나 바람 부는 세상에 나 홀로 서 있네."
ㅡ자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