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초여름이었던 것 같다. 첫째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출장을 가야 했다. 그날은 급하게 짐을 싸느라 호텔예약 웹사이트에 들어가 저렴하고 일하기 멀지 않은 곳에 아무데나 골랐다. 미얀마 양곤 공항에 착륙 후에 택시를 타고 텅빈 거리를 질주한 후, 자정이 넘어서 투숙한 호텔 (사실 모텔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다)에 거의 쓰러지다시피 체크인을 했다. 며칠 육아와 일에 치여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이었다.
짐도 정리 안 하고 일단 자고 싶었다. 방에 불도 켜지 않고, 간단한 세면만 하고 누웠는데 등 뒤에 까칠한 것들이 느껴졌다. 며칠 야근과 육아로 몸이 가라앉은 상태에서의 갑작스러운 출장이라 노곤한 몸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위를 식히려는 마(麻) 종류의 시원한 침대 깔개려니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비행에 지쳤기 때문인지 그날은 참 잘 잤던 것 같다.
이튿날, 커튼을 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침대 시트 위에 죽은 모기와 작은 나방들의 시체들이 널 부러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샤워장으로 돌진하다 갑자기 원효대사가 떠올랐다!
그가 당으로 유학을 가던 길, 어두운 밤 동굴 속에서 물을 발견하고 달콤하게 마시고 갈증을 풀었는데,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그 물이 해골 바가지에 고여 있던 더러운 물이었다는 그 일화 말이다. 솔직히 뭐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원효의 일화가 생각이 났다는 자체에 체험의 의미를 뒀다.
결론은 모든 일이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원효는 그 길로 당 유학을 취소하고 구도자의 자세로 살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다음 날 월등하게 깨끗한 호텔로 거처를 옮겨, 샤워를 몇 번이고 다시 했다! 그 때 내게 구도는 출장 동안 잡은 미팅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