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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혹의 우뇌 Dec 29. 2020

불편한 진실 2020

화상 통화 너머 백발 노정객의 모습이, 15년전 핏대를 높여 이상기후를 설명하던 장면과 겹쳐진다. <불편한 진실 (Inconvenient Truth, 2006)>. 과학과 미디어를 활용, 기후변화 문제를 단순한 환경운동이 아니라 경제사회적 문제로 격상시켰던 기념비적 다큐멘터리였다. 안타까운 것은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을 아직까지 설득해야 하는 현실이지만, 희망적인 것은 현재 진행형인 그의 열정이다. 미국의 전부통령 앨 고어의 이야기다. 

불편한 진실 (2006). 기후변화 관련 기념비적 다큐멘터리.

파리기후변화협정 체결 5주년인 올해는 참 드라마틱했다. 미증유의 감염병 창궐로 기후위기를 잠시 잊었다가,  결국 모든 것이 얽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월간지 네이처(nature climate change)

를 인용한 뉴욕타임즈 기사 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1월부터 4월까지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급격히 줄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중국, 인도, EU, 영국, 미국 등 대부분의 국가가 봉쇄카드를 빼든 4월에는 전년도 같은 기간 대비 탄소 배출량이 전년도 대비 약17퍼센트 감소되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뉴델리가 위치한 인도 북부의 경우 이 기간 동안의 대기질(air quality)은 20년만에 가장 좋은 수치를 기록했다. 감염병이 역설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에 일조한 셈이 됐다. 그러나, 봉쇄가 느슨해지면서 6월 다시 탄소 배출량은 전년도 수준으로 회복됐다. 이는 두 가지 단순한 시사점을 준다. 하나, 여러 국가들이 힘을 합해 경제활동 방식의 거대한 전환을 이뤄내면 인류는 충분히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던 대로, 편한대로 살면 탄소 배출은 지속될 것이다.


코로나 봉쇄 기간 동안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출처: 뉴욕타임즈)


2018년 스톡홀름복원력 연구소(Stockholm Resilience Institute)는 “지구위험한계(Planetary Boundary)”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기후변화·생물다양성·토양·담수·해양산성화·화학오염물질 등 9가지의 분야를 지정, 각 분야가 어떤 한계점(tipping point)을 지나면 복원이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진입한다고 경고한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들이 지구라는 하나의 생태시스템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 되어있어, 어느 요소 하나가 한계를 넘어서면 다른 요소의 한계도 넘어설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같은 해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패널(IPCC)” 제48차 총회에서는 과학자들이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지구 온도 상승폭이 1.5도 이상이 되면 지구 전체가 심각한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위험한계를 지나 자기복원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올해 EU, 영국, 중국, 일본, 그리고 우리 나라가 온실가스 배출량과 상쇄량을 셈했을 때 순배출량이 제로(0)가 되는 탄소중립(NetZero)을 전격적으로 선언한 것은 이러한 위기의식이 반영된 결과다. “더 나은 방향으로의 회복 (Build Back Better)”은 할 수 있으면 하고, 아니면 말고 식의 구호가 아니라, 생태계의 명령인 셈이다.

지구위험한계 (Planetary Boundary) (출처: 스톡홀름복원력연구소)

이번 달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 19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인간은 신속한 백신 개발로 능력을 일부 입증하기도 했지만, 제2, 제3의 코로나가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벌써 변종 바이러스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백신 개발능력을 갖추게 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생태계와 협상이라도 시도할 것인가? 코로나의 근원으로 박쥐나 천갑산 같은 야생동물이 지목되기도 했지만, 결국 인류가 마주한 일련의 기현상들은 인간의 활동이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한계로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산불이 계속 난다면, 미세먼지가 줄어 들지 않는다면, 태풍과 홍수가 계속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태계가 파괴된다면, 불완전한 지표인 GDP로 대변되는 경제적 성장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지속가능한 성장은 언어 모순이다. 생태적 관점에서 지구는 한계가 있고,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GDP 수치 상승에 속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1972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Limits to Growth)>를 통해, 인구증가와 함께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경제성장이 계속된다면 2100년께 생태적 경제적 붕괴에 직면할 수 있다고 한 경고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리가 마주한 불편한 진실은 결국 우리 미래의 문제다. 경제구조와 라이프스타일 전환의 문제다. 익숙하고 편한 방식에서, 불편을 감수하는 문제다. 더 늦게 되면, 아마 복원의 기회도 없을지 모른다. 에너지·농업·교통·폐기물관리 등 산업 전반의 일대 혁신이 요구되고,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한 차원에서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과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본래 혁신은 품이 많이 들고 불편하다. 그러나 지금이야 말로 “문제를 야기했을 때와 동일한 수준의 사고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격언을 곱씹을 때다.


세월의 무게를 짊어진 앨 고어를 다시 본다. 그의 머리는 하얗게 변했지만, 아직도 인공지능(AI), 머신러닝, 인공위성 등을 활용해 스타트업들과 전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원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기후추적(Climate Trace)”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기술이 상용화되면 더 이상 배출량을 측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거나, 배출량을 가지고 국가와 기업이 행여나 거짓 정보를 제시할 수 없게 된다. 대부분의 저개발국의 낙후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감안할 때, 이 기술은 온실가스 배출관리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다. <불편한 진실>이 개봉된 지 15년, 로마클럽의 경고는 약 50년지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세계 곳곳에 이미 수많은 앨 고어들이 기후위기, 생태계 위기 문제를 풀기위해 헌신하고 있고, 기술의 진보를 이끌어내는 혁신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왜 우리가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명제적 논쟁은 마무리하고, 어떻게 경제구조 대전환의 실행을 가속화할 것인지 소매를 걷어붙일 때다.

앨 고어 2020년 (출처: 블룸버그)

지난 2016년 태양광비행기를 고안, 성공적인 세계일주 비행을 마친 현 솔라임펄스재단 의장 버트랑 피카르드 (Bertrand Piccard)는 지난 11월 국제탄소거래파트너십 (ITAP)이 주최한 웨비나에서 탄소배출 문제는 결국 “우리의 잘못이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내가 구매하고 사용하지 않으면, 그들은 생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볼 대목이다.

Climate Trace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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