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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hn Mun Apr 28. 2022

<세계 종교의 역사> 리처드 할러웨이

#세계종교의역사 #리처드할러웨이 #이용주옮김 #소소의책 [평점 9.9 / 10.0]

제 스스로가 선정한 22년 최고의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계 종교의 긴 역사를 안내하는 간결하지만 세련된 입문서입니다. 종교를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 이상입니다. 단순한 믿음이나 복종이 아닌, 당시의 역사와 문화, 철학이 담긴 복합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해하기도 전달하기도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죠. 그러나 이 책은 정말 간결하고 세련되게 종교를 전달해주고 있습니다.

종교를 시간대별로 정리하는 건 사실 불가능합니다. 다른 문화권에서 각자의 형태로 발전했고, 서로가 영향을 주기도 하며 복합적인 관계를 그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오늘 현대 사회의 종교의 뿌리를 정리해 보는 것은 종교를 이해하기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아래의 연표는 책에서 정리된 내용입니다. 서두에 정리된 내용이지만 책을 다 읽고 다시 돌이켜 보면 정말 잘 정리된 연표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부터는 제가 스스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책 일부를 기록했고, 약간의 제 생각도 추가되어 있으니 참고만 부탁드립니다.

1. 인간의 상상력

종교란 전적으로 인간이 만든 것입니다. 무의식 안에 있는 두려움과 소망이 삶의 행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종교가 저 너머에 있으면서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관점은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신을 만났다는 예언자의 주장에 대해, 신과의 정신적 소통에 대해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서는 곤란합니다. 이들은 우리 상상력의 깊은 곳 무의식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해야 합니다.

2. 사후 세계에 대한 현자들의 고민

현자들이 생각하는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답은 달랐습니다. 인도의 현자들은 사후의 영혼이 영원한 상태에 머무르지 않으며 다른 생명으로 재탄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윤회의 관점입니다. 막 떠나온 생에서 쌓은 공덕과 현재 생의 공덕에 따라 다음 생이 정해지며, 궁극적으로는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이 최고 선이라 생각했습니다. 반면 기독교와 이슬람은 죽음 이후에 계속되는 삶에 집중했습니다. 현생의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며, 심판에 따라 구원받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영생이 구분되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입니다. 그들에게 구원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3. 아브라함을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종교는 셋

 아브라함을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종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입니다. 이들을 설명하는 방법은 정신적 계보와 물리적 계보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믿던 일신교를 유대인에게 전달했고, 유대인을 통해 기독교에게 전해졌습니다. 이후 7세기경 두 종교가 망가뜨린 일신교의 정신을 재생하기 위해 이슬람이 태어났습니다. 이는 정신적(일신교)인 계보입니다. 물리적으로는 아브라함의 큰아들 이삭은 이스라엘의 조상이며, 여기서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혈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다른 아들인 아스마엘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들이 무슬림입니다. 이렇듯 물리적인(혈통)의 관점도 존재합니다.  

4. 기존 종교와 권위의 타락과 새로운 예언자의 등장

아브라함의 세 종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기존 종교의 권위와 부조리에서 탄생했습니다. 이집트 종교의 상업적인 모습과 권위에 의존하는 정치적 타락을 보며 신의 진정한 모습을 잃었다고 비판한 이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종교를 이용해서 사업을 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알고 있었고, 우상을 숭배하는 신앙은 사기라고 비난했습니다. 기존의 이집트의 종교를 비판한 것이죠. 또한 이집트의 박해로 노예의 삶을 살고 있던 이스라엘인을 이끈 해방자는 아브라함의 혈통인 모세였습니다.

로마의 박해를 받던 이방인들에게 신의 평등함을 설파하던 이는 예수였습니다. 유대인의 전통을 지키라고 강요하지 않으며 로마의 많은 이교도들을 신의 자비 아래에 평등하게 대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의 성직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이용하여 큰돈을 벌어들이는 것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메카에서 태어난 무함마드도 상인들이 아브라함의 일신교를 타락시키는 것을 보면서 분노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에 반대하며 쿠란이라는 신의 마음을 강조했습니다. '알라 이외의 신은 없다'는 이슬람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5. 실용적인 종교 : 유교와 도교

동양의 종교는 속세와 밀접하게 발전했습니다. 종교는 무엇인가를 믿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와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즉 인간 공동체에 좋은 것을 가져다 주기 위해 자연의 힘을 관리하는 합리적인 방식이 그들이 종교를 이해하는 방법이었습니다.

공자의 유교는 사람들 간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공동체의 선을 위해 이 세상에서의 인생을 관리하는 것에 그 에너지를 집중합니다. 한편 노자의 도교는 통일성과 상호 의존성을 강조했습니다. 도를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어렴풋이나마 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생에서 중요한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를 했는데, 오히려 비장한 각오로 일을 그르쳤던 경험을 기억해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악착같은 마음을 포기했을 때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는 경험이 바로 도교의 정신입니다. 균형과 상보성(음과 양의 대립)이 도교를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6. 현대 종교의 근본주의자들


근본주의자들은 과학으로 설명되는 종교의 오류를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논쟁하지 않고 과학에 대해 선언할 뿐입니다. 다윈은 틀렸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하니까! 이는 마치 소리치며 아이와의 논쟁을 매듭짓는 부모의 모습과 마찬가지의 태도입니다. 증거가 아닌 권위로 반박하는 중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많은 종교들이 다윈에 적응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해방에 대해 고통스럽게 적응하며 배워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사회가 인식하는 여성차별의 문제보다 종교 내의 여성차별은 더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시대는 정지해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동성애자들의 해방의 문제를 훨씬 더 고통스럽게 해결해내야 합니다.

7. 종교는 폭력적인가

책임을 지는 사람은 절대 자진해서 특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는 역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예, 투표권, 여성인권 모두 가진 자들로부터 억지로 빼앗아야 했던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역사상 발생한 수많은 폭력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문제는 '왜 종교는 우리를 계속해서 괴롭히고 있는가'입니다.

종교적인 폭력이 유독 불쾌한 이유는 갈등으로부터 자비나 절제의 기회를 제거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쨌든 쉽게 폭력을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나 폭력의 가해자가 스스로를 신에 대한 믿는다면, 이는 다른 일반 갈등과는 달리 끝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용서와 원만한 합의로 이어지는 경우가 없죠. 극단적인 기독교 주의자, 무슬림의 지하드와 같은 경우입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종교의 심장부에 위치한 논리적 모순입니다. '왜 한 인간에게 자비로운 신은 다른 인간을 죽이라 명령하는가'입니다. 왜 유대인 자녀에 대한 신의 사랑이 팔레스타인 자녀의 절멸로 표현되어야 하는가? 자신을 유일자로 경배하는 무슬림 자녀들이 다수인 이교도의 자녀들을 박해하도록 명령했을까? 신은 자비롭지 않은 것일까요.

이런 신의 편애에 대한 모순을 설명하는 방법은 '신을 부정하는 것'과 '신을 본인들의 인성 안에 숨긴 것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본인이 무신론자가 되거나, 그간 종교가 저질렀던 악행과 선행을 모두 겸허하게 인정하는 것이죠.

종교는 역사 속에서 최악의 폭력을 야기했고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불편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런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을 이용한 것은 인간들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신을 믿는다면 신이 자비롭지 않거나 우리가 신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어느 쪽이 되었건 우리는 종교를 조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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