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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May 25. 2022

이제는 소확행이 아니라 지확행을 찾을 때

우프(WWOOF)를 통해 느낀 것들

소확행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삶을 유지하기 위한 힘을 부질없는 사치품들이 아닌 작고 소소한 소비를 통해 얻겠다는 생에 대한 의지가 묻어나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회의 여러 가지 폭풍우 속에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작은 지푸라기이다.


나도 정신적으로 지쳐있던 회사 생활 중에 먹었던 비싸고 좋은 음식, 매일 한 잔씩 마시는 와인, 한 달에 한 번씩 사는 새 옷, 금요일의 반차, 봄에 딱 일주일 피는 벚꽃, 1박 2일의 짧은 휴가가 참 소중했다. 그것도 없었으면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1프로의 힘조차 남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태풍 속에서 두 발로 곧게 서있기도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에 소확행에 많이 의지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소확행조차 힘을 다했다는 것을 느꼈다. 행복의 시간이 지속되는 길이가 점점 짧아졌다. 더 이상 새 옷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았고, 허무했다. ‘지속 가능한 확실한 행복’이 필요했다.


고민의 시간이 참 길었던 것 같다. 나는 환경과 기후위기에 관심이 많고, 자연을 좋아하고 동물들을 좋아한다. 돈을 벌기 위해 나를 갈아 넣어야만 하는 사회가 너무 벅찼고, 서로를 짓밟고 올라가야만 하는 경쟁구도를 조장하는 분위기를 경멸했다. 파괴를 해야만 돈을 벌 수 있는 자본주의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경쟁을 해서 상대방을 파괴해야 내가 승진해서 더 많은 연봉을 벌 수 있고, 자연을 개발해서 생태계를 파괴해야 산업을 유치할 수 있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소와 돼지를 좁은 우리에 넣고 키우다 죽이는 잔인한 과정이 계속되어야만 우리가 더 배부르게 먹고 살을 찌울 수 있다. 약자를 억압해야 권력자들이 더 힘을 키울 수 있고, 소수자를 탄압해야 나의 앞길을 막는 불편한 배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갈등이 만연한 도시에서 벗어나 연대하고 협동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다. 자연과 가까이 살며 다양한 생명들이 어우러지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그런 이상적인 곳이 존재할까?


달팽이 텃밭의 호스트가 만든 쑥개떡. 쑥개떡 만들기 체험을 하신다고 하여 촬영을 도와주었다.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거의 채식으로 음식을 만들어주신다. 많은 음식을 먹었지만 남은 사진은 하나, 두부 표고버섯 샐러드.


우프(WWOOF)를 통해 체험했던 유기농 농장인 단양의 ‘달팽이 텃밭’을 갔다가 도시의 사람들과는 달리 ‘찐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나의 바람이 터무니없는 허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시에서 만나서 귀촌의 꿈을 안고 모인 세 명의 친구들이 만든 터전인 달팽이 텃밭에는 내가 했던 고민들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야생고사리따기 체험을 하던 중 잠시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본 순간, 소백산의 부드러운 능선이 마을을 감싸고 있는 멋진 모습에 감탄했다.


건강한 먹거리와 건강한 삶을 바라고, 자신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불편한 사람들을 돕고, 서로 성향이 맞지 않아도 맞춰가면서 사는 모습이 도시의 그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매우 솔직한 목소리를 내지만 그럼으로써 이해하고, 불편한 말을 했다고 미워하지 않고,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은 쿨한 사람들이 만든 마을은 그 자체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행복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연스레 환경을 보호하는 활동을 하고, 조금이나마 채식을 지향하고, 쓰레기를 만드는 사치스러운 소비를 싫어한다. 그래서 내가 더 편할 수 있었던 것일까? 나는 그 누구라도 그곳에 가면 조금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지 않은 굉장히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어서 굳이 도시라는 우물에서 살아야 하나 싶었던, 내가 살았던 우물에서 이제 그만 나올 때가 됐다 싶었던  소중한 경험들이 있다. 행복이라는   별거 없구나. 자연 곁에만 있어도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그렇게 싫어하던 송충이를 관찰하고 있다. 부를 축적하기 위해 산을 깎고 개발하는  건너편 산의 포크레인  사람들과 그것을 시킨 사람들은 과연 실낱같은 희망으로 행복을 캐려는 사람들일까, 자본이라는 벗어날  없는 불행의 굴레  신기루 같은 행운을 캐려는 사람들일까?


꽃차 소믈리에 수업을 들으며 노후생활을 즐기는 멋진 분을 만났다. 자연이 주는 선물들을 먹는 법을 배우는 것도 우프의 큰 재미 중 하나.


이제는 나의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해 끊임없는 실험을 하고 강의를 듣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난다. 아직 그 결실이 어떻게 맺힐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서울의 아파트나 높은 연봉을 얻고 불행을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확실한 행복’이 목표라면 이 사회는 조금 더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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