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을 들고 떠난 신혼여행(1)

두 백수의 아이슬란드 여행기

by Hoho

불과 5년 전만 해도 내 인생의 목표라 여겼던 회사에서 스멀스멀 익어갔던 고름들이 터져버리고, 나만의 길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과감하게 사직서를 내버렸다. 내가 회사라는 곳에서 견디지 못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곳에서 내 가치관에 부합하는 목표를 찾기 어려웠다.


환경 파괴와 기후위기에 대해 책을 읽고, 다큐와 영화를 보고, 더 깊이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끊임없는 소비와 성장만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이면에는 항상 자연과 약자가 억압당하는 불평등한 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는 겉으로는 자연과 인간을 위한다지만 결국에는 인간을 자원(resource)으로 여기고, 판매를 통한 수익을 늘리고자 하는 이해관계로 뭉쳐있었다. 나무를 베어내는 만큼 나무를 심고, 재활용 플라스틱이나 사탕수수 플라스틱으로 제품을 만든다고 홍보를 하지만, 그 장막 뒤에서는 유통과정에서 버려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비닐들과 박스들, 저렴하게 만드느라 퀄리티는 뒷전인 상품들이 환불되어 끊임없이 버려지고 있었다.

참 모순적이지 않은가. 한 번 쓰고 버릴법한 상품을 예쁘게 디스플레이하고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 나에게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매니저들은 직원들에게 점점 더 빨리, 많은 것을 해내길 바라고 있었다. 회사의 좋은 문화 중 하나는 휴게시간과 업무시간을 개인의 특성에 맞게 자율적으로 설계하여 활용할 수 있었던 점이었는데, 이 또한 효율성이라는 명목아래 통제되고 있었다. 모든 것을 감시하고 직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회사의 욕심이 직원들의 목을 조르고 있는 느낌이었다. 외국계 회사였는데, 한국인 직원이 많아질수록 그러한 경향은 점점 더 뚜렷해져 갔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딜 가나 다 똑같아. 이 정도면 한국에선 사실 좋은 회사인 편에 속하지…” 한국 사회에서 나는 부적응자였다. 사람을 기계 부품처럼 여기고, 낡으면 바꾸면 그만이라는 시장의 논리에서 나는 삐걱대는 어딘가 틀어진 나사였다.


나의 퇴사에 이어 남편도 퇴사를 했다. 같은 회사에서 만났고, 나름 안정적인 직장이라 잘만 적응한다면 참 좋았을 텐데, 우리 둘 다 그곳에서 인생의 즐거움과 미래를 찾을 수 없었다. 남편에겐 다음 회사를 정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퇴사를 한다는 것이 큰 용기였다. 몇 개월씩 쉰다는 것을 큰 잘못을 하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반대로 나는 퇴사 후 나를 위한 온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큰 행운처럼 느껴졌다. 당장에 돈은 되지 않지만 배우고 싶은 것이 무척 많았다. 환경 문제에 대한 공부, 채식 요리와 흙집 짓기 수업, 사진 찍기와 글쓰기, 귀촌 준비와 여행. 닥치는 대로 해보고 싶었다. 남편은 나에게서 자극을 받아 퇴사를 했다. 그간 열심히 모은 돈에 퇴직금까지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쉬면서 꿈꾸는 미래를 찾아보자고 함께 다짐했다.




5년 10개월 간의 회사생활을 마치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다. 왜 아이슬란드였을까. 흑백의 산과 푸른 빙하의 사진에 혹했다. 사람에 치이지 않고 멍 때리며 대자연을 보고 싶었다. 버킷리스트였던 오로라와 빙하를 보고 싶었다. 운이 좋다면 화산까지.


예상치 못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덮쳐 전 세계의 모든 것이 록다운 되었다가, 조금씩 잠잠해지며 하나둘씩 음성확인서를 받아 해외여행을 나가던 시기였다. 아직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에 인천공항은 텅텅 비어있었다. 우리는 그저 해외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흥분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탄 비행기는 여전히 불편했고, 피곤하고 설렜다. 여행길이 힘들어도 좋은 이유는 눈앞에 펼쳐질 멋진 풍경과 유쾌한 사람들, 즐거운 경험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문득 고민하게 된다.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을 때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는데, 그 희망을 만드는 건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할까에 대해서.


공항에서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아이슬란드는 그 이름답게 어두침침하고 바람이 거셌다. 눈보라인지 비바람인지가 내 얼굴을 자꾸 때리니 바람을 가르며 캐리어를 끌어야 했다. 힘겹게 렌트카를 찾아서 첫 번째 숙소로 가 장거리 비행의 노고를 풀었다.


다음 날, 간단히 조식을 먹고 길을 나섰는데 9시 30분이 되어도 밝아지지가 않는다. 우리나라 새벽 6시의 어스름 느낌이었다. 아, 이게 아이슬란드구나. 북위 64도의 북극과 가까운 나라. 여름엔 해가 지지 않고, 겨울엔 해가 잘 뜨지 않는 신기한 나라이다. 10시쯤 되어야 아침이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밝아지고, 3시쯤 되면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해가 내 머리 위에 올라온 적은 없다. 그저 살짝 떴다가 떨어지는 힘없는 포물선을 그리며 지나간다. 우울증이 올지도 모른다던 북유럽의 겨울이었다. 하지만 여행객은 그마저도 좋다. 아이슬란드 가수인 줄도 몰랐던 시규어로스(Sigur Ros)의 노래를 괜히 틀어본다. 본격적으로 아이슬란드의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니 그저 즐겁다. 사직서를 내고 여행하는 기분이라. 자유로움 그 자체다. 이제 내 미래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잊어버린 채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기로 했다.


아이슬란드의 1번 국도, 링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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