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의 탐험가가 되어볼까
사진작가가 본 우리
결혼사진을 찍는다면 의뢰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작가가 있었다. SNS에서 우연히 본 작가님의 빛바랜듯한 빈티지한 색감의 사진에서는 어떤 이의 삶과 행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는 사진 속 인물들은 각자의 동화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떤 것을 보며 웃고 있을까, 어떤 말을 속삭이며 행복해하고 있을까, 그들이 손을 잡고 함께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 사진 속 인물이 추억하는 공간에서, 때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때론 그들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옷을 입고 찍은 사진들은 그들이 살았던 과거의 삶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사실 전에는 사진을 찍는 기술을 배운 입장에서 결혼사진을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맡긴다는 것이 조금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젠 우리 부부의 이야기도 사진으로 남겨놓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자욱한 새벽의 안갯속 나뭇가지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에 무르익은 적갈색의 낙엽이 레드카펫처럼 깔린 길을 걷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남편에게 보여주니 신기해한다. 이런 결혼사진은 처음 본다며, 자기도 기꺼이 찍어보겠다고 한다.
사전 미팅을 하고 온 날, 작가님의 촬영 방식과 장소, 촬영 스케줄 등등의 설명을 듣고 나니 작가님의 일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느껴진다. 나와 남편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 행복한 찰나를 아름답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끼리 그저 평범한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나의 얼굴에 행복의 미소가 떠오르는 짧은 순간들이 있다고 했다. 처음 본 커플을 관찰하는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 무한히 흘러가는 시간 속 행복의 순간을 가려내는 시선은 특별하다. 우리는 보통 행복의 순간보다 불행의 순간을 더 선명하게 각인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의 일상도 행복과 감사한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숙제를 받았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우리의 이야기를 정해야 했다. 의욕이 넘치는 커플일수록 더 멋진 결과물이 나온다고 한다. 무척 설렜다. 찍어보고 싶은 컨셉이 계속 떠올랐다. 작가님이 만들어내는 빛바랜 느낌의 사진들이 내가 좋아하는 구제 옷들과 잘 어울렸다. 오지를 탐험하며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가 되어볼까? 논밭에서 작물을 서리하는 게으른 농부가 되어볼까?
6년 전, 포르투갈의 구제 시장에서 네모난 가죽 가방을 샀었다. 작고 오래됐지만 여전히 꼿꼿하게 각이 잡혀있는 고집스러운 형태의 가방과 그것을 붙잡고 있는 얇고 질긴 끈이 오랜 풍파를 무사히 견뎌내고 내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마치 조그만 필름 카메라와 작은 수첩들과 소지품들을 넣어 이곳저곳을 누비며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찍으러 다니던 한 기자의 모습이 떠오르는 가방이었다. 그 가방이 짊어날랐던 역사의 무게를 간직하고 싶어서 구매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왠지 그 가방에 새겨져 있을 것 같은 과거의 이야기를 되살려보고 싶었다.
동묘에 있는 구제 시장에 가서 이런저런 소품을 샀다. 빈티지룩은 순전히 나의 평상시 취향이기 때문에 남편의 가방과 모자, 멜빵 등만 추가로 구매하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치 미국의 신문배달부 같은 커플룩을 갖춰 입고 촬영 장소로 향했다.
새벽에 잠깐 나타나는 마법 같은 어스름과 물안개를 담기 위해 우리는 다섯 시에 만나 작가님의 오프로드 차를 타고 어딘지 모를 그곳을 향해 달렸다. 11월 새벽의 추위는 어마어마했다. 사진에 너무 움츠려 보이지 않도록 몸에 열을 올리려 일부러 뜀박질도 해보고 팔을 비비다가 카메라 앞에 가면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 숲길을 산책했다. 처음에는 잠깐 어색했지만 금세 우리는 평소 놀러 갔을 때처럼 서로 장난치고, 사진을 찍어주고, 걸으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어느새 그저 자연 속을 놀러 가듯, 길이 없는 풀숲과 돌과 쓰러진 나무와 흙길을 밟으며 탐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온 사진들은 내가 꿈꾸던 삶의 모습이었다. 언제든 집 뒤에 있는 숲길과 호수를 산책하며 영감을 얻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건강한 삶. 자연 속에서 나는 어린아이가 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식물들을 관찰하고, 열매를 따고, 물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돌을 던져 물수제비를 뜬다. 호수에 돌을 놓아 다리를 만들고 건너편 땅으로 넘어가 신대륙을 개척하고,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동물들의 흔적을 찾는다. 자연의 곁에 머무르는 삶에서 나는 자연을 보존해야 할 마음을 굳게 다잡는다. 우리는 태어나고 죽어 자연의 일부가 되는 순환의 고리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기에, 그 어떤 생명도 경시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돌아갈 땅을 파헤쳐서는 안된다. 작은 씨앗에서 피어나는 새싹의 위대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면, 곧은 자세로 땅에 뿌리를 내리고 옆의 나무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줄 아는 나무의 꿋꿋한 절개를 칭송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도 혼자만 잘 살겠다는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조금 더 건강한 모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사진을 좋아하게 된 것도, 자연 속의 삶을 동경하게 된 것도, 조금 특별한 웨딩사진을 찍은 것도 모두 우연이 아닐 것이다.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갈 인간의 부질없는 탐욕을 멀리하고, 다른 생명을 배려하는, 곧 나 자신을 위하는 삶을 살라는 무언의 메세지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전 촬영을 마치고 잠깐의 휴식시간을 갖고 난 후, 오후 촬영은 양가 부모님들과의 촬영이었다. 사전 미팅 때 작가님이 보여주신 다른 커플의 친구들과 찍은 웨딩사진을 보자마자 남편은 부모님을 모시자고 한다. 우리는 양가 어머님들이 고등학교 친구로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가능한 우리만의 사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붙임성이 좋지 않아 예전부터 어르신들 대하는 것이 어려웠고, 부모님과의 의견 차이도 커서 나이를 먹을수록 대화가 점점 줄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도 줄어들고, 함께하는 자리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함께 셀카를 찍어본 기억도 없고, 놀러 가서 사진을 찍어도 그저 포토존에서 뻣뻣하게 서있는 사진들 뿐이었다.
남편은 나와 정반대였다. 남편 또한 사춘기 때 부모님과 의견 차이를 겪었고, 나중에 그를 극복하기 위해 조기축구팀에 들어가서 일부러 아저씨들이랑 어울렸다고 한다. 아버지 세대의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다고. 충격적이었다. 나는 여태껏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왔기에 부모님이 우리 세대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시대가 변하니 당연히 부모님들이 그것에 발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어떤 사람이든지 어떠한 성격과 가치관을 가지게 된 역사와 사연이 있는 것을 깨닫고 보니 함부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상대방을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스스럼없이 하는 남편이 참 멋진 사람이라고 다시 한번 느꼈다.
웨딩촬영 장소라고 하기엔 매우 휑하고 황량한 장소로 부모님을 모시고 촬영을 시작하니, 예상대로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엄마와 딸, 엄마와 아빠, 아빠와 딸은 서로의 눈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을까. 얼굴을 보고 자연스럽게 대화해보라는 작가님의 주문에 우리는 멋쩍은 웃음이 터져버렸다. 다행히도 그 어색한 웃음 속에 숨어든, 오랜만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의 행복한 웃음을 작가님이 포착해주셔서 우리는 행복한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여섯 명이 나온 사진을 주변 사람들 모두가 좋게 봐주셔서 한편으론 뿌듯했다.
스튜디오에서, 혹은 정해진 포즈와 각도에 나를 맞춰가며 찍는 사진이 아닌, 자연스럽게 나오는 우리 커플, 가족의 아름다운 순간을 담은 결혼사진은 자꾸만 보고 싶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사진이다. 그리고 이제는 매년 결혼'기념'사진을 남기면 어떨까 하는 발칙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