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동화 (1)

사진이 취미인 사람의 결혼사진

by Hoho

조금 특별한 결혼사진

사진이 취미가 된 지 12년째이다. 사진으로 박제하는 아름다운 순간순간들이 모두 나에게 신비로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디테일한 기억력이 좋지 않아 여행을 다녀와도 어딜 갔다가 무얼 먹었고, 무얼 보았고 등등의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그 상황의 분위기나 내가 느꼈던 감정들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 내가 외장하드를 열어 사진을 한 장 보면 그 순간의 햇빛과 날씨, 장소와 사람들, 그날의 이야기가 차르르 펼쳐진다. 사진은 내 인생의 책갈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사진을 찍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정작 내 사진은 별로 없었다. 친구들과 놀러 가면 꼭 “내가 찍사할게~”를 외쳤고, 누군가가 나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어딜 봐야 할지, 어떤 포즈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나름 미소를 지어 보이면 이상하게도 결과물은 참담했다. 카메라가 나한테만 오면 마치 내 얼굴을 왜곡하는 듯, 내가 이렇게 못 생겼나 의심하게 되는 경험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3차원의 입체적인 존재인데 2차원의 평면에 담으려다 보니 호떡 누르듯이 꾹 눌러서 찍어낸 느낌이었다. 하지만 카메라는 죄가 없다. 신기한 것은 카메라는 같은 것을 찍더라도 찍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을 때 사진작가는 빛의 방향을 보고, 빛의 양과 세기를 읽고, 노출값을 조절하고, 조리개를 조이거나 풀고, 셔터 속도를 조절한다.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변하는 배경과 피사체와 빛의 관계를 세심하게 관찰한다. 그 후에 사진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담아 사진을 보정한다. 따뜻한 색을 더한다거나 대비를 더 세게 준다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낸다. 사진작가는 그렇게 사진 한 장에 자신만의 서사를 담아낸다. '잘' 찍힌 사진은 그 한 장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기까지 하는 이유이다.


그런 내가 이번엔 사진 속 주인공이 될 기회가 생겼다. 바로 결혼사진이다. 나는 과연 어떤 결혼사진을 찍고 싶었는지 고민해보았다. 공주 같은 메이크업에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스폿 조명을 받은 스튜디오 촬영은 나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진작가가 얼굴의 각도를 정해주고, 팔의 각도를 정해주고, 표정을 정해주고, 드레스를 만져주고, 나는 사진 속 바비인형 놀이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나 답지 않은 사진은 솔직하지 못하니 부자연스럽다. 안 그래도 웃음에 인색한 나는 억지로 짓는 웃음이 얼마나 못났는지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내가 가장 자연스럽게 행복해지는 순간들은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상황에 있을 때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여행, 자연, 사진, 따뜻한 빛과 빈티지. 그리고 우리 부부만 있을 때 나오는 천진난만한 모습들. 자연의 멋진 모습이 펼쳐진 곳으로 여행을 가면 절로 신이 나서 아이가 된다. 봄에는 만발하는 꽃들이 흐드러진 모습에 반하고,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진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에 취한다. 가을에는 단풍들이 만들어내는 빨강, 주황, 노랑의 세상에 내 마음까지 무르익는 기분이다. 겨울에는 고요히 쏟아지는 함박눈을 맞으며 신이 난다. 계절별로 여행을 가서 찍는 결혼사진을 상상해보았다.


결국 우리는 결혼사진을 4번에 걸쳐서 찍었다. 봄에 두 번, 여름에 한 번, 가을에 한 번. (추운 겨울에는 도저히 웨딩드레스를 입을 자신이 없었다.) 지금부터 우리 부부가 쓴 동화들을 하나씩 펼쳐보고자 한다.




우리 스스로가 본 우리


우리는 연애할 때부터 짬짬이 틈날 때마다 여행을 가곤 했는데, 카메라와 삼각대를 항상 챙겨서 우리끼리의 사진을 남기곤 했다. 길을 걷다가 내가 좋아하는 풍경이 나오면, "잠깐 저어기 가서 서봐!" 하곤 삼각대를 펼친 다음 초점을 맞춘다. 10초의 타이머를 걸어놓고 셔터를 누른 후 마구 달려가서 자세를 잡는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사진을 찍으니, 간단한 드레스와 정장만 챙겨가면 셀프 결혼사진도 가능하지 않을까? 내 생각을 얘기하니 남편이 더 신나서 이런저런 포즈에 대한 아이디어를 줄줄이 내뱉는다. 점프샷도 찍고 싶고, 나를 한 손으로 들고 찍고도 싶고, 숲 속에서 나를 훔쳐보는 나무꾼 컨셉으로 찍고도 싶고.. 이렇게나 적극적이라니 살짝 당황스럽다.


옷 만드는 일을 하는 고모가 만들어준 하얀 드레스와 평소 자주 입는 구제 치마, 남편의 정장과 나비넥타이를 싸들고 우리는 지리산으로 떠났다. 왜 하필 지리산이었냐고? 그때 마침 꽂혀있던 지리산의 흙집 펜션과 전주에 있는 제로 웨이스트 숙소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지리산의 계곡을 찾아 올라갔다. 봄이지만 한낮의 햇볕은 뜨겁다. 드레스가 밟히지 않게 한 손으로 움켜잡고 험한 돌계단을 올라가려니 땀이 난다. 너무 무모한 짓을 벌린 것일까 잠시 고민했으나 이왕 시작한 거 이제 와서 포기할 순 없었다. 남편이 원하는 선녀와 나무꾼 느낌의 배경이 나올 때까지 계속 올라간다. 나뭇잎이 우거진 산을 배경으로 나타난 조그만 계곡에서 남편은 나에게 돌 위에 앉아보라고 한다. 나는 저 멀리 하늘을 바라보고 남편은 나를 바라봐야 한다고 한다. 너무나도 작위적인 설정에 온 몸이 오글거리는 느낌이었지만 남편이 원하니 못 이기는 척 자세를 취해본다.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단아한 한옥 사이의 골목에서 돌담 너머를 훔쳐보는 포즈를 취해야 했고, 담쟁이넝쿨이 뒤덮은 벽 앞에서는 넝쿨 잎을 붙잡고 서있어야 했다. 그가 원하는 점프샷을 해보기도 하고, 어색한 표정을 무마해보고자 아예 미친 듯이 웃어보기도 했다. 관광객들이 나타나면 괜히 민망해져 딴 데를 쳐다보다가 사람들이 지나가면 다시 셔터를 눌렀다.


지리산과 전주 한옥마을, 숙소 ‘모악산의 아침’에서


이상하게도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감정 표현에 매우 서툴러서 슬퍼도 눈물을 삼키고, 화가 나도 소리를 지르는 법이 없었다. 반대로 신이 나도 흥겨운 몸짓을 할 줄 몰랐고, 행복해도 크게 웃지 못했다. 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어도 그저 근처에 아무도 없을 때 하는 허밍 수준에만 그쳤고, 호기심이 발동해도 질문을 할 줄 몰랐다. 나도 모르게 남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왔던 것이다. 조금 운다고 조금 크게 웃는다고 누가 뭐라 하지도 않는데 그냥 나는 그것이 교양 있는 사람인처럼 스스로 터득하며 자라왔던 것 같다. 순간순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능숙한 남편이 부러웠다. 불만이 있으면 뒤늦게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바로 이야기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옆사람도 절로 흥이 나게 하는 그의 표현들이 참 신기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가 시키는 억지스러운 포즈들을 군말 없이 따라 해봤던 것 같다. 그가 원하는 컨셉으로 찍은 사진은 그 순간엔 참 어색했지만 지나고 보니 추억이었다.


우리는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나와 다른 생각을 배척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만나게 된다. 20대에서 30대가 되어보니 더욱 그렇다. 막 대학생활을 시작한 20대 때는 가치관이 뚜렷하지 않아서 편견 없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런저런 굴곡들을 거치고 난 30대에는 오히려 경계심이 늘어나고 인간관계가 점점 좁아지는 느낌이다. 불필요한 실패를 거르고, 피곤한 경험을 피하기 위한 자체 검증 시스템이 점점 정밀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로 인해 나는 더 편협한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본다. 요즘은 죽도록 싫어했던 것도 다시 한번 돌아본다. 싫어했던 버섯 반찬을 먹기 시작했고, 좋아했던 육식을 끊게 되었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고 싶다가도 사람들이 점점 도시로 모이는 이유를 고민해본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관계 맺는 것을 피곤해했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려 노력한다. 내가 싫어했던 새로운 것들을 한번 시도해보면 의외로 나쁘지 않다는 것을 발견한다. 나는 아마 취향이 뚜렷한 사람이 아니라 색안경으로 인해 싫어하는 것이 확실한 사람이었던 것이 아닌가. 남편 덕분에 항상 단조로웠던 사진 속 내 포즈들이 다채로워졌다.



13년 지기 친구가 찍어준 우리

사진을 좋아하는 나는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와 여행 스타일이 잘 맞았다. 함께 놀러 가면 사진 찍기 좋은 풍경들을 찾아다녔고, 그 앞에서 서로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어주곤 했다. 그 친구가 소개해준 회사에 취직하고 일을 시작하고 나니, 친구는 다짜고짜 연차 계획을 내라고 한다. 아니 이제 막 일을 시작하고 교육을 받고 있는데 휴가 계획이라니..? 이 회사의 가장 큰 장점은 연차 후불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1년을 일해야 15개의 연차가 생기는 일반적인 회사들과 달리, 일을 시작하자마자 20개의 휴가를 원하는 기간만큼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매니저가 연차 관련 설명을 해주던 날, 나는 바로 연차 계획을 제출했다. 자연스레 그 친구와 연차를 맞춰서 여행을 다니게 되었고, 우리는 2016년 포르투갈, 2017년 제주도, 2018년 아일랜드, 2019년 캄보디아 여행을 함께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의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친구는 우리의 결혼사진을 꼭 찍게 해달라고 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오랜 친구가 보는 우리의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저 셋이서 함께 하루 놀러 가는 것으로 생각하니 오히려 더 설렜다.


서산에 놀러 갔을 때 보았던 크고 작은 언덕과 너른 초원의 모습이 생각나서 친구를 데리고 서산으로 향했다. 항상 가던 강원도 산촌과는 또 다른 낮은 언덕들이 봉긋봉긋 솟아있고, 그 위에 오르면 한눈에 펼쳐지는 마을의 모습이 마치 스위스의 어느 마을 같기도 했다. 들판을 보면 달리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우리는 냅다 달렸고, 친구는 찍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소들을 방목해서 키우는 소 농장이었고, 대부분 사유지라고 한다. 단순히 길이 있으니 들어갔던 우리의 불찰이었지만 뛰놀던 순간만큼은 어린아이였다.


서산의 어느 들판에서

카메라 앞에 서면 어색해지는 표정은 남편의 장난스러운 말 한마디에 사르르 녹아버린다. 친구 말에 의하면 ‘찐’ 웃음이 나온다고 한다. 우리는 어느새 카메라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정말로 놀고 있었다. 친구의 사진에는 우리 부부가 데이트할 때 나오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더 애착이 갔다.


한 번은 영월에 내가 꿈꾸는 농가민박을 운영하는 분이 계셔서 놀러 갔다. 직접 통나무로 귀틀집을 설계해서 짓고, 앞마당에는 나무와 꽃들을 조화롭게 심어놓았다. 가지런히 놓인 돌길은 유럽의 시골마을을 연상시켰다. 마당 한켠에는 생태화장실이 있었는데, 들어가보니 벽 가득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멋진 산은 푸세식 화장실을 이용하는 찝찝한 경험을 낭만적으로 만든다. 쌀겨를 덮어놓으니 악취도 나지 않는다. 윗마당으로 올라가보면 파티용 긴 테이블과 간이주방이 있고 그 옆에는 핀란드식 사우나가 있다. 걸어가는 길 곳곳에 알맞게 심긴 꽃들은 발걸음을 느리게 만든다. 이 집이 내 집이었다면 아마 저 윗마당에서 스몰웨딩을 하지 않았을까?

공간을 구경하고 한눈에 반해서 사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더니 사장님도 우리를 예쁘게 봐주셨나 보다. 안 그래도 하우스웨딩 장소로 공간을 대여해주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며,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5월에 와서 맘껏 웨딩촬영을 하고 sns에 올려주기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기쁜 마음에 당연히 그 제안을 수락했고,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친구도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다. 그렇게 우리는 세 번째 웨딩촬영을 했다. 아빠는 물었다.

“웬 웨딩촬영을 그렇게 자주 하냐?”

이게 바로 우리가 데이트하는 방법이니까!


영월의 농가민박 ‘내 마음의 외갓집’에서

한 달만에 다시 찾은 그 곳에는 역시나 꽃들이 만개해있었다. 사장님은 즉석에서 꽃을 잘라 부케를 만들어주고 화관을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드레스와 정장을 갖춰입고, 꽃다발을 손에 들고,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집주인 행세를 했다. 티타임을 즐기고, 자작나무 아래 꽃길을 산책하고, 강아지 배추와 함께 뛰어놀았다. 괜히 농기구를 들어보고, 트랙터 위에 올라 오빠 달려를 외쳐보았다. 와인을 한 병 해치우고 취기를 빌려 큰 소나무 아래에서 춤을 춰보았다.

그날 나는 너무 신이 난 나머지 술에 거나하게 취해 필름이 살짝 끊겨버렸다. 친구가 보내준 사진들을 보는데 마지막 몇 장의 사진 속 순간들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데 웬걸, 그 마지막 몇 장의 사진이야말로 내 인생 가장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 후에 나의 꿈은 더 확고해진 것 같다. 예쁜 농가민박에서 동물들과 함께 뛰어노는 삶. 친구가 남겨준 것은 내가 매 순간 꿈꾸는 행복한 삶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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