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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풀밭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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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Apr 17. 2023

봄의 에너지를 담은 밥상

꽃다지, 원추리, 망초, 부추

어느덧 농사 2년 차. 혹독한 겨울을 나고 봄이 시작되었다.

올해는 농사일지를 써보련다. 아니 농사와 먹거리와 연결된 내 삶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기록해 보련다.


3월.

농사를 시작하고 밭에 제일 먼저 나는 풀들이 무엇이 있는지 관찰해 본다. 냉이가 있기를 바라며 밭에 나가보았건만, 냉이를 찾기가 어렵다. 내 밭은 냉이가 자라기엔 좀 적합하지 않은가 보다.

대신에 꽃다지가 많이 보인다. 꽃모양으로 활짝 피는 다육이처럼 귀엽게 생긴 풀들이 쏙쏙 많이도 올라와있다. 아직 모르는 풀들이 많은 나는 이게 대체 뭔 풀인지 물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마침 또 그날이 인과의숲 공동체에서 꽃다지페스토를 만든다는 날이었다.

귀여운 꽃다지를 칼로 똑똑 따낸다. 페스토로 만들면 확 줄어버리니 엄청 많이 따오란다.

딸기 다라이를 단 가득 채웠다.


냉이는 우리 밭이 아닌 저 멀리 있는 다른 밭 옆쪽 길에 많이 있다고 한다. 음.. 너무 먼데? 냉이 씨가 맺히면 잔뜩 잘라서 우리 밭에도 좀 털어놔야겠다. 아무튼 빙 돌아가서 냉이밭에서 냉이를 캐는데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쬐그맣다. 이 녀석.. 추운 겨울 척박한 땅에서 움츠리고 어떻게든 자라려고 애쓰는구나. 따뜻한 남쪽지방 냉이는 꽤 크던데. 수락산 그늘 아래 아직도 겨울같은 3월의 냉이는 조그맣지만 더 힘있어 보인다.


내가 캐온 냉이들을 보더니 이건 냉이가 아니라 지칭개라고 한다. 냉이 더미에 감쪽같이 숨어있던 풀을 발견하는 동료들의 눈썰미도 대단하다. 아니 생긴 건 정말 별 다를 게 없는데 다른 종류라니.. 가장 좋은 건 냄새를 맡아보는 것이고, 생김새로 구분하자면 뿌리 쪽 색깔이 자주색 빛이 도는 것이 지칭개이다.

그치만 다시 봐도 모르겠고 내년에도 모를 것 같다. 5년차쯤 되면 좀 구분할려나?


냉이 vs 지칭개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언제나 맑음')




냉이 vs 지칭개 (출처 : 네이버 블로그 '언제나 맑음')


아무튼 여차저차해서 꽃다지와 냉이 페스토를 만들었다. 5월 퍼머컬처의 날에 진안 장터에서 판매할 거라고 하니, 떡잎이랑 누런 잎, 지저분한 것들을 세심하게 떼어낸다. 가만히 앉아 조그만 꽃다지와 냉이에 붙은 조그만 떡잎을 떼어내고 있자니 눈이 마르고 허리가 아파온다.


그래도 10병이나 만들어 놓고 나니 꽤나 보람 있다.


꽃다지 페스토


4월.

원추리는 이제 알아보겠다. 작년에는 풀 구분을 전혀 못해서 고군분투했는데 이렇게 하나둘씩 알아보는 나 자신이 참 대견하다. 딱 이맘때쯤 잘라서 무쳐먹거나 된장국에 넣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고 한다. 원추리 된장국? 솔깃했다.

어린잎에는 독성이 없다고 하지만 혹시 모르니 데친 후에 2시간 정도 물에 우린다. 냄비에 된장을 푼 뒤 양파와 버섯 조금과 우려낸 원추리를 넣는다.


으음, 매운맛이 없고 달달한 파를 먹는 기분이다. 자연에서 오는 단맛은 언제 먹어도 기분이 좋다.


원추리와 된장국


이번엔 감자를 심으러 집 앞 텃밭에 가니 개망초가 지천이다. 작년 가을에 열심히 심어놓은 양파와 마늘 사이사이 떡하니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있다. 와 역시 잡초들의 생명력이란.

큼직한 것들만 잘라온다는 게 검은 비닐봉지 하나를 가득 채운다. 고작 다섯 평 텃밭에서 반 정도 캐온 양이 이 정도라니. 나는 개망초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혹시 몰라 집에 와서 또 검색해 보니 망초, 개망초, 큰망초, 봄망초 등 망초의 종류도 수두룩하다. 또 머릿속이 베베 꼬이면서 혼란스러워진다. 너네 정말 이럴 거니..?

내가 개망초라고 캐왔던 것은 아마도 망초이다. 어찌 됐건 효능도 비슷하다고 하니 페스토를 만들어보자.


개망초 vs 망초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망초 뿌리 쪽을 깨끗이 씻고 역시나 누런 잎과 떡잎들을 떼낸다. 이번엔 내가 먹을거니까 대충 해도 되겠지?

아니나 다를까 열심히 갈아서 만든 망초페스토파스타를 먹는 순간 모래알이 하나 씹힌다.

"아."

비명도 탄식도 고통의 소리도 아닌 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마도 어이없음의 아 였던 것 같다. 자업자득.

바질이나 여타 허브와 달리 별다른 맛은 없다. 그저 마늘의 알싸한 맛과 견과류, 올리브유의 고소한 맛의 조화로 먹는 페스토인가보다. 그래도 빵에 발라먹으니 맛있다.


망초페스토와 파스타


한 병을 가득 채울 만큼의 페스토를 만들고도 남은 망초잎은 봄부추와 함께 라면에 넣어먹는다.

부추도 월동을 하는 줄 몰랐는데 작년에 심었던 자리 고대로 잎을 내주어서 반가웠다. 부추는 원래 맛있지만 봄부추는 그 향이 더 강렬하게 맛있어서 수확하면서도 와그작와그작 씹어먹는다.


부추를 함께 수확하러 간 남편의 찐 반응.

"(눈이 커지며) 으음~!! 와, 진짜 맛있다!"


그래 이 맛에 농사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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