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풀밭일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ho May 01. 2023

쓴 맛이 몸에는 좋으니까

남편이 싫어하는 약초들

농사가 시작되는 봄에 밭에 나가면 모르는 아주머니들이 그렇게 주변을 기웃기웃거린다. 밭에 지천으로 나는 봄풀들을 채취하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아주머니들이 제일 탐내는 것은 두릅이 아닐까 싶다. 엄연히 두릅은 밭 경계 안에 있는 나무에서 자라는 새순이지만 그조차도 몰래 떼어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밭에서 나는 두릅만 얻어먹다 보니 두릅이 얼마나 귀한지 몰랐는데, 마트에서 본 두릅은 정말 비쌌다. 한 줌에 만원 정도였나..? 


아무튼 나는 두릅이 귀한 몸임을 알고 난 후, 두릅 보기를 금같이 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냥 내 밭에 두릅나무를 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올해도 어쩌다 보니 두릅을 얻어먹게 되었는데, 이걸 어떻게 맛있게 먹어볼까 고민해야 했다.


남편에게 두릅과 오가피순으로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더니 남편의 표정이 이상해지며, "아..." 하며 당황해한다.

왜 그런가 했더니 남편이 어렸을 적, 부모님께서 밭에서 이런 나물들을 캐오는 것을 좋아해서 억지로 몇 번 먹었는데 너무 맛이 없어서 싫어졌다고...


하긴 어렸을 때는 몸에 좋은 건 맛이 없으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터. 세상에 이렇게 달달하고 자극적인 음식이 많은데 웬 두릅이며 오가피순이며 요상한 풀들을 뜯어오느냐며 이해하기 힘들긴 했겠다.

나도 채식을 시작하고 나서야 나물들의 맛을 알게 되었고, 밭에서 나는 약초들을 알아가기 시작하고 있으니까. (약초에 관심을 가지기엔 30대는 아직 어린편이 아닌가 싶기도.)


그래서 두릅 맛있게 먹기에 도전해보았다.


1. 오븐에 두릅과 감자, 당근, 파프리카를 놓고 식물성 오일, 소금, 후추, 허브가루를 골고루 뿌려 버무려준다.

2. 200도에서 20분 정도 구워준다.

3. 통밀빵에 비건 랜치소스를 바르고 오븐에 구운 두릅과 감자, 파프리카, 당근을 차곡차곡 올린다. 


감자와 당근의 담백함과 파프리카의 달달함, 랜치소스의 맛에 두릅의 쓴 향이 좀 감춰지지 않을까.

오븐구이로만 먹었을 때도 맛있었지만 쓴 맛이 남아서 왠지 남편이 싫어할 것 같은 예감에 빵과 소스의 도움을 받아보았다. 


반응은 역시나 굿!

떡볶이를 먹을 때처럼 미간이 찡그려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먹을만한가 보니 반은 성공이다.



두릅오븐구이, 샌드위치


의정부 밭에 오가피나무가 있다. 

나무로는 처음 봤지만 나도 이름은 알고 있는 걸 보면 얼마나 유명한 약초인가 싶어 효능을 찾아보았다. 

방사능 해독, 간 건강, 관절 강화, 면역력 향상, 혈액순환, 심신안정... 아주 만병통치약이다. 

그렇담 한번 먹어봐야지. 가시가 촘촘하게 난 연둣빛 오가피순을 똑똑 따내니 그래도 한 봉지 정도는 나온다. 


대체 얼마나 쓰길래 남편이 싫어하나 싶어 데친 후에 한번 먹어보았다.

앗... 이건 저세상 쓴 맛이 아닌가.

가죽나물, 고들빼기를 처음 먹었을 때보다 더 고난이도다. 남편한테 '이거 진짜 쓰네' 하니까 헛웃음을 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먹지 않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

아니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먹이고야 말겠다.


쓴 맛을 빼려고 찬물에 2시간도 넘게 우려 놓았다. 장물을 만들어 담가놓고 숙성되길 기다린다.

이틀째. 성격 급한 나는 조금 달라졌나 하고 한 입 먹어보았다. 

어떡하지. 아직도 너무 쓰다. 나도 못먹겠다. 이째로 시댁에 보내야 하나 싶었다. 


일주일 정도 지났나. 다시 꺼내서 먹어보았다. 아! 이제야 쓴 맛이 조금 가시고 장 맛이 잘 들었다.

이 정도면 나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남편은 여전히 싫어할 것 같다.

그래도 오늘 저녁 반찬으로 살짝이 꺼내봐야겠다.



오가피순과 장아찌



고양시 텃밭의 한켠에는 돌미나리가 무성하다. 번지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은 게 너도 꽤나 잡초구나. 조금만 놔두면 내 작물을 심어놓은 곳까지 침범해 들어온다.

경계를 넘어온 돌미나리를 정리하면서 먹을 것도 좀 갈무리한다. 

미나리는 이미 남편이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끼손톱만 한 작은 잎 하나를 떼어줘도 금세 뱉는다.

어릴 적 고수나 참나물, 미나리 등 향나물을 억지로 먹었다가 토했던 기억 때문에 싫어한다고 한다.


요리할 때 찌개에, 전에 향신료로 조금 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가도 그만둔다.

'고수는 따로'처럼 '미나리는 따로' 옵션을 추가했다. 

칼국수나 찌개를 끓이면 나는 미나리를 따로 곁들여서 먹는다.


올해는 어떻게 먹어볼까.


마침 두부집에서 얻어왔던 비지가 냉동실에 있었다. 비지찌개를 먹고 남은 비지를 미나리 전 반죽에 섞어보았다.

실패할 리 없는 레시피이다. 고소함과 향긋함이 일품이다.

참기름과 참깨를 곁들인 고추장을 살짝 올려 먹으니 조화가 새롭다.


이건 '남편 몰래 먹는 나의 별미'라고 이름 붙였다.



돌미나리 비지전


매거진의 이전글 봄의 에너지를 담은 밥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