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농부들의 장터 이야기
5월 7일, 가족들이 모이는 5월 연휴의 마지막 날, 전라북도 진안에 내려갔다.
퍼머컬처 농부들의 장터가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여기서 퍼머컬처란, 땅을 갈거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탄소를 땅에 저장하는 생태순환적 농업이다. 숲을 닮은 다층적 구조의 밭을 조성해서 자생력을 길러주기 때문에 농약이나 비료 등의 인위적인 투입이 필요하지 않다. 퍼머컬처 철학은 지구를 돌보고, 사람을 돌보고, 공정하게 분배하는 세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지어졌다.
작년 여름 강릉에서 100여 명에 이르는 퍼머컬처 농부들의 네트워크 조직이 생긴 이후, 처음으로 기획한 행사는 5월 7일 세계 퍼머컬처의 날에 열리는 장터였다. 전국의 퍼머컬처 농부들이 모이는 만큼, 반가운 얼굴들을 볼 생각에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나는 퍼머컬처 밭의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컵코스터와 냄비받침, 그리고 월행잉장식을 들고 셀러 신청을 하였고, 내가 속해있는 인과의숲 공동체는 꽃다지페스토, 냉이페스토와 컴프리 모종을 준비했다. 셀러방에 있는 사람들만 35명이라니, 예상보다 꽤나 규모가 크네..?
진안에 있는 이든농장은 전주에서도 차로 30여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마을에 위치해 있다. 이 작고 조용한 마을까지 전국에서 달려오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게다가 금요일부터 이어진 청천벽력 같은 비소식. 농부들은 비소식을 반기지만, 장날에 비소식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짐없이 모든 셀러들이 모여준 것은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었다. 심지어 다들 장화에 우비를 입고.
공교롭게도 장터가 열리는 11시부터 2시까지 딱 비가 온다고 한다. 생각보다 추울 것 같아 반팔에 셔츠, 맨투맨 그리고 겉옷까지 4겹이나 껴입었는데, 과한 것 같다. 셔츠는 벗어놓고 우비를 입었는데, 매대를 세팅하고 있으니 바람이 거세다. 테이블 위에 깐 천을 테이프로 고정시킨다. 옆 부스에 있는 천연염색 스카프가 자꾸 바람에 날아온다. 이런 날씨에 손님이 오긴 하려나..?
신기하게도 공식 오픈시간보다 30분 전부터 손님들이 오기 시작한다. 양평 퍼머컬처 농장에서 온 농부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모두 음식 부스로 모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게 그냥 나온 말은 아니구나. 나도 슬슬 구경하다가 비건 샌드위치 하나를 사먹었다.
사진기록을 하려고 부스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보았다. 정말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들과 예쁜 농작물들, 예쁜 그림이 그려진 호미와 톱낫, 씨앗과 모종까지. 하나하나 직접 만들었을 농부들의 애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무엇보다 음식들이 모두 비건이라서 좋다. 비건이 기본이고 육식이 옵션인 사회가 좀 더 정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평상시에 비건으로 먹으려면 이거 빼주세요, 저거 빼주세요 등등 덜어내기에 바쁜 불필요한 식재료들이 많은데, 굳이 그것들을 넣지 않아도 충분히 맛이 있고, 더 건강하니 말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내가 만든 작품들에도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정말 특별하고 예쁘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에게 고마웠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장터이다 보니,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손님들도 기꺼이 와주셨던 것 같다.
12시에는 농장 안쪽에서 공연이 열렸다. 매대를 지키느라 공연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하지만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자기가 가져온 용기에 모종이며 음식이며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손님들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퍼머컬처라는 철학이 느리지만 퍼지고 있구나. 기후 위기에 대한 대안적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