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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풀밭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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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May 16. 2023

여름이 오는 향기

아까시 꽃의 향을 식탁으로

5월쯤 되면 거리에서, 창문밖에서, 차를 타고 가다가 솔솔 풍겨오는 향에 코를 기울이게(?) 된다.

코평수가 넓어지고, 이 향기는 대체 어디서 나는 것인지 강아지처럼 코로 주위를 탐색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아카시아 꽃이라고 알고 있던 이 향기의 주인공은 '아까시' 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밀원식물, 꿀벌이 꿀을 찾는 식물이다. 그래서 마트에서 아카시아 벌꿀이 많이 보였구나. Acacia tree를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아프리카 초원의 거대한 나무가 나온다. 아카시아 나무와 아까시나무는 그 이름과 달리 완전히 다른 식물이었다.


실제 아카시아 나무 (출처 : www.britannica.com/plant/acacia)


수락산 아래 텃밭 주변으로도 아까시나무가 많이 있다. 사실 작년에는 전혀 눈치재지 못했는데 관심을 가지고 보니 눈에 보인다. 


아까시 꽃 튀김은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와서 유명해졌다. 일본판 '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부터 '겨울과 봄',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까지 모두 섭렵했던 나는 이런 삶을 살겠다는 마음으로 귀촌을 준비하기 시작했던 터라, 리틀 포레스트에 나왔던 음식들은 모두 만들어보고 싶었다. 게다가 한국판 리틀 포레스트를 만든 임순례 감독 또한 비건이며, 동물권 단체 카라의 대표도 역임하고 있기 때문에 영화에서 나오는 음식이 모두 채식이라는 점이 정말 좋았다. 



아까시 꽃의 향을 맡으며 한 송이 한 송이 정성스레 따본다. 5미터는 족히 될 법한 큰 나무에 아까시 꽃이 빽빽하게 피어있다. 

아까시 꽃은 활짝 피기 전, 봉오리 상태일 때 따야 꿀이 더 많고 벌레가 있을 확률이 적다고 한다. 하지만 그 시기를 맞추기가 어디 쉬우랴. 내가 갔을 때는 이미 70% 정도는 개화해 있던 상태였다.

꽃을 봉투에 담아 집에 가져가는 내내 코를 박고 향을 맡았다. 그 어떤 향수보다 매력적이고 은은하게 코를 찌르는 향이 중독적이다. 향수 냄새를 맡을 때의 머리아픈 느낌이 전혀 없다. 역시 자연이 만든 것은 따라잡을 수가 없다.




아까시 꽃을 살살 식초물에 담가 씻어주고, 물기를 뺀 다음 튀김옷을 입혀준다. 하나하나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튀김 기름에 넣는다. 

튀김은 인내가 필요하다. 너무 온도가 높아지면 금세 타버리니, 중불에서 튀김옷이 천천히 노란빛을 띨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간. 

스텐 체망에 소복이 담아 밥상 한 켠에 내놓으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꽃대를 잡고 후두둑 훑어먹으면 긴 꽃대만 남는다. 

맥주 안주로 그만이다. 튀길 땐 오래 걸리지만 먹을 땐 금방이다.



아까시 꽃 효소


튀김으로 하고도 아까시 꽃이 많이 남아 효소를 만들어보았다. 

우리 집에서 나름 제일 큰 스텐볼을 꺼내서 아까시 꽃과 설탕을 버무리는데도 작아서 이리저리 튄다. 이제 나는 정말 시골에서 쓰는 큰 스텐 대야를 구비해야 할 때가 되었나 보다. 

마스코바도 설탕과 1:1의 비율로 적당히 섞어 큰 병에 담아주고, 마지막에 설탕을 조금 더 얹어 덮어주었다.

이제 3개월 동안 숙성한 후, 걸러내고 6개월 더 숙성하면 향기로운 발효차, 효소가 된다고.

몸에도 좋고 입에도 좋으니 내년엔 더 많이 만들어봐야겠다.




뿌리로 번식하니 빨리빨리 잡으라고 해서 작년엔 잡기만 했던 쑥을, 올해는 먹거리로 활용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 더 자라길 기다렸다.

쑥 하면 자동으로 나오는 음식은 쑥개떡, 쑥국, 쑥아이스크림, 쑥케이크, 그리고 쑥버무리.

음.. 떡은 내가 하기엔 무리일 것 같고, 국은 무슨 맛인지 아니까 패스, 아이스크림과 케이크도 내가 하기엔 무리이다. 그렇담 쑥버무리를 해볼까?


원래는 글쓰기 모임 동료들과 '쑥 원정대'를 기획했다가 일정이 안 맞아 무산된 이후, 밭에 무성하게 자라난 쑥을 혼자서 열심히 캐왔다.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쑥 버무리 만드는 영상을 대여섯 개를 찾아보고서 대충 이해한 바로 대충 만들어보았다.


보통은 쌀가루로 만드는데, 쌀가루가 귀한 옛날에는 밀가루로도 만든다고 하여 집에 있던 통밀가루를 꺼냈다.


쑥 90g에 밀가루 한 국자, 소금, 설탕 1 티스푼을 넣고 살살 버무려준다.

그리고 냄비에 찜기와 면포를 깔고 버무린 쑥을 살살 올려놓는다.

20분 시간을 맞춰놓고 쪘는데 약간 날가루가 남아있는 것 같아 10분을 더 쪄주었다.

쑥 찌는 향이 솔솔 퍼지니 기분이 좋다.


쑥의 쌉싸름한 향과 밀가루의 고소함이 어우러진 별미 간식이다.

확실히 통밀가루라 조금 거칠고, 쌀가루로 해야 쫀득함이 더 살아날 것 같긴 하다. 


역시나 쑥을 싫어하는 남편은 내가 건넨 쑥 버무리 한 점 앞에서 멈칫한다. 

"충격적으로 쓴 맛이네요.."


덕분에(?) 내 밭의 약초는 다 내가 독식중이다.



쑥 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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