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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Feb 06. 2022

제로웨이스터의 딜레마

‘노 임팩트 맨’을 읽고


  '노 임팩트 맨'은 뉴욕 한복판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아남기 1년 프로젝트, 그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시작한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서울에서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고 살기 위해 제로웨이스트와 채식을 시작하며 온갖 시행착오와 우울증과 좌절감을 겪으면서 이보다 더 큰 도시인 뉴욕에서는 어떤 시행착오를 겪고 있을까 궁금하여 읽기 시작하였다.

천기저귀 사용, 텀블러 사용, 음식쓰레기 퇴비화, 무포장 식료품점 이용,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이용, 자동차나 비행기 안 타기, 고기와 해산물 끊기, 반경 400km 내에서 생산된 로컬푸드 먹기, 전기 안 쓰기, 세탁기 사용 줄이기, 쓰레기 줍기 등 다양한 실험을 하며 생기는 사람들과의 갈등과 딜레마와 깨달음을 솔직하게 써 놓아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며칠 전 양말가게를 지나가다가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멈추었다. 자연스레 집에 없는 색깔과 디자인의 양말을 찾다가 문득 서랍 한 칸을 가득 채우고도 남는 양말 더미가 생각났다. 예전 같았으면 꼭 양말 한 켤레를 사들고 나왔을 텐데.. 그렇게 충동구매를 참았고, 남편에게 “나 잘 참았지?”하며 자랑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제로웨이스트를 하며 포기하고 줄인 것들과 채워지고 늘어난 것들을 생각해보았다.


텔레비전을 사지 않았다 - 한때는 텔레비전 없이 어떻게 사냐는 질문을 하던 나였다.

시간 때우기용으로 쇼핑을 하지 않았다.

1년째 패션을 위한 옷을 사지 않았다.

텀블러가 없이는 커피를 사 먹지 않았다.

봉지에 들어있는 과자를 줄였다.

인스턴트식품을 줄였다.

화장품의 종류를 줄였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였다.

배달 음식을 끊었다.

겨울철 보일러 사용을 줄였다. - 평균 18~19도로 약간 서늘한 느낌으로 살고 있다.


반면,

책 읽는 시간이 늘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초대해 대화를 하는 시간이 늘었다.

텔레비전 소리가 없으니 혼자 이런저런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중고로 물건을 팔려고 물건을 닦고 고치는 시간이 늘었다.

이 삶을 유지하는데 힘을 얻고자 운동을 하는 시간이 늘었다.

장을 보는 시간이 늘었다 - 성분을 비교하고, 유기농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무포장으로 파는 야채가 있는 가게로 가고, 더 맛있고 더 나은 식재료를 구입하러 이곳저곳을 다닌다.

요리하는 시간이 늘었다.

손빨래하는 시간이 늘었다 - 면생리대, 면 화장솜, 행주 등.

화장품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세안을 꼼꼼하게 하고 보습을 하는데 시간을 더 쓰고 있다.

음식을 포장하러 가려고 용기를 챙기고, 직원에게 설명하는 시간이 늘었다.

쓰레기를 잘 버리기 위해 재질을 분리하는 시간이 늘었다.

배우고 싶은 것들이 늘었다 - 이를테면, 더 다양한 요리법이나 유기농 농사 등.


  처음에는 당연히 누리던 것을 참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너무 힘들었다. 마트에 가면 온통 비닐포장에 과대포장되어 있는 식재료들을 보며 좌절했고, 일회용 컵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화가 났다. 그러면서도 욕구를 이기지 못해 먹고 싶은 배달음식과 과자에 손을 뻗어버린 나를 볼 때면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저 쓰레기산에 또 하나의 쓰레기를 얹어버리다니. 하지만 어느새 참는 단계를 지나 새로운 선택들을 하며 보람을 느끼는 나에게 이제는 익숙해져 있다.

  제로웨이스트는 금욕적인 생활이 아니라, 나와 나에게 온 물건을 가꾸고 돌보는데 더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하는 물건도, 잘 버려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검색해보고, 최대한 재활용이 쉬운 소재로 된 물건을 찾게 된다.


  우리는 편리함을 위해서, 조금만 불편하면 참지 않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 돈을 벌고 일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한다. 또한 어떨 때는 노후의 삶을 잘 연명하기 위해서 가장 에너지 넘치고 화려한 젊은 시절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이라도 직접 손으로 기르고 요리한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직접 만든 옷을 입고 열심히 번 돈으로 산 물건들을 아끼고 고쳐서 계속 사용한다면 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힘들게 수명을 연장할 바엔 현재를 사는 나의 행복을 위해 나를 가꾸고 죽을 때가 되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어쩌면 나를 가꾸는 삶이 자연스럽게 나의 수명을 연장해줄지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을 억지로라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원을 파괴하는, 생산량을 늘리는 데만 몰두해 있는 집단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을 게 아니라.


  그런 점에서 제로웨이스트 운동은 물건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나라는 인간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다. 현재를 살고 있는 나를 가꾸고, 나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좋은 관계를 맺고, 더 만족스러운 삶을 되찾기 위한 운동이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갖고싶은 물건들을 사는데 돈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 돈을 모아 외제차를 사는 것? 강남 한복판의 아파트를 갖는 것? 쉬는 날 호텔에 가서 호화로운 서비스를 받는 것? 죽을 때 자식들한테 물려줄 어마어마한 유산이 남아있는 것?


  남편과 썸 타던 시절, 대화를 하다가 참 인상 깊은 말을 들었다.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자식의 체육대회에 가서 달리기 1등을 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를 끌어안는 것이라고 답하면 사람들이 어이없어한다는 것이다. 그거 말고 뭐가 되고 싶은지, 뭘 이루고 싶은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솔직히 말해서 저 대답에 나는 반했다. 남들이 우러러보는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아등바등하는 게 아니라 가족들이 행복하고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는 21세기의 청년이라니.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지 고민해본다. 내가 상상하는 유토피아는 그저 아름다운 자연에서 동물들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뛰노는 그런 천국 같은 세상이다. 큰 스트레스 없이 아름다운 순간순간을 온전히 즐기기가 참 어려운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그런 세상을 이루기 위해 나는 여태까지 달려온 것이 아닌가.


“체제를 바꿔야 하는 것은 맞지만, 체제는 개인이 모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체제의 움직임은 각 개인이 시민으로서, 주주로서, CEO로서, 제품 디자이너로서, 소비자로서, 친구로서, 가족의 일원으로서, 유권자로서 보인 행동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이제는 체제가 바뀌기를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가정과 직장에서 내린 온갖 결정이 ‘체제’로 축적된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 '노 임팩트 맨' 중


  이제 더 이상 내가 맞닥뜨리는 현실적인 한계 앞에서 좌절감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하는 행동이 작은 불씨가 되어 옆 사람에게 불을 붙이고, 나아가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데 일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는 순간, 이것이 내 정체성을 이루는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내 삶의 만족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로웨이스트 운동은 환경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다. 그리고 환경을 지키는 것이 곧 나를 지키는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곳이 건강해야 나도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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