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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ho Mar 14. 2022

인생을 지속시키는 힘 (2)

환경 운동의 시작

아직 내 꿈을 이뤘다고 말할 순 없지만, 아직 한창 걸어가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다.

-1편에서-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비건과 환경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냐고. 지구와 인류를 구한다는 어마어마한 포부를 담은 이 환경운동의 시작은 꽤나 사소했다.

 대학교 때 사진동아리에서 사진에 흥미를 붙이고서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평범한 길 하나를 가더라도 뭘 찍을까 하면서 두리번거리고, 멈춰 서서 셔터를 눌렀다. 그러다 보니 항상 남들보다 뒤처져서 걷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나를 기다려주고, 나는 얼른 찍고 뛰어서 쫓아가고.. 하지만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세상을 관찰하니 우리 주변에 흔하게 서있는 나무와 풀들, 하늘과 땅의 모습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느린 여행을 다니다 보면 경이로운 자연을 마주할 때가 많다. 노을의 모습도 매일매일이 다르고, 산과 나무, 호수와 바다의 색깔은 계절마다 다르다. 이 지구에는 인간 말고도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과 벌레들이 있었다. 지구 생태계라는 크나큰 생명체 안에 존재하는 나는 그저 작고 여린 존재에 불과했다. 자연이 좋아졌고, 자연 속에서 사는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키우던 고양이가 돌연 하늘나라로 떠나고, 화장하여 나무 아래 묻어주고 나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의 가족과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 나조차도 결국엔 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인데, 이 땅을 아껴야 하지 않겠나.


 그 이후로 환경에 관한 자료들을 접하고, 서울환경영화제와 넷*릭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환경에 관한 다큐, 영화, 서적들을 하나둘씩 보게 되었다.

헌데 내가 느꼈던 경각심에 비해 현실은 훨씬 더 어마어마했다. 당장 내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생태계는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지구는 그 신호를 계속 보내왔지만 우리는 성장과 편리함에 눈이 멀어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 거대한 변화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단 가장 심각하다는 플라스틱 줄이기 운동부터 시작했다.

서적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 등과 영화 '알바트로스', '위장 환경주의', '낙원', '플라스틱의 모든 것' 등을 보았다.

SNS에서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팔로우하고 정보를 얻었다.

샴푸와 바디워시부터 비누로 바꾸고 샤워타월을 수세미와 삼베로 바꿨다.

면생리대를 쓰고, 쓰레기 없이 장보기에 도전하고, 음식 포장할 때 용기내 챌린지를 했다.


제로웨이스트 책 ‘무해한 하루를 시작하는 너에게’


재활용품은 내용물을 깨끗히 씻어서 분리배출한다.


 매우 힘들었다. 시시때때로 포기하고 싶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몸은 녹초이고, 어느새 손은 배달앱을 켜고 있었다. 집 앞 마트에 면 파우치를 들고 가니 포장 없이 파는 야채나 과일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감자를 몇 개 골라 면 파우치에 담고 직원에게 바코드를 찍어달라고 건네니, 퉁명스러운 직원의 말이 돌아온다.

“이런 거 쓰면 안 돼요. 여기 마트에서는 비닐을 써야 해요.”

나는 기분이 확 상해버려서 사려던 것도 내려놓고 돌아 나왔다. 카페에서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달라고 하니, 입구가 좁아 얼음이 안 들어가서 일회용 컵에 담는 일도 대수였고, 어떤 카페에서는 텀블러에 빨대를 꽂아주기도 했다. 이런 장벽을 하나둘씩 마주하면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게다가 상황은 이렇게 심각하고 나는 이렇게 고군분투하는데,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태연하게 일회용 컵에 커피를 사서 마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 답답했다.


 그러던 와중 다큐 '카우스피라시', '씨스피라시', '대지에 입맞춤을' 그리고 영화 '2040',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레시피', '내일', '그레타 툰베리' 등을 보았다.

 이 영화들을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은 것은 물론이고, 내가 플라스틱 조금 안 쓰는 것보다 더 큰 실천은 채식과 로컬푸드로 요리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물론 플라스틱 줄이기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채식과 제로 웨이스트를 병행하기란 더욱더 힘들었다.

 너무 완벽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느꼈다. 당장에 모든 것을 바꾸고자 하면 나만 힘들어지고, 운동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는 속도를 조금 늦추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요리는 집에서 하고, 너무 힘든 날이 아니면 회사 점심 도시락을 쌌다. 못난이 유기농 채소를 판매하는 업체를 알게 되어, 2주에 한 번씩 오는 야채 박스를 정기 구독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채식과 비건을 실천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쓰레기 문제에도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야채 박스의 야채들도 거의 생분해 비닐과 종이봉투, 신문지 등에 감싸져서 왔다. 게다가 내가 평소 사보지 않았던 야채들도 받게 되니, 다양한 요리법을 찾아보고 야채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었다. 이전의 나라면 야채는 고기와 함께 곁들여 먹는 것쯤으로 생각했다면, 지금의 나는 세상엔 무수히 많은 야채들과 무수히 많은 '맛'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채식이 미각의 경험을 넓혀주었다. 더욱이, 생리통이 사라지고, 30대가 되면서 종종 나타나던 속쓰림 증세가 말끔히 사라졌다. 심지어는 화장실을 너무 잘 가서 밖에선 불편할 때도 있다.


채식을 하면서 요리의 즐거움과 내 몸을 가꾸는 일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내 삶에서 환경에 이로운 삶의 방식들을 하나씩 받아들이면서 큰 재미와 보람을 느끼고 있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며 다양한 것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인생의 목적을 어렴풋이 깨달은 느낌이라 삶의 만족도가 많이 높아졌다. 그리고 이것이 나의 인생을 지속시키는 힘이라고 느꼈다. 돈이나 명예같이 금방 사라지며 인생에 무의미한 것들이 아닌, 내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지를 깨달았다.


 짧은 일대기(?)를 글로 적어놓고 나니 생각이 든다. 내가 살면서 좋아하고 관심 있게 들여다봤던 모든 것들이 '지속 가능한 삶'이라는 하나의 가치로 모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인생의 목표를 찾기 위한 끝이 보이지 않는 여정에 집착했던 과거의 나는 지금은 어렴풋이 보이는 나의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이제는 곰곰이 한번 생각해보자.

인생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를 행복하고 뿌듯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한 인생은 어떤 것일까?


 독서 모임에서 어떤 책과 관련해 이 질문을 화두로 던졌을 때, 우스갯소리로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참 슬펐다. 어려운 화학 공식, 수학공식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고대 문자를 해석하는 것도 아니고, 전문적인 용어를 쓴 것도 아닌 그저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하면 머리가 멍해진다는 현실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학창 시절 나를 의미 있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단순히 좋아하는 취미를 벗어나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올바른 인생에 대하여, 내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삶의 모습에 대하여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다. 그저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걸맞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안되면 좌절하고 루저라고 스스로 자책하고, 일탈하면 비행청소년으로 낙인찍힌다. 대학에 가면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쌓고 학점을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렇게 회사에 들어가면 우리는 그저 생산을 위한 기계가 되고 이윤을 내기 위해 우리 등의 나사는 점점 조여진다. 노후를 위한 자금을 모아야 한다는 것은 건강할 때의 나를 등한시하고 노후에 얻을 병을 만들고 있으면서, 그 병을 치유하기 위한 돈을 모아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과연 이것이 잘 사는 것일까?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과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이루고자 하는 삶의 모습을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일은 그저 여유 있는 몇몇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사치스러운 일일까. 남들의 기준을 나의 기준으로 세워놓고 그것이 내 목표라고 세뇌시키며 그저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사는 인생의 쳇바퀴에서 벗어난다면 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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