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IT 공황장애
“악!!! 대체 취소는 어디에 있는 거야!!!”
지금 난 노트북 앞에서 절규하며 머리를 쥐어뜯고 있다. 마우스를 집어던져 버리고 싶을 만큼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왜냐하면 요금 미납으로 연체가 됐다는 문자가 날아왔고, 자세히 보니 얼마 전 일 때문에 소프트웨어를 며칠만 쓰기 위해 구독 신청을 해 놨는데 깜빡하고 취소를 안 한 것이었다. 더 이상 내 피 같은 돈을 쓰지도 않는 구독으로 날려버릴 수 없기에 난 재빨리 취소하러 사이트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러나. 구독 취소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 사이트를 뒤지고 뒤지다, 이 상태를 더 반복하다 암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결국 나에게 아니, 우리 세대에게 친숙한 아날로그 방식, 고객센터로 전화했다. 하... 이제 고객센터도 예전 같지 않다. 예전엔 바로 상담원과 연결되고 내가 필요한 걸 얘기하면 끝이었는데 지금은 뭐가 이렇게 누르라는 게 많아!!! 게다가 뭐어? 보이는 ARS? 보이는 ARS??? 야!! ARS 뜻이 자동응답시스템인데 왜 봐야 하는데?? 그리고, 보다가 막혀서 음성으로 다시 넘어가는 건 왜 또 어려운 거야? 결국 끊고 다시 전화하고 또 기다리고... 후... 난 요즘 이렇게 IT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사실 난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지만 대부분을 컴퓨터로 작업하기에 나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 뒤처지지 않고 잘 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견우야, 나도 어쩔 수 없는 중년인가 봐. 이런 나도 점점 디지털과 비대면의 장벽에 막히는 일이 점점 잦아짐을 느낀다. 얼마 전엔 구독 취소로 멘붕에 빠지더니 최근엔 키오스크가 내 뼈를 때렸다.
내가 요즘 일하는 곳은 군사지역이라 그놈의 보안 때문에 인터넷 설치에도 몇 주가 걸렸고 정전은 벌써 4~5번은 된 거 같다. 이렇다 보니 최근에도 정전 때문에 스터디카페에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또 전기가 끊어졌다. 나는 선을 지키는 여자. 문서 제출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늘까지 처리할 문서들이 산더미 같은데 난 벌써부터 감독의 독촉 전화벨 소리가 울려대는 환청이 들리는 것처럼 불안하다.
불안해하는 나를 보고 한 동료가 스터디카페에 가자고 제안했다.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흔쾌히 오케이를 외치며 짐을 바리바리 쌌다. 갑자기 전원이 나가는 바람에 컴퓨터 하드에 있는 자료를 옮기질 못해서 돌덩이 같은 본체와 모니터를 들고 끙끙대며 비를 뚫고 차로 옮겨 노트북에 자료를 옮기기 시작했다. 현장에 있는 그 많은 차 중에 전원코드를 꽂을 수 있는 차는 딱 한 대. .4대의 컴퓨터를 연결해 옮겨야 해서 한 시간이 눈 깜빡할 사이 지나가 버렸다. 처음부터 술술 풀리지 않는 게 짜증이 나려고 한다.
드디어 스카(스터디카페의 요즘식 줄임말이라 한번 써보고 싶었다.)에 도착했다. 우산을 썼지만, 노트북을 보호하느라 이미 내 몸은 다 젖었다. 하지만 노트북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노트북을 꽁꽁 끌어안고 건물 안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새로 지은 건물인지 건물도 엘리베이터도 깔끔해 보였지만 엘리베이터 안이 너무 좁아 노트북에 우산까지 든 우리 네 명은 숨을 죽여야 할 정도였다. 좁아터진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스카 입구 앞에서 입장조차 하지 못하고 우리 네 명은 모두 우두커니 멈춰 섰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노트북에 우산을 들고 비 맞은 머리는 이미 추노가 된 다 큰 성인 넷은 스카 앞에서 서로만 빤히 쳐다볼 뿐 그 누구도 문을 열지 못했다. ‘열려라 참깨!’같은 암호라도 외쳐야 하는 건가? 스카는 처음이라 핸드폰을 부여잡고 예약해 준 직원이 알려준 앱을 열어 헤매고 있는데 다행히 한 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가 우린 겨우 따라 들어갈 수 있었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출입부터 앱으로 뭔가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일단 들어왔으니 오케. 하지만 다음에 또 오게 된다 해도 입장하는 방법은 여전히 모를 것 같다. 입장만 하면 모든 게 끝일 줄 알았다. 하지만, 햄버거 매장에서만 보던 키오스크라는 장애물이 우릴 비웃고 있었다. 우리 넷은 또 서로의 얼굴만 빤히 쳐다보며 ‘네가 좀 해봐.’라는 신호를 교환하고 있었다. 대체 뭐가 문제지? 햄버거 주문할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이건 대체 뭘 누르고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난 또 사람을 찾았다. 스카 문의센터로 전화를 걸어 아날로그 사람의 설명을 들으며 키오스크를 해낼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사람 냄새라는 것이 아닌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전환을 권장하는 시대에 나는 IT 공황장애 경증 환자로 분류된다. 하지만 나보다 더 심한,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어야 할 중증 환자가 내 주변에 나타났다.
얼마 전 내 업무를 인수인계받기 위해 오신 50대 중반의 남자 한 분이 있다. 그의 IT 능력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창을 열어 기사를 찾아보는 정도인 거 같았다.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 진리처럼, 난 이 IT 공황장애 중증 환자의 케어를 맡게 되었다. 나도... 환자인데!!
이분의 IT 공황장애 증상을 발견한 건 다 만들어 놓은 한 장짜리 한글파일(사진이 두 장이고 글자는 간단한 그림 설명이 담긴 한글파일) 출력만 부탁드렸는데, 한글에 있던 사진 하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상태로 상사에게 보고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다. 나보다 연세가 있다 보니 일일이 관여하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라 생각한 나는 아주 간단한 출력만 부탁드렸는데 예측 못 한 일이 벌어졌다. 그의 IT 공황장애는 나보다 심각한 중증이라는 걸 확진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급한 업무가 생겨나는 컴퓨터 파일명만 바꾼 뒤 그에게 말했다.
“파일명은 바꿨으니 이 파일 열어서 수정하십시오”
“금방 어느 쪽 마우스 누르신 겁니까? 파일 이름 바꾼 거요?”
마우스 버튼이 10개 아니, 5개도 아닌데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메뉴가 나오는 것조차 그는 모르고 있었다,
이때 중증이란 걸 눈치 챘지만 급기야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응급 상황이 발생했다.
그 유명한 ‘Ctrl+c(복사하기)‘ ’Ctrl+v(붙이기)’ 즉, 컨트롤 씨브이라는 용어도 그는 모를 듯 해서 자료를 찾아 단톡방에 올리며 ‘복사해서 문서 작성하세요”’라고 했다. 단톡방에 파일을 올리면 다운받기를 누를 때 저장/다른이름으로 저장이 나올 테니, 이 정도는 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한참을 동상처럼 미동이 없었다. 그래서 난 확인 차 그의 자리로 가서 물었다.
“복사하셨어요?”
“음... 혹시 복사는 저쪽에 있는 제록스 복사기로 하면 되는 겁니까?”
“.....................................”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그의 답변에 난 할 말도 함께 잃었지만, 스카 사건과 구독 취소 사건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남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모두 IT 공황장애를 앓고 있다. 개인적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언젠가 경증 환자인 나도 중증 환자가 될 수도 있다.
키오스크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사람!
AI로봇 앞에서 당황하는 사람!
우리는 모두 쏜살같이 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뒤처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조금 늦은 이들을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나부터 그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