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송 Feb 23. 2024

선을 지키는 여자

9. 이송의 아우성

“꺼억꺽~ 이모~ 꺼억~ 이모 형이 때려요! 으앙~”     


두나의 둘째가 무서움에 떨며 형한테 맞아서 방문을 잠그고 숨어 있다고, 데리러 와달라고 나에게 급하게 전화가 왔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1분 1초라도 빨리 가서 조카를 데리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에 전화를 받고 내 심장이 몸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두나는 이런 상황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겪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다.     


두나는 전날 한 줌의 약을 먹고 가출을 했다. 아이들에겐 1박 2일 동안 외할머니 병간호 때문에 전화 연락이 잘되지 않을 거라는 말만 남긴 채 훌쩍 떠난 것이다.

이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이제 겨우 4학년인 둘째 조카는 엄마가 외할머니 간호한다는 말을 믿고 고생했을테니 맛있는 밥을 차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어린 녀석이 맛있는 젤리를 사 먹으려고 숨겨둔 용돈을 가지고 재료를 사서 콩나물국과 계란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자 첫째 조카가 방문 밖에서 요리하는 요란한 소리를 듣고는 ‘남자 새끼가 요리한다’고 쏘아붙이며 둘째에게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두나의 첫째 아들은 2년째 심한 사춘기를 겪고 있어 세상 모든 게 못마땅한 상태이다.     


두나가 가출을 한 것도 첫째의 사춘기와 맞서기 싫어서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인데 1박 2일 만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도대체 2024년의 사춘기는 뭐지?

분명히 우리 때도 중2병이라는 용어만 없었을 뿐 사춘기는 있었는데 이렇게 요란하고 가족을 힘들게 하진 않았던 거 같다.(부모님께 우리 형제들 사춘기 시절을 몇 번이나 여쭤보았다)     

두나는 결국 사춘기 아들과 2년 넘게 지내는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로 지난해 뇌출혈로 쓰러졌다. 다행히 의식이 있는 상태로 수술실에 들어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중환자실을 거쳐 3주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누군가 죽어나가야 바뀌는 세상처럼 두나가 죽기 일보 직전이 되고 나서야 첫째는 제 자리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우린 이제 막 데드존에 진입한 딸이 있다. 나는 조카와 두나를 가까이에서 겪으며 실제로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똑똑히 보았다. 두나의 희생 덕분에 나는 학습 효과를 얻을 수 있었고 그래서 나도 딸의 생활에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정말 하지만 다 해도 되지만! 단 한 가지 사춘기 딸에게 절대로 안 되는, 그리고 나만의 선을 지키는 것이 10대의 이성 교제라고 선포했다.     


‘딸 가진 죄인’이라는 옛말이 하나 틀리지 않다. 여학생이 임신을 하면 ‘여자가~’ 소리부터 나오며 여자가 더 비난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상견례 자리에서도 결혼은 둘이 같이 하는 건데 왜 신부 부모님은 자꾸 부탁을 해야하지? 게다가 사내커플이나 학교 CC를 하다 헤어지면 여자의 학교 생활이 더 어려워지는 게 다반사다. 왜 이런 말들이 나오고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면 누구나, 특히 여자들은 더 공감할 것이다. 이성 교제의 결과는 절대적으로 여자에게 불리하다. 그리고 누구나가 걱정하는 일을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얼마 전 10년 이상을 거래해 온 거래처 담당자와의 업무 미팅을 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는 두나의 안부를 물었고 나는 아무런 후유증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 역시 두나의 스트레스가 사춘기 아들의 영향이 컸을 거라고 얘기하며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 딸이 사춘기를 거창하게 치르면서 있었던 일화를 얘기하는데 놀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아내도 사춘기 자식 때문에 2년 동안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고 몸져누워 지내다시피 했다고 했다고 하며 혀를 찼다. 하루는 마치 군 입대가 내일인 것처럼 반 삭발을 하고 온 딸에게 놀라 왜 머리를 밀었냐고 물었더니 아이의 대답은 ‘그냥’이었다고 한다. 너무 놀라 병원에 데리고 가니 의사 말로는 그저 사춘기 반항이라며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아들도 아니고 딸이, 당장이라고 절에 들어갈 외모로 나타났으니 집에 가둬두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 싶어 학교도 홈스쿨링으로 전환하고 집밖에 아예 나가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그래도 너무 화가 나서, 아무것도 먹지 말라며 냉장고에 맞는 자물쇠를 제작해 냉장고 문도 못 열게 자물쇠를 채우기까지 했단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굶기고 싶겠는가? 정말 오죽했으면!     


남자라면 몸을 쓰는 일이라도 시켰을 텐데 딸이라 함부로 내 보내지도 못하겠다는 그의 말이 너무나도 공감됐다.     


얼마 전 명절 연휴에 우리 집에 두나네 부부가 왔다. 식탁에 모두 앉아 내 딸인 지원이의 이성 교제에 대한 얘기를 두나가 꺼냈다.

“지원아! 남자친구 없어?”

“이제 사귀어야지!”

“딱 뽀뽀까지만 해! 더는 안 되는 거 알 쥐?”     


나는 순식간에 두나에게 뒤통수를 맞은 거 같았다. 이성 교제만은 안 된다고 내선을 그어 놓았는데 이모가 얘기하고 있으니 내 얼굴 표정은 점점 굳어가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깜깜해지며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급기야 두나는 마치 요즘 애들의 속을 다 꿰뚫고 있는 것처럼 지원이에게 연타를 날렸다.

“지원아! 남자친구랑 자는 친구들 있지?”

“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지원이는 “네.”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퍽!!! 권투 글러브로 한 대 심하게 맞은 거처럼 멍하다.

나도 지원이에게 묻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던 성(性)에 대한 이야기. 순간 두나가 고마워진다.

두나는 항상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먼저 앞서 나간다. 나도 이런 걸 딸과 얘기해보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는데 두나가 먼저 속시원히 얘기해주니 ‘잘했어’ 하고 응원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머뭇거리는 동안 아이들은 벌써 성(性)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선을 지키는 여자! 나는 과연 계속 선을 지킬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얘기를 아이와 한다는 것 자체가 멘붕이 온다. 대체, 당췌 어떻게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하다.

이럴 때 라떼 사람 구성애 선생님의 아우성이 그리워진다.     


여러분, 여러분은 자식과 성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나요?

여러분은 10대 자식의 이성 교제를 허락하실 건가요?

작가의 이전글 선을 지키는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