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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송 Mar 02. 2024

선을 지키는 여자

10. 시티헌터

‘한국 사람인 거 같아!’ ‘아니야~ 일본 사람인가?’

내 뒤에서 수군거리는 하노이 마담들(베트남에 거주하는 한국 아줌마들을 지칭)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녀들은 곧이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한국 사람이세요?”     


나는 마음속으로 ‘재수!’하고 기뻐하며

“네”라고 대답했다.     

우리들의 SNS 단톡방 이름은 길바닥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게 된 시작이 베트남 하노이 미딩이라는 시내 한복판의 길바닥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내가 한국 사람임을 반가워하며 나에게 한국 약국을 알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하노이에 온 지 2주 차이지만 유일하게 아는 곳이 한국 약국이어서 약국까지 그녀들을 데리고 갔다.      


각자 필요한 의약품을 구입하고 약국을 나와서 나는 그녀들에게 대뜸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실 거예요? “

”아, 이제 백화점 구경 좀 해보려고요! 덕분에 약국도 찾고, 정말 감사해요. “

난 그녀의 ‘감사해요.’ 뒤에 ‘같이 가실래요?’가 나오길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난 또다시 대뜸 말했다.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     


처음 그녀들이 나에게 한국 사람인지 아닌지 물었을 때 왜 ‘재수!’하면서 쾌재를 외쳤는지, 그리고 난 왜 지금 난생처음 본 이 여자들과 함께 백화점에 따라가고 싶은지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다. 하노이에 온 지 2주 남짓 된 나였지만 난 벌써 한국이 그리웠고 외로웠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친구 한 명, 친인척 한 명도 없는 낯선 환경이 나에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어가 들리는 순간부터 너무 반가웠고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그녀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녀들의 실제 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나 표정은 흔쾌히 같이 가자고 하는 듯했다. 사실 처음 보는 사이에 쇼핑은 너무나 어색한 일이라, 우리는 식당으로 먼저 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우린 베트남에 언제 왔는지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지 남편은 어느 회사 주재원인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그녀들은 나보다 1살, 2살 많은 언니들이었고 베트남 생활은 나보다 2주 정도 일찍 왔으며, 사는 곳도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남편들마저 3명이 모두 같은 그룹 계열사였다.

이런 운명적인 만남이! 물론 이 정도야 흔한 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타국에서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을 때 뭐라도 끄집어내서 공통점과 연을 찾고 싶어 진다.     


이 언니들과 꿈같은 하노이 생활을 하고 지금은 부산, 서울, 하노이에서 각자 지내고 있지만 하노이에 있는 언니는 친정이 부산이라 한국에 들어올 때마다 꼭 만난다. 서울로 돌아온 언니는 지난주에 서울에서 만나 즐겁게 지냈으며, 아직도 우리는 그때 하노이 길바닥에서 알게 된 인연을 유지하며 잘 지내고 있다.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해주면 신기해할 때가 많다. 외국에서 친하게 지냈어도 한국에 들어오면 연락을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선을 지키는 여자.

사업을 하면서 20년 동안 만나는 사람의 100%가 남자들이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라 나에겐 이성과의 업무에서 선이 필요했고 항상 선을 지키기 위해 사적인 관계는 맺지 않는 게 내가 선을 지키는 방법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처음 보는 사람,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는 선을 넘나 든다. 전편에서 봐서도 알겠지만 비행기에서 생판 처음 본 남자에게 손을 잡아달라 한 것도 그렇고 내 특이한 습관 중 하나가 처음 본 사람 앞에서는 체면 안 차리고 밥을 엄청 많이 잘 먹는데 오히려 익숙해진 사람과 밥을 먹을 때는 많이 못 먹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TMI라고 생각할 만큼 처음 본 사람에게 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상대방에 대한 많은 정보도 알아가는 편이다. 난 과연 헌팅의 유전자가 강한 시티헌터인 것인가?          


29살에 혼자 일본 여행을 갔다.

해외여행도 처음, 혼자 하는 여행도 처음이라 여행사에서 일러준 코스를 외우다시피 하고 일본에 도착했다. 처음 여행지는 후쿠오카의 호수가 있는 오호리 공원이었다. 전자 사전도 없던 시절이라 달러 아주머니들 전대 같은 허리 가방을 차고, 벽돌만 한 크기의 일한사전, 한일사전 두 권을 넣어 여행사에서 일러준 대로 다음 코스를 생각하며 오호리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공원에 들어서고 얼마 되지 않아 내 시티헌터 본능을 깨우는 일본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칸코쿠징데쓰까?“(한국 사람인가요?)     


파파고 같은 번역기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이라 4박 5일 일본 여행에 기본적인 일본어와 히라가나 정도는 외우고 갔다. 그래서 이 말은 정확히 알아들었다.

나에게 말을 건 남자는 20대 초중반으로 많이 앳되 보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옆에 친구로 보이는 한 명이 더 있었는데 그들은 먼저 자기소개를 간단히 하고 나에 대해서도 실례가 되지 않는 정도의 질문만 했다. 그들은 나보다 5살이나 어린 히로시마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이라고 소개했다. 내가 딱히 연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냥 일본에 와서 일본 남자가 말을 걸어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둘 중 한 명은 후쿠오카가 고향이고 나머지 한 명은 히로시마가 고향이라고 했다. 히로시마에 사는 친구가 후쿠오카에 놀러 와서 관광지를 구경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어를 100% 이해하진 못했지만, 짧은 영어와 내가 준비한 사전들을 대동해서 그들과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급기야 느닷없이 일본인 친구가 일본 노래까지 부르는 기행까지 본 후 2시간 정도 공원을 함께 산책하고 다음 행선지를 향했다. 

나의 다음 행선지는 후쿠오카 타워가 있는 모모치 해변이었고 그들은 후쿠오카 타워라고 해 방향이 같아 우린 같은 버스를 탔다. 마치 중고등학교 시절 버스 맨 뒷 좌석에 줄줄이 앉아 친구들과 떠들고 놀 듯 그렇게 목적지까지 동행했다. 그리곤 내 계획에 없던 후쿠오카 타워까지 구경하고 포장마차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으며 서로의 이메일을 교환했다. 삐삐나 폰 번호를 딸 수도 있었겠지만 여기서도 나는 마지막 선은 지키며 그들과 헤어졌다.      


그 후로도 난 그들과 이메일을 몇 번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국제 우편으로 사진이 도착했는데 사진을 보니 생각이 났다. 디지털카메라가 없던 그 당시 난 필름 카메라를 들고 갔었는데 둘 중 한 명이 내 사진을 찍어주다가 내 카메라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는 나에게 ‘스미마생’을 한 100번은 외치다시피 했고 없는 자판기가 없다는 일본에는 일회용 카메라 자판기가 있어 그는 그걸 사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그는 인화까지 해서 국제 우편으로 나에게 사진을 보내준 것이다. 누가 들으면 일본 갬성 로맨스 ‘러브레터’급이라 생각하지만 난 선을 지키는 여자. 그들과의 인연도 딱 그 선까지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연하를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일본 여행을 다녀오고 2년쯤 지났을 때 가장 친한 친구와 보길도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일본 여행과는 달리 아무런 계획 없이 출발했는데 보길도 들어가는 배 시간을 뒤늦게 알고는 배를 놓칠까 봐 휴게소 한번 안 들리고 달려 겨우 차를 배에 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서야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여름인데도 평일이라 그런지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은 우리 말고는 남학생 2명 정도뿐인 거 같았다. 보길도에 저녁 늦게 도착해서 숙소를 잡고 항구 앞 식당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배에서 본 남학생 2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도 배에서 우리를 보고 관광객임을 알고 기다렸다고 한다. 이것들이 내가 시티헌터인걸 알아본 것인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또 5살 연하의 대학생들이었다. 정말 내가 연하를 좋아하는 건 아닌데 우연한 만남은 모두 5살 연하다.      


그들과 우리는 간단히 소개만 하고 다음 날 일정을 같이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보길도 탐방을 하고 각자 여행지로 배를 타고 떠나며 부산에서의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역시나 그들도 짧은 만남이 아쉬워서인지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한 건 지 얼마 되지 않아 부산을 찾아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각자의 결혼식을 축하해 주며 서로를 응원하는 사이로 아직도 가끔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그때는 어렸고 모든 세상이 맑아 보였던 거 같다. 만약 지금 똑같은 상황 주어진다면 위험해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내가 선을 지켰기 때문에 시티헌터 같은 본능에도 그들과 딱 좋은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선을 지키는 게 아니라 내가 연하를 싫어해서 그랬던 게 아니냐는 질문을 종종 받지만 지금에야 커밍아웃한다. 지금 내 집 소파에 누워 게임만 하며 뒹굴고 있는 놈도 5살 연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정말 내가 연하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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