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님 별빛웨딩홀로 빨리 가주세요”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한 여주인공처럼 나는 추운 겨울 새빨간 목도리를 하고 신부를 만나러 가고 있다. 여자가 왜 신랑이 아니라 신부를 만나러 가냐고? 그건 다 이유가 있다.
택시는 달려가고 있지만 내 마음은 수도 없이 신호등 빨간불과 함께 멈춘다. '가는 게 맞나? 내가 여길 왜 가고 있지? 아냐,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지. 확인? 무슨 확인? 내가 왜??‘ 웨딩홀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 혼자 냉탕과 온탕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냉탕과 온탕을 몇 번 왕복하고 나니 택시는 이미 예식장에 도착했다.
“거스름돈은 됐어요!”
평소 같으면 거스름돈을 무조건 챙겼을 나다. 하지만 택시가 웨딩홀에 도착하자마자 내 마음은 이미 웨딩홀 계단을 날아올라 그들의 웨딩사진을 향하고 있었기에 거스름돈 따위 받을 겨를이 없다. ‘나보다 예쁠까? 그래도 키는 내가 더 크겠지? 나보다 훨씬 동안인가?’ 웨딩홀 계단을 오르면서 계단보다 더 많은 생각을 했다. 나보다 더 예쁘면 어쩔 거고 아니면 어쩔 건가. 어쩔 수 없는 건 없다. 다만, 누구나 그렇듯 나보다 안 예쁘면 이상하게 만족감이 든다. 나는 바로 나와 썸을 탔던 남자의 신부를 보러 온 것이다.
나는 조급함이라 곤 전혀 드러나지 않게 천천히, 교양 있는 모습으로 예식홀로 올라가는 상상을 하고 있지만, 내 손가락은 상상과는 달리 오락실 버튼을 누르듯 쉼 없이 닫힘 버튼을 누르고 있다.
“땡”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나는 마치 붉은 목도리 휘날리며 경보선수처럼 걸었다. 사실 우사인 볼트처럼 뛰고 싶었지만 그나마 절제한 게 경보 걸음이었다.
아침부터 옷을 고르느라 옷장 앞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바람에 썸남의 예식은 이미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렇게 궁금해하던 사진도 벌써 치워진 터라 축의금만 내고 돌아서는데 옛 직장 선배들를 만났다. 나는 사업을 시작해서 먼저 퇴사했지만, 오늘 예식의 신랑인 내 썸남과 그들은 아직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진은 치워졌고 식장에 들어가서 신부 얼굴을 볼 용기까지는 없어 오랜만에 만난 선배들과 간단한 인사만 하고 가려는데 그들 중 한 명이 대뜸 물었다.
“니가 왜 여기서 나와?”
그는 세상 의아한 표정까지 덤으로 나에게 던지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웠지만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해맑게 답했다.
“친구 결혼식인데 당연히 와야지요. 저희... 선배가 생각하시던 그런 사이 아니었습니다. 호호”
나는 선배에게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나의 주목적을 확인하기 위해 너스레를 떨며 물었다.
“선배, 결혼식은 보고 나오신 거예요? 저는 늦어서 신부 얼굴도 못 봤어요.”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부가 너무 못생겼더라. 신부 화장은 진짜 어지간하면 다 예쁜데 크! 크! 송! 네가 백배는 낫네!”
그들은 마치 나를 위해 입을 맞춘 것처럼 의문의 1승을 던져주며 식장을 떠났다.
‘그래, 이 맛이야!’
김혜자 선생님의 다시다가 이런 맛이 아닐까? 난 그녀에게 의문의 1패를 안기며 월드컵에서 우승이라도 한 것처럼 기뻤다. 내가 이 사소한 것에도 이렇게까지 기뻐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오늘 별빛웨딩홀에서 결혼식을 한 썸남은 20대 때 같은 회사를 다니던 직장동료였다. 나와 입사 시기가 비슷한 입사 동기들 중에 유일한 동갑내기였다. 우리는 같은 부서에서 일을 하다 보니 서로 의지하며 지냈다. 그는 그 당시 나의 이상형인 용모 단정에 매너 있는 남자였다. 이 남자라면 미래를 생각해 봐도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나와 거리를 두고 있는 거 같아서 나는 거리를 좁히기 위한 플러팅을 시작했다.
“너는 여자를 만날 때 조건 같은 거 있어? 이상형 같은 거 말야?”
“음...........음....”
그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나에게 말했다.
“내 이상형은 없어. 하지만 엄마 이상형은 있어”
“어. 엄마 이상형? 네가 만나는 여자인데? 엄마 이상형이 중요해?”
“그게...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엄마 말에 따라야 해서 어쩔 수 없어. 우리 누나도 엄마가 원하는 조건의 남자와 결혼했어”
물론 자식이 부모님 말씀을 따르는 건 당연하지만 마마보이처럼 보이는 그의 말이 나는 매우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과연 그의 어머니는 어떤 며느리를 원하실까? 혹시 나도 그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라는 은근한 기대를 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머님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는데? 너는 어머님 이상형이 곧 너의 이상형인 거야?”
나의 질문이 끝나자, 그는 또 잠시 머뭇거린 뒤 대답했다.
“내 이상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어차피 엄마가 반대할 거니까. 음.....그리고.... 엄마가 원하는 며느리 직업은 약사, 교사, 공무원 이 세 가지야. 내가 어딜가든 여자들과 거리를 두는 것도 다 이것 때문이야. 난 어차피 선을 봐야 하니까.”
나는 선을 지키는 여자!
난 그의 생각을 존중했고 그 후로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되었다. 그는 결국 어머니께서 찾아 준 교사 직업을 가진 여자와 평생을 같이 하자고 오늘 약속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어머니가 원하는 직업이 아니었기에 그에게 더 이상 내 마음을 표현할 수도 없었고 굳이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왠지 모를 오기가 남았을까? 나는 그의 결혼식에는 꼭 와보고 싶었고 어머니가 점찍은 대단할 것 같은 그의 신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나만 아는 1승을 거두고 기쁜 마음으로 그의 결혼을 축하해 주고 돌아섰다.
같은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와 나는 몇 년에 한 번 정도 업무차 연락을 했다. 물론 그에 대한 감정은 0.001도 남지 않았기에 친구로 지낼 수 있었다. 지난해 내가 몸이 좋지 않을 때, 그는 일 때문에 내 회사 근처로 오게 되었고, 몸이 안 좋다는 말에 잠깐 얼굴이라도 보고 가겠다 했다. 작년 한 해는 정말 운전도 하기 힘든 컨디션이라 그의 차를 타고 가까운 카페로 갔다. 나는 그의 차 문을 여는 순간 경악하고 말았다.
“친구야, 차가 왜 이렇게 더러워? 내 기억에 너는 깔끔쟁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모든 게 깨끗하고 단정했는데 말야!”
그는 멋쩍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카페에 도착하자 그는 아픈 나를 배려한 듯 얼른 차에서 내려 내가 편히 내릴 수 있게 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고는 곧장 자리를 잡고 앉으라는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순간, 예전의 그가 보였다. 지금의 안쓰러운 모습과는 달리 한 없이 깔끔하고 세심했던 그. 하지만 나는 지금 해진 자동차 시트 같은 그의 표정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날씨도 좋은데 우리 테라스에 앉는 게 어때?”
“나도 그러고 싶은데 너 괜찮겠어? 따뜻한 바람이라 괜찮긴 하겠다”
“넌 여전하구나.”
“뭐가?”
“여전히 배려심 깊고 세심하고... 그대로네.”
회색 빛깔 벽돌의 카페 건물을 등받이 삼아 기대고 친구와 나는 테이블을 두고 나란히 앞을 보고 앉았다. 아니, 그래야 할 거 같았다. 왠지 그를 마주 보고 있으면 안쓰러움이 사그라들 것 같지 않았다.
“너 설마 내가 중증 환자로 보여서 차 문을 열어 준거 아니지? 크크! 아니길 바란다. 친구.”
“야, 난 차에 누구를 태우던 문 열어주는데?”
“오호, 여전한데? 하기야 넌 매너가 항상 넘쳐났지. 네 와이프는 좋겠다. 살짝 부럽네”
우리가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오자 그는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한 모금 마시더니,
“아까 내 차 보고 좀 놀랐지?”
라고 물었다.
“뭐... 놀랐다기 보단 그냥, 네 차 답지 않아서...”
“나도 저렇게 시트도 다 떨어진 차를 타고 싶지 않은데 혼자 벌어서 네 식구가 살다 보니 차 같은 거에 신경쓸 여유가 없네.”
나는 몸이 안 좋아 평소에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크게 뜨고 놀라 물었다.
“혼자 벌다니? 어머님이 정해주신 선생님이랑 결혼해서 넉넉하게 살고 있는 거 아냐? 선생님이면 철밥통에 나중에 연금도 있고!”
나를 보며 이야기하던 그는 몸을 돌려 등을 벽에 기대고 큰 한숨을 쉬었다. 마치 딱딱한 회색 벽에 그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내가, 아니 우리 엄마가 따졌던 조건들 다 필요 없더라. 와이프는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니까 몸이 조금 안 좋다더니 나와 상의도 없이 학교에 사표를 냈어.”
“몸이 얼마나 안 좋아서 휴직도 아니고 사표를 냈어? 지금 와이프 몸은 괜찮은 거야? 내가 요즘 오랫동안 아프고 보니 누가 아프다고 하면 남의 일 같지가 않아.”
“사표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은 다시 좋아졌는데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집에서 10년 이상 쉬고 있어.”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차의 찢어진 시트가 마치 그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15년 전 그의 선택은 누가 봐도 안정적인 삶을 원하는 선택이었고 사실 그러했다. 그의 어머니가 정한 직업은 소위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직업들이었고, 다수의 사람들도 그 선택을 지지했고 부러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이처럼, 그땐 탁월해 보였던 선택이 시간이 지나면 이마를 탁 치며 후회될 때가 많다.
만약 그가 어머니의 바람을 저버리고 나를 선택했다면 지금 후회하지 않고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왜냐하면 선택할 땐 그 선택이 최선인 줄 알지만 결국 그 선택을 평가하는 것은 시간이다. 시간이 지나 봐야 그 선택이 좋았는지 알 수 있고 같이 살아봐야 좋은 사람인 지 알 수 있으며 내가 해내고 나서야 선택이 옳았다고 믿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조건이 다가 아님을 다시 깨닫는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이지만 지금의 좋아 보이는 조건이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믿음에 너무 의지하지는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