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휴가를 너에게 알리지 말라

by 이송

7월이 되자 사무실은 휴가 갈 생각에 들뜬 분위기로 가득 찼다. 누구는 벌써 제주 숙소를 예약했고, 누구는 환율 체크하며 해외 항공권을 결제 중이었다.


그때 전무님이 내 쪽을 말을 건넸다.

“이송 씨는 휴가 언제 갈 건가요?”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일단 신랑 휴가 날짜부터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무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그렇죠. 가족끼리 일정 맞춰서 가야 하니까요.”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전무님, 가족여행은커녕, 전 신랑 휴가 날짜를 피해서 쉴 예정입니다.”

“에? 부부가 휴가를 따로 써요?”

나는 한숨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같이 쉰다고 생각만 해도 답답해요. 제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자꾸 눈치를 보게 되고,

하루 종일 뒷수발들다 보면 니가 가자고 했잖아 소리까지 듣습니다. 그때부터는 피 튀기는 전쟁 시작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 사무실 안은 순간 정적이 흘렀고, 다들 '집안에 뭔 일이 있나!' 하는 눈빛으로 나를 봤다. 나는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하하, 저답죠? 진짜 휴가는 혼자 푹 쉬는 거잖아요.”

그러자 전무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조용히 혼자 쉬는 거 좋죠.”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월차든 휴가든 지미(남편의 영어이름 : 너는 나의 짐이다)에겐 절대 알리지 않는다. 마치 이순신 장군이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했듯이, 나도 내 휴가를 지미에게 알리지 않는다. 지미가 아는 순간, 내 휴식은 로그오프가 아니라 로그온이 된다. 내 피 같은 휴식 시간!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봉지채 들고 소파에 드러누워 드라마 정주행하는 그 귀한 시간에 누구도 들이닥치면 안 된다. 하물며 그게 지미라면 더더욱!


제가 얼마나 철저하냐고요? 연차를 내고 집에 있을 때, 지미가 평소보다 일찍 퇴근해서 내가 낮잠 자는 모습을 목격하기라도 하는 날엔 바로 중환자 모드로 전환한다.

“나 오늘 너무 어지러워서 조퇴했어. 미안한데 저녁은 시켜 먹자.”

물론, 내가 진짜로 아픈 건 맞다. 나는 2년째 호르몬과 치열한 전쟁 중이다. 시간이 이 정도 지났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지미는 내가 아픈걸 알 때가 되었을 거다.


올여름휴가도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미에게 슬쩍 물어봤다.

“자기야, 여름휴가 언제야?”

그러자 지미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휴가는 무슨 휴가! 당신 정신 있나! 이 불경기에 휴가 타령이고! 정신 차리세요 아줌마?”

정신줄 놓은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쏘아댔지만 나는 속으로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싸, 혼자 쉴 수 있겠구나.’

사실 지미도 나랑 같은 마음 아닐까? 해외여행 가자는 소리를 가끔 하지만, 내가 극심한 고소공포증으로 못 간다는 걸 뻔히 알면서 던지는 빈말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해마다 겨울이면 지미는 따뜻한 나라로 혼자 골프 여행을 떠난다. 나는 오히려 그게 더 좋다.


혹시 내가 지미를 사랑하지 않아서 이런 걸까? 나도 한때는 늘 함께 있고 싶어 했다. 결혼 초엔 주말마다 데이트를 했고, 여행도 일부러 연차를 맞춰 다녔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이젠 대부분의 시간을 ‘비대면 부부’로 지내는 게 더 편하다.

‘지미야, 나는 아직도 코로나 시대에 머물러 있어.’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감정의 마찰음은 커지고, 대화가 길어질수록 싸움의 불씨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보는 사이보다 적당히 떨어져 있는 사이가 더 평화롭다.


며칠 전, 사무실 여직원 정희씨가 말했다.

“이번 주말에 남편이랑 단둘이 캠핑 가요. 오랜만이라 설레요”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남편이랑 둘이요? 캠핑장에서 밥 먹을 땐 그렇다 쳐고 나머지 시간엔 뭐 해요?”

내심 ‘각자 휴대폰 보면서 쉰다’는 현실적인 대답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기대를 저버렸다.

“대화하죠.”

“네? 대화요? 제가 잘못 들은 건 아니죠? 부부가 무슨 대화를 해요? 안 싸워요?”

“차장님, 저희는 현실적인 얘긴 안 해요. 애들 다 크고 나면 크루즈 여행 다니며 살자, 이런 이상적인 얘기만 해요. 관리비가 많이 나왔다든가, 에어컨이 전기세를 잡아먹는다든가, 이번 달 애들 학원이가 더 놀랐다는 그런 건 그냥 카톡으로 통보하듯 날려요. 그래야 목소리 커질 일 없어요.”

그녀의 표정은 너무도 평온했다. 마치 '행복한 부부의 비결은 바로 이거예요.'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진지하게 생각에 빠졌다. 정희 씨는 참 대단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사람이다. 나는 지미와 마주 앉기만 해도 심장이 뛴다. 설레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


“라면 정도는 직접 끓여 먹어도 되는 거 아냐?”

그럼 지미는 어김없이 주먹을 부르는 말을 한다.

“나는 당신이 편한 게 싫은데!”

이쯤 되면 대화가 아니라 전쟁이다. 그리고 이건 하루도 빠지지 않는 우리의 일상 대사다.


지미가 혼자 집에 있는 날이면 퇴근길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차도 내 마음을 아는지 평소엔 잘만 달리던 차가 30km로 기어간다.

‘들어가기 싫다. 또 뭘 시키겠지?’

그래서 나는 혼자 쉬는 날이면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비밀리에 움직인다. 월차도! 휴가도! 심지어 병가까지도! 지미에겐 ‘보안사항’이다.

나는 결코 이상한 여자가 아니다. 우리 사무실만 봐도 그렇다. 주말부부, 월말부부, 분기부부, 연 2회 만나는 부부까지 다 있다. 주말에 집에 오지 말라는 부인의 말에 원룸을 떠나지 못하는 남편! 아예 한 달 넘게 해외여행 간 부인 덕분에 아직도 원룸을 못 벗어나는 남편! 토요일, 일요일을 부부가 함께 보내는 게 서로에게 실례일 것 같아, 주말 하루는 일부러 원룸에서 혼자 보내는 남편! 다 우리 회사에 실존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나는 선을 지키는 여자다. 나는 지미에게 “집에 오지 마”라고 말한 적,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 싸운 날도 밥을 차려준다. 이쯤 되면 나는 지미를 많이 사랑하긴 하나 보다. 나와 지미 사이엔 예쁜 딸이 있다.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우리는 셋이 나란히 매트리스에서 잠들었다. 그러다 딸아이가 자기 방으로 독립을 선언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부부 침대를 다시 들였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다. 나는 지미랑 같이 자는 게 너무 불편했다. 어깨는 눌리고 뒤척이면 팔은 얼굴로 날아오고 숨소리마저 거슬렸다. 그래도 지미가 섭섭해할까 봐 더 크고 더 넓은 킹사이즈 침대를 들였다. 그 침대를 본 친구들은 하나같이 나를 바라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 부부 사이가 애틋하네! 부럽다!”

라고 말하면서도,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언니! 아직도 같이 자?’

나는 그 눈빛들의 의미를 다 안다. 그들도 알고, 나도 안다. 이젠 혼자가 편한 나이라는 걸.


젊었을 땐 서로의 스케줄을 맞추느라 안간힘을 썼다. 1분 1초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쉬는 날이 겹치면 기어코 여행을 갔고, 억지로라도 뭔가를 함께 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젠 그저 지미가 나를 방해하지만 않기를 바란다. 아마 지미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서로의 휴가가 겹치지 않는 것이 어쩌면 진정한 부부애 아닐까? 그러니 올여름, 나는 조용히 내 휴가를 챙길 예정이다. 지미에게도 묻지 않을 것이다.

‘자기야, 휴가 언제야?’

그 한마디가 불러올 온갖 부대비용과 감정 소비를 나는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 않다. 이것이 결혼 16년 차의 지혜고, 내 정신 건강을 지키는 방법이며,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이다.


지미야,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야. 그저 내 휴가만큼은 제발 나만의 것이길 바랄 뿐이지. 사실 있잖아! 네가 집에 없을 땐 라면도 더 맛있고, 드라마도 더 감동적이더라

하지만 또 이상하게 너무 오래 혼자 있으면 얄밉지만 “송송” 하고 부르는 너의 목소리가

살쩍 아주 살쩍 그리워지더라.

하루에 1분 정도만 보고 싶은 사랑! 그저 숨소리로 서로의 생존만 확인해도 충분한 사이!

우리는 서로의 돌연사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동반 자니까. 우린 딱 그 정도면 돼! 살아 있다는 것만 조용히 확인할 수 있다면 그러니 이번 휴가도

나는 나대로 쉴게! 너는 너대로 일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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