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성폭행범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의 당사자가 61년 만에 억울함을 풀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 사건은 1990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라는 영화로 제작됐다. 어느 여름밤, 길에서 낯선 남성에게 강제로 키스를 당한 여성이 본능적으로 그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을 입혔다. 그러나 법정은 피해자인 그녀를 오히려 ‘가해자’로 규정했고, 남성은 순식간에 ‘피해자’가 되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 행위는 정당방위가 아닌 과도한 폭력으로 판단되었고, 그녀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 시절 여성에게 ‘자신의 몸을 지키는 일’은 권리가 아니라 ‘과잉 방어’였다. 영화는 단순한 법정 영화를 넘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끝없이 입증해야 하는 현실을 고발했다. 오히려 피해자가 의심과 비난을 받으며, 마침내 ‘가해자의 자리’에 서야 하는 부조리한 구조를 드러냈다.
영화 개봉으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그 오래된 장면은 다시 뉴스 속 현실로 돌아왔다. 그 순간, 내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밤늦게 귀가하며 골목길을 걸을 때마다 온몸이 긴장했던 나, 버스에서 낯선 남자의 시선을 피해 몸을 틀던 순간들, 그리고 ‘여자는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걱정 어린 충고! 그 모든 기억은, 사실 내게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었다.
61년 만에 정의가 바로잡힌 사건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동시에 묘한 슬픔이 스쳤다. 그녀가 재판장에서 겪었을 모욕과 치욕, 그리고 그 후로 견뎌야 했을 억울한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뒤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세워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다. 부디 그 희망이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 같은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힘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15년 전, 오늘처럼 문을 열기만 해도 습기가 몸을 감싸 숨통을 조이던 한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숨만 쉬어도 등에 땀이 줄줄 흐르고, 아스팔트 위에는 아지랑이가 일렁이며 피어올랐다. 뜨거운 햇빛 아래 세워둔 차 안의 핸들은 손이 닿기 어려울 만큼 달아올라, 차라리 자율주행 기능이 있었으면 싶었다. 그 시절 내 차에는 통풍 시트 같은 호사도 없어, 엉덩이는 눅눅하게 달아오르고 마치 작은 실수를 한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그날, 나와 두나는 김천 현장 미팅을 가는 길이었다. 가는 길에 문득, 지난겨울 눈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공사를 마쳤던 그 현장이 떠올랐다. 뜨거운 차 안 공기에 숨이 턱 막히고,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등이 달아올라 땀이 흘러내렸지만, ‘그때 고생한 얼굴들, 그냥 지나치면 섭섭하지!’ 하는 마음에 인사를 드리기로 했다.
여름 선물은 역시 수박이지 싶었다. 한 통이면 충분했지만, 혹시라도 모자라면 안 한만 못할 것 같아 넉넉히 두 통을 준비했다. 20명은 거뜬히 나눠 먹을 만큼 큼직하고 묵직한 녀석들이었다. 손에 들고만 있어도 시원한 기운이 손끝으로 번져 잠시나마 숨 막히는 더위를 잊게 했다.
수박 두 통을 트렁크에 실었다. 그렇게 우리는 수박 두 통을 싣고, 뜨겁게 달아오른 도로 위로 출발했다. 창밖으로는 강한 햇볕에 지쳐 고개를 떨군 옥수수 포기들이 바람 한 점 없는 들판에 늘어져 있었다. 차 안에서는 에어컨이 쉴 새 없이 바람을 내뿜었지만, 차창 너머의 태양은 오늘 하루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과시하듯 눈부셨다.
나는 평소보다 가벼운 파란색 원피스를 입었다. 조금이라도 덜 덥게 해 보려는 선택이었지만, 바람 한 점 없는 공기 속에서 원피스 자락은 다리에 칭칭 감겨 달라붙었다. 땀방울은 목선을 타고 등을 따라 흘러내렸고, 발은 숨 쉴 틈 없는 하이힐 속에서 점점 더 뜨거워졌다. 옆자리의 두나는 팔이 훤히 드러나는 리넨 블라우스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채 부채질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현장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트렁크를 열어 수박을 꺼내니, 팔이 한쪽으로 기울 만큼 묵직했다. 두나와 나는 한 통씩 나누어 들고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문 앞에 섰다. 잠시, 전화를 할까 말까 망설였다.
“저 지금 수박 들고 갑니다.” 하고 알리는 것도 괜히 요란스러워 그냥 발걸음을 옮겼다.
사무실 앞 공기는 뜨거웠다. 주변은 여전히 자재 더미와 먼지로 가득했고, 뙤약볕 아래 드러난 콘크리트 바닥은 발바닥이 데일만큼 달아올라 있었다.
‘여긴 겨울에도 매서웠는데, 여름은 또 이렇게 가혹하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평소 잘 입지 않던 하늘거리는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시원해 보이려는 선택이었지만, 문 앞에 서자마자 원피스 자락은 땀에 달라붙고, 땀에 번진 얼굴은 화장을 한 건지 안 한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흐트러져 있었다. 두나는 리넨 블라우스를 입고 부채질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공기를 가르듯 튀어나온 한마디가 내 귓가를 날카롭게 후려쳤다.
“어느 유흥업소에서 오셨어요?”
순간, 시간과 공기가 멎었다. 귀가 먹먹해지고, 시야가 흔들리며,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졌다. 팔에 들고 있던 수박의 무게보다 그 한 마디가 훨씬 더 무겁게 가슴을 내려앉혔다. 단숨에 나는 ‘사업가’에서 ‘어디선가 잠깐 들른 여자’로 추락했다.
말은 공기 중에 오래 머물렀다. 웃음 섞인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 묘하게 배어 있는 비아냥과 단정이 내 피부를 파고들었다. 나는 대답 대신 잠시 숨을 골랐다. 땀에 젖은 원피스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고, 손에 든 수박의 무게마저 낯설게 전해졌다.
이 한마디가, 내가 지난겨울 눈 속에서 땀 흘리며 공사 현장을 누볐던 시간도, 오늘 이 뜨거운 날씨에 무거운 수박을 들고 온 마음도 한순간에 지워버렸다. 내 앞에 선 건 ‘나’가 아니라, 그들의 머릿속에서 이미 그려놓은 ‘여자’였다. 옷차림과 외모로 판단해 놓고, 그 안에서 내 존재를 간단히 규정해 버리는 그 시선.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싸늘하게 식었다. 화가 난다기보다, 모멸감이 먼저 목덜미를 타고 올랐다. 발끝부터 심장이 있는 자리까지, 천천히 차가운 기운이 차오르는 듯했다. 웃고 싶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그들의 시선에서 나를 떼어내기 위한 방패 같은 것이었다.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회의 자리에서 남자 직원이 늦으면 ‘차가 막혔나 보네’로 넘어가지만, 내가 늦으면 ‘아침에 화장하느라 늦었지?’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현장미팅을 나가면 계약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남자친구는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밤에는 뭘 하는지’부터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런 건 다 친근감 표현이야’라는 시선이 나를 압박했다. 웃어넘기라는 무언의 신호. 그래서 웃는 척은 했지만, 속은 늘 서늘했다. 그 웃음은 즐거움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가면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가면 뒤에서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단단해지고 있었다.
지난주, 61년 만에 억울함이 풀린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 뉴스를 보며, 김천에서 들었던 그 한 마디가 겹쳐 떠올랐다. 마치 영화 속 대사처럼, “그녀는 이미 유죄였다. 조선시대엔 정조를 지키면 열녀비를 세웠지만, 지금의 법 앞에서 정조를 지키려 한 그녀는 오히려 유죄가 되었다.”
그 사건 속 피해 여성도, 그날의 나 역시,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옷차림’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미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결론이 내려져 있었다. 그 틀 안에서 우리는 말하기도 전에 판단당했고, 존재보다 이미지가 먼저 재단됐다.
그 틀 안에서는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어떤 자격과 성취를 가졌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 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냥 ‘여자니까’, ‘그 옷을 입었으니까’ 이미 결론이 나 있다.
나는 더 이상 이런 순간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지 않으려 한다. 사소한 농담이라도, 잘못된 시선이라면, “그건 아닌데요” 하고 말할 용기를 내고 싶다. 왜곡된 시선이 만들어낸 기억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 누군가의 기준에 맞춰 나를 설명하거나 정당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지켜내고 싶다.
언젠가 우리 사회가 누군가를 외모나 옷차림, 성별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살아온 길 그 자체로 바라보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날은 여자라는 이유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도,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의심받거나 책임을 떠안는 일도 없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이 선을 지키기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선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너와 나 모두를 키지는 길이니까. 모두가 선을 지키며 살아가는 날이 언젠가 오리라 믿는다. 그날이 오면, 나는 오늘의 이 기억을 꺼내어 웃으며 말할 것이다.
“그땐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리고 앞으로도 아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