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더

by 이송

하늘엔 어린아이가 띄워 놓은 솜사탕 같은 흰 구름이 흘렀다. 태양은 그 뒤로 반쯤 가려져, 햇살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차창 밖 여름의 빛은 아스팔트를 잔잔히 반짝이게 했다. 길 위에는 짧은 그림자가 우리 차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은 고속도로를 권했지만, 나는 이 설렘을 조금만 더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두나에게 국도로 가자고 했다.


양옆으로는 눈부신 초록의 논과 밭이 길게 펼쳐졌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벼 이삭은 파도처럼 일렁였고, 드문드문 보이는 작은 마을 간판이 풍경에 느린 박자를 더했다. 차 안에는 에어컨 바람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고, 그와는 다른 여름 바람이 창밖의 초록을 살짝 흔들고 있었다. 그 바람 사이로, 운전석에는 두나가, 조수석에는 내가 앉아 있었다. 뒷좌석에는 조카와 하나뿐인 딸, 지원이가 나란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나가 틀어놓은 세븐틴 노래가 흘러나오자, 내 마음도 노래 속 청춘처럼 가벼워졌다. 경쾌한 리듬과 반짝이는 목소리가 차 안 공기를 흔들었다. 가사 한 소절, 한 소절이 오래 전의 나를 불러내는 듯했고, 잊고 있던 열여덟 살의 설렘이 발끝에서부터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설렘에 어깨가 저절로 박자를 탔고, 창밖의 풍경마저 노래에 맞춰 춤추는 듯 보였다.

앞유리를 타고 들어온 햇살은 대시보드 위에 포근히 내려앉았고, 조카는 졸린 듯 고개를 기울인 채 창밖의 초록을 눈길로 따라갔다. 차창 밖 풍경이 한 장면씩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는 그 설레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 싶지 않았다. 마치 여행의 끝을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햇살에 데워진 풀냄새를 깊이 들이마시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나네 가족과 함께한 경주에서의 1박 2일 여름휴가는 짧았지만 진했다. 아침에 마신 별다방 커피의 쌉싸래한 향이 아직 입안에 은근히 남아 있었고, 연꽃이 절정을 맞은 8월의 풍경은 휴대폰 속에서 막 피어난 듯 환히 숨 쉬고 있었다. 그 화면을 열어보면, 꽃잎 위로 내려앉은 햇살과 물결의 반짝임까지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남편은 휴가 중 갑작스레 잡힌 회사 업무로, 새벽 다섯 시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경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떠났다. 그렇게 부산에서 출발할 때 타고 온 차의 운전대는, 내가 아닌 두나의 손에 맡겨졌다. 전편에서도 말했듯, 2년째 이어지는 원인 모를 어지럼증은 운전대를 내게서 멀어지게 만들었고, 나는 그렇게 여름 아침의 이른 햇살 속을 달리는 승객이 되었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탈 때보다 지금이 훨씬 편했다. 남편과 함께 달릴 땐 이유 모를 긴장감이 공기 속에 번지고 대화마저 발끝을 살피듯 조심스러워진다. 하지만 오늘의 차 안은 달랐다. 국도를 따라 미끄러지듯 스쳐 가는 여름의 짙은 초록, 차 안에 번지는 부드러운 웃음, 창문 틈새로 스며드는 바람의 결이 어우러져, 집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여행이 남긴 향기처럼 천천히, 그리고 오래도록 마음속에 머물렀다.

그 여운 속에서 내 마음은 마치 기차역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 같았다. 이미 출발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지만,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만 더 이 자리에 머물고 싶은데, 시계는 무심하게 초침을 밀어내고 플랫폼 위의 바람은 자꾸만 등을 떠밀었다.

아무 말 없이 잡은 손끝이 땀에 젖었지만, 놓고 싶지 않았다. 이 차 안에서 흐르는 시간마저, 마치 주머니 속에 고이 넣어두고 싶었다.


그 순간, 마음 한편에서 잔잔하게 번지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가 붙잡고 싶어도 결국은 흘러가 버리는 것들, 언젠가는 부모님과도, 그리고 자식과도 각자의 길을 가야 하는 시간이 찾아온다는 사실이었다. 그날이 오면 오늘처럼, 웃는 얼굴 뒤에 발걸음을 늦추고 마음 한쪽을 붙잡고 있겠지.


어릴 땐 그날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몰랐다. 마치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서만 일어날 법한 이야기처럼 내게는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부모님이 계신 집을 나와 처음 혼자 살던 날, 낯선 방의 공기는 숨죽인 듯 고요했지만, 그 고요 속에는 묘한 빈자리가 숨어 있었다. 짐을 풀어놓고도 마음 한 켠이 허전해 창문을 열었더니, 바깥에서 스며든 바람은 익숙한 냄새가 아니었다. 마치 계절이 바뀌어 버린 듯, 차갑고 낯선 공기가 내 삶의 경계선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결혼 후 친정집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차 뒷좌석엔 짐이 빽빽하게 실려 있었지만 정작 마음속은 텅 비어 있었다. 창밖 풍경은 여전히 같은 빌딩과 상가, 같은 가로수길이었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어색하게만 보였다. 햇빛은 창을 타고 들어와 무심히 무릎 위로 쏟아졌고, 나는 그 빛 속에서 문득 깨달았다. 세상에서 가장 익숙했던 집이 이제는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이를 처음 어린이집에 맡기고 돌아서던 날, 손끝에 남아 있던 작은 체온이 서서히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나는 괜히 발걸음을 늦추고 몇 번을 뒤돌아 보았다.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이 사실 ‘작은 이별’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작은 이별들이 쌓이고 쌓여, 언젠가 큰 이별을 받아들일 연습이 되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딸이 나를 떠나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겠지. 사람들은 말한다, 그날이 오면 웃으며 “잘 가”라고 해 주라고. 하지만 나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마 웃음 대신 울음을 삼키려다 목이 메이고, 작별 인사 대신 “조심히 가”라는 말만 겨우 할 것이다. 손을 흔들어야 하는 순간, 손끝이 떨려 그마저도 매끄럽게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게 미련이라 하지만, 나는 안다. 그것은 사랑이란 걸.


그리고 또 하나, 마음 깊숙이 조심스럽게 건드리는 이별이 있다.

내 곁에서 꼬리를 흔들며 나만을 바라보는 반려견 ‘가지’.

올해 세 살이 된 가지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거니까, 어쩌면 내가 가지를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가지가 먼저 나를 떠나보낼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온다면, 떠나는 나는 괜찮을지 몰라도 남겨진 가지는 과연 견딜 수 있을까. 말 못 하는 아이지만, 그 눈빛과 온기를 더 이상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미리 준비할 수도, 여러 번 겪어 익숙해질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작은 생명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더 깊이 새기며 하루를 산다.

언젠가 올 이별을 막을 수 없다면,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사랑으로 채우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우리는 이렇게 수많은 ‘조금만 더’를 남기며 살아간다. 조금만 더 얘기하고 싶고, 조금만 더 곁에 있고 싶고, 조금만 더 웃게 하고 싶다. 그 마음은 미련이 아니라, 그만큼 누군가를 깊이 사랑했다는 증거다.

이별이 슬픈 건 끝나서가 아니라, 그 시간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아쉬움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조금만 더.’

이 마음은 요즘으로 치면 질척거림으로 보일 수도 있고 집착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미련이 있기에 우리는 추억을 곱씹으며 산다.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던 사람, 조금이라도 더 함께 하고 싶었던 순간, 조금이라도 더 살아주길 바랐던 시간.

난 미련하게 질척거리는 사람이 되어도 좋으니 미련이 충만한 사랑을 하고 싶다. 비록 난 선을 지키는 여자이지만 선을 조금 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랑들이 조금만 더 곁에 머물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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