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삐’ 도어록 열리는 소리가 울렸다.
시험을 치르고 돌아온 지원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책가방을 툭 내려놓고, 신발도 제대로 벗지 않은 채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평소 같으면 먼저 냉장고 문을 열어 간식을 꺼내거나 방으로 들어가 음악을 틀었을 텐데, 그날은 달랐다. 얼굴에는 피곤함과 망설임이 동시에 묻어 있었고, 걸음은 유난히 무거워 보였다.
나는 저녁 준비로 분주하게 냄비를 저으며 이것저것 챙기고 있었다. 그런 나를 붙잡더니, 식탁에 앉아 보라며 시험지를 꺼내놓았다. 종이 위에는 빨간 펜 자국이 군데군데 선명했다. 지원이는 그것을 손가락으로 천천히 짚더니, 잠시 머뭇거리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엄마, 나 학원 보내죠.”
순간 내가 들고 있던 국자가 허공에서 멈췄다. 늘 “엄마, 내가 혼자 할 수 있어”라며 스스로 해보겠다고 당당히 말하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 잠시 공부방을 다닌 것을 제외하면, 중학생이 된 이후 지원이는 오직 온라인 강의와 혼자 하는 공부로 버텨왔다. 한 달 20만 원이 채 안 되는 비용으로도 꿋꿋이 버티는 모습이 기특해, 속으로 박수를 치던 적도 많았다. 아이의 책상 위에는 스스로 정리한 플래너와 빽빽한 문제집 낙서가 늘 쌓여 있었고, 나는 그 성실함을 믿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날을 계기로 아이의 말은 달라졌다. 시험을 치른 직후에는 영어가 어렵다며 학원을 원했고, 시간이 지나 기말고사가 가까워지자 수학도 보내달라고 했다. 방학 무렵이 되자 국어, 특히 비문학은 혼자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다며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책을 사서 풀어보려 했지만 몇 장 넘기지 못한 채 책은 먼지만 쌓여 갔고, 아이는 좌절한 눈빛으로 내 앞에 서 있었다. 그 눈빛은 도움을 청하면서도 자존심이 상한 듯 흔들리고 있었고, 나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고백하듯 말했다.
“엄마, 국어학원도 가야겠어.”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과학까지 말하면 어쩌지? 과연 이 모든 학원비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날 밤, 컴퓨터 화면을 켜니 학원 광고들이 눈을 가득 메웠다. “수학 1등급 보장”, “영어 성적 30일 완성”, “국어 비문학 전문관.” 평소라면 흘려보냈을 문구들이 이상하게도 그날은 마음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제는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화면 속 환하게 웃는 합격생들의 얼굴 뒤에는 부모들이 치러냈을 계산서가 어른거렸다.
머릿속은 곧 숫자로 가득 찼다. 영어 35만 원, 수학 40만 원, 국어까지 합치면 한 달에 백만 원이 훌쩍 넘는다. 아직은 중학생인데, 고등학생이 되면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뻔하다. 대학까지 꼬박 3년을 버티려면, 통장은 숨 쉴 틈이 없다. ‘이 돈을 학원에 쓰는 게 맞을까? 아니면 모아뒀다가 대학 등록금이나 사회에 나갈 때 목돈으로 주는 게 더 현명할까?’ 계산기를 두드려 보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가끔 통장을 들여다보면 허탈한 웃음이 터진다. 숫자는 정직해서 늘 빠져나간 만큼의 빈칸만 남긴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만 붙잡고 살 수도 없다. 부모는 언제나 아이의 웃음과 가정의 형편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살림과 아이의 앞날을 동시에 지켜내는 일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날마다 절감한다.
사교육비는 끝없는 블랙홀 같다. 매달 꼬박꼬박 빨려 들어가지만, 그만큼 눈에 띄는 성과가 바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부모라는 이름 앞에는 늘 ‘먹이고, 입히고, 공부까지 시켜야 한다’는 책임이 따라붙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한지, 정말 정답인지 알 수 없다.
나는 마음속에서 같은 질문을 되뇌며 한참을 망설였다. 과연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 걸까, 멈출 수 있는 시점은 있는 걸까. 아이가 건네는 신호를 모른 척 외면하는 게 옳은 걸까, 아니면 기꺼이 손을 잡아주는 게 맞는 걸까. 깊은 한숨 끝에 결국 입술이 열렸다.
“그래, 학원을 같이 알아보자.”
억지로 보내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스스로 필요를 느끼며 도움을 청했으니 “하지 마”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은 안도했지만 또 다른 구석은 씁쓸하게 저려왔다. 아이의 배움은 꽃과도 같다. 피어날 때 제때 물을 주지 않으면 꽃망울은 힘을 잃고 시들 수도 있다. 반대로 시기를 맞춰 햇볕과 물을 건네면, 짧은 순간에도 눈부신 꽃으로 터져 나온다. 지금 내 앞에 선 아이의 눈빛은, 분명 스스로 피어나고 싶어 몸부림치는 꽃망울 같았다. 그 순간을 놓치면 영영 시들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며칠 전 엄마들 모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갔다. 처음에는 영어와 수학 정도로 시작하던 아이들이 시간이 갈수록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과목을 하나씩 늘려간다고 했다. 국어와 과학은 기본이 되었고, 이제는 심지어 도덕까지 학원을 다니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모두가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불안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이게 맞는 걸까? 무엇이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걸까? 그리고 부모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물음을 마음에서 떼어낼 수 없었다.
지원이의 앞길에는 이제 국어·영어·수학·과학이라는 짐들이 차곡차곡 더해지고 있다. 언젠가 그 무게가 과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바로 그 시절 아이가 스스로 선택한 배낭이었음을 나는 기억하려 한다. 부모의 선택은 늘 불완전하고 계산은 매번 엇갈린다. 그러나 분명한 건 오늘 내가 내린 결정이 아이의 마음에 작은 온기를 남겼다는 사실이다.
나는 극성엄마가 아니다. 아이가 원하는 건 진로 탐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경험하게 해 주었다. 학교 관현악단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고급은 아니어도 바이올린을 사주고 학원에 보내 주었다. 중학생이 된 어느 날에는 축구가 하고 싶다 해서 풋살화를 사준 적도 있다. 심지어 연기학원까지, 그 눈빛이 반짝일 때는 망설이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에게 호기심이란 사치처럼 여겨질 때가 많다. 핸드폰과 학원 사이에서 하루를 보내는 시대에, 스스로 “이건 해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순간은 오히려 감사한 선물 같았다. 결과가 크든 작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아이가 자기 안의 작은 불빛을 발견하고, 그것을 잠시라도 꺼뜨리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주는 일이었다.
나는 오늘도 저울질한다. 아이의 마음이 뜨거울 때 주저하지 않고 힘을 보태는 게 맞을까, 아니면 아이의 마음을 식히고 내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게 더 현명할까. 정답은 없다. 부모의 삶은 완벽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문제가 나올 때마다 최선을 다해 풀어보려는 노력의 연속일 뿐이다.
사교육! 내가 힘들고 지치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원하고 필요를 느낀다면 부모는 그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아직은 부모의 책임이자, 아이가 배움 앞에서 주저앉지 않도록 지켜주는 마지막 울타리다. 언젠가 스스로 설 수 있는 날이 오기 전까지, 부모가 함께 짊어져야 할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