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가라 요양원

by 이송

쏭! 쏭!

나를 부르는 높고 가는 남편의 얄미운 목소리가 오늘은 들리지 않는다. 이 적막함은 뭐지? 아, 맞다. 남편은 3박 5일 해외 골프여행을 갔다.


예전에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항상 집에서 애타게 나를 부르는 이유는 내가 한시도 편히 쉬는 걸 보기 싫어서라고. 하... 나이도 나보다 어린 너에게 이런 말을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지만 나는 농담일거야... 농담이었을거야...를 되새기며 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했다.


그리고 전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고소공포증이 심해 해외여행은 남편 혼자 다녀오라고 주저 없이 보낸다. 그 덕분에 남편은 혼자 비행기를 타고 떠났고 나는 모처럼 지미(남편의 영어이름) 없는 주말은 너무 평온한 휴식이다.


쿵! 쿵!

뭐지? 층간소음인가? 아니다. 내 몸에서 나는 소리다. 일찍 잠자리에 누운 나는 갑자기 몸이 이상함을 느꼈다. 심장 뛰는 소리가 왜 머릿속에서 들리는지 모르겠다.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다시 왼쪽으로 돌려보기도 하고 베개에 머리를 더 깊숙이 파묻어도 소리는 더 크게 들린다.


시간이 지나도 머리에서 들리는 심장 소리는 좀처럼 줄지 않고 뇌는 점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줄어들고 있는 기분이다. 뇌에 바람이 20프로쯤 빠져나가고 나니 내 머리는 잠시 숨 고르기를 하듯 심장 뛰는 소리가 멈추고 바람 빠지는 것도 멈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회복이 되지 않았고 온몸에 힘이 없다. 그리고 어지러움이 계속 됐다.


지미를 보낸 즐거움도 잠시, 이젠 빨리 돌아와 내 곁을 지켜주길 바라기 시작했다. 혹시 그가 없을 때 ‘내가 더 아파지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난 링거 투혼을 발휘하며 3일을 버티고 겨우 잠들었다.

지미의 ‘부산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너무 반가워 버선발로 공항까지 달려가고 싶었다. 마치 썸 탈 때 초인적인 체력으로 연애했던 것처럼 운전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어지럼증이 심해 누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1시간 정도가 흐르자, 지미를 기다리는 시간은 재미없는 수학 시간만큼 지루했고 나는 빨리 쉬는 시간 종이 울리기만을 기다리는 학생이 되었다.


병원을 가봐도 한의원을 가봐도 내 몸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난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그렇게 병마와 시름하고 있는 어느 날. 지미가 나를 부르며 말했다.

“자기야~~ 아파도 운동을 살살하는 게 좋을 거 같아. 아파트 주변이라도 산책해 보자.”


나는 혼자 다니기 힘들 만큼 어지러웠다. 특별한 병명이 없어서 지미의 말에 따라 체력이라도 끌어올리기로 했다. 그래서 남편이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했다.


오늘도 아파트 주변을 걷는데 10분쯤을 걷자, 어김없이 어지러움이 온다.

“지미, 나 좀 잡아줘. 또 어지럽네. 휴...”

그러고는 남편의 팔짱을 어색하게 잡았다.


평소에 부부가 팔짱을 끼면 재혼한 줄 알거나 불륜으로 본다며 서로 팔짱 끼기를 꺼려했다. 그래서 아프지만 애틋해 보이는 팔짱은 어색하기만 했다. 그런데 팔짱을 끼자마자 지미가 판도라의 입을 열었다.

“이래 아프면 고마 요양원이나 드가라!”

“???????????????????????”

요양원? 하... 그래 니가 지미럴의 지미였지... 내가 잊고 있었네. 니가 지미럴이란 걸! 대단한 간호를 한 거도 아니고 그저 어지러워서 팔짱 좀 끼며 기댔더니 뭐? 요양원? 요양원!!!

하지만 난 환자였고 화낼 힘도 없어 이 분노가 표출되지 않고 속에서 부글거리고 있었다. 진짜 어지럽지만 않았다면 이단 옆차기로 이 자식을 어지럽게 해 줄 텐데. 난 또 선을 지키며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소파에 웅크리고 누워 중얼거렸다.


“시바견아(욕 아님 개 이름임)... 니가 가라 요양원...”


하와이에 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장동건이 나와 같은 기분이었겠지? 그러니까 니가 가라 하와이를 외치며 차라리 부산 골목에서 죽어갔겠지?


나의 로맨스는 작살났다. 아니 사실 작살난 로맨스도 없었지. 이런 지미... 넌 아프기만 해 봐. 두고두고 괴롭히다가 하와이 같은 외딴섬 요양원에 보내버릴 테니까.


그렇게 소파에 누워 지미럴 요양원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내 카톡 메시지 소리인 목탁소리가 연달아 울린다. 나는 큰일이라도 일어난 줄 알고 재빨리 메시지를 확인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는 동생이었다.

그녀는 ‘언니! 형부랑 다정하네요! 부러워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우리가 팔짱 끼고 있는 뒷모습을 찍어 사진으로 보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형부는 어찌 저래 자상하신지 언니 아프다고 부축하며 산책까지 같이 나오고 부럽네염. 우리 남편한테도 좀 배우라고 해야겠어요.’


아냐.. 아냐.. 세상 다 배워야 하지만 지미는 배워선 안돼. 그건 팔짱이 아니야. 지미가 날 요양원 보내기 전 의식 같은 거였어. 내가 정말 동네 창피해서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내 속병만 늘어 더 어지럽기만 하다.


나는 2024년 3월 30일 이후 아직까지 어지럼증으로 힘든 순간순간을 보내며 지내고 있다. 하지만 글은 써야 한다는 일념과 ‘내 삶의 짐이지’라서 지미인 이 인간의 실체를 꼭 알려야겠다는 시민 정신으로 이 글을 쓴다. 난 이미 지미의 목숨을 끊을 수도 있었지만 선을 지킨 대단한 여자. 아프고 나니 내 상황을 가장 이해 못 하는 게 지미라는 사실에 계엄령을 발동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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