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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주혜 May 16. 2023

불편한 동거

팔자려니 생각하면 편하다옹~

꾸미와 함께 보낸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 서로 '내외'하고 있었다는 것을. 꾸미는 쇼파 위에 펼쳐놓은 담요 위에 살포시 앉아 다소곳하게 졸고, 내가 식탁에서 밥을 먹거나 글을 쓰고 있을 때면 조용히 다가와 하염없이 맑은 눈으로 집사를 올려다보는 모습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 얌전하고도 예의 바른(?) 고양이가 다 있을까~ 싶었다. 고양이라는 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고요한 애정이 흘러넘치는 그런 삶이로구나~ 하는 감상에 젖게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유효기간 한 달짜리의 감상이었다. 아직 우린 서로에게 편한 사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꾸미는 정확히, 가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곳을 골라서 집을 누비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할 만큼이나! 허공을 서성이는 발끝은 집사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신호였으나, 꾸미는 마음이 가는 대로 발걸음을 옮겼다. 눈치껏 무시한다는 게 이런 걸까.





고양이들은 물을 잘 먹지 않아서 신장병의 위험이 높다고 하는데, 꾸미는 물을 참 좋아라 하고 잘 먹어 기특하였다. 그릇에 방금 막 따라놓은 물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달려와 꿀꺽꿀꺽 잘도 마신다. 아직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먹기 전 물그릇에 앞발을 담가서 훠이~훠이~ 휘저은 다음, 발에 묻어있는 물을 핥고 물맛을 좀 본다음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다. 그래야 더 맛있나?


물에 대한 호기심이 지대한 것인지, 화장실에 들어가서 욕조 벽에 묻어있는 물방울들을 먹다가 발각되기도 하고, 싱크대 주변을 순찰하며 물방울들을 찾아 서성인다. 그러다 꾸미는 발견하게 되었나 보다. 깊고 오목한 컵이라고 불리우는 그릇에는 항상 집사가 마시던 물이 찰랑찰랑하게 담겨있다는 걸.



마시다 남겨둔 물을 호로록 마셨던 나는, 아마도 꾸미가 발도 헹구고, 얼굴을 깊숙이 박고 낼름낼름 마셨던 물을 함께 마셨다는 100%의 확신이 들었다. 꾸미는 물이 담겨있는 컵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꾸미 발은 정말 깨끗한가보다. 발을 담근 물인줄 전혀 몰랐다^^


컵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심을 알고 집사인 나는 빨대를 꽂아서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설마 꾸미가 빨대를 입에 앙~ 물고 입을 오므려서 쪽쪽 빨아서 먹는 건 불가능할 테니, 안심하였다. 그치만 꾸미는 빨대를 씹는 용도로 정했는지 잘근잘근 씹어대었다. 빨대를 쓸 수 없었다. 점차 집에서 무언가를 마시는 일이 상당히 불편해졌다. 나는 그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촉감이 맘에 든다냥~ 앙앙!!잘근잘근




밥을 먹을 때 옆에서 얌전히 기다려주던 꾸미는 이제 없다. 식탁 위 반찬 옆에서 코를 킁킁거리며 이것은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심도 있게 고심하는 듯하다. 그 시작은 족발이었다. 고양이는 사람들이 먹는 음식에 관심이 없고, 먹지 않는다고 하여 그렇게 믿었건만, 꾸미는 족발로 돌진하여 마구마구 핥기 시작했었다. 고양이의 무아지경을 목격한 순간이었다. 꾸미에게 식탁 위는 좋은 기억으로 각인되었다.

고양이 앞의 붕어(빵)



나는 점차 밥을 먹을 때 반찬을 손으로 가리게 되었고, 머리를 들이미는 꾸미의 얼굴을 밀어내어야 했으며 내 밥도 먹어야 하고... 정말로 정신없는 식사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 저녁 메뉴는 마라탕이었다. 마라향을 추가로 했기에 제법 매운맛인 마라탕에 설마 꾸미가 관심을 보일까 싶어서 경계를 풀고 있었다. 역시나 호기심이 발동한 꾸미는 식탁으로 올라와 코를 킁킁거리며 마라탕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냄새를 맡으면 도망갈 줄 알았건만... 꾸미의 비호감 표정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 눈치챘어야 했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꾸미는 마라탕 속으로 얼굴을 겁도없이 들이밀었다. 작고 앙증맞은 턱은 마라탕의 주황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매운맛 본격 시작 10초전, 멍한 그의 눈빛

어디서도 마라탕을 먹은 고양이를 본 적은 없는데, 도대체 왜 이 매운 것을 먹어보고 싶었을까. 단순한 호기심이었을까, 아니면 먹을만할 것 같다는 판단이었을까? 꾸미는 이 매운 호기심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왔다 왔어, 매운맛 왔다 왔어
혀를 닦아보지만, 소용없는 일




우당탕탕한 저녁시간을 보내면서, 이 불편한 동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귀여운데 불편하고, 귀여운데 우당탕탕하고, 귀여운데 애정 듬뿍한 이 생활은 얻는 것과 잃는 것의 명확함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분명히 꾸미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삶은 달라졌다. 감수해야 할 불편함이 넘치는 만큼, 홀로 있었다면 집에서 이렇게 배를 잡고 웃을 일도, 따듯하고 폭신폭신한 꾸미의 배와 턱을 쓰다듬어 볼 일도, 나날이 발전해 가는 사냥감 연기 또한 겪지 못했을 일이니 말이다.


살랑거리는 녀석의 몸짓, 곁에 머무르는 것으로 표현하는 고양이의 애정, 온몸으로 들려주는 사랑과 신뢰라는 언어의 가치는 불편한 일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감수해야 할 달콤하고도 귀여운 불편한 일상이다.

팔자려니 생각하면 괜찮을거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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