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하나로 정체성이 정해지는 시대
처음엔 그냥 속이 안 좋았을 뿐이에요.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소화 잘 되는 음식’을 검색했죠.
그런데 그날 이후, 제 피드는
유산균, 장청소, 식이섬유, 만성 변비 테스트로 도배됐습니다.
알고리즘은
‘관심 있음 = 인생의 주제’라고 믿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제 장은 꽤 유명한 셀럽입니다.
그리고 또 하루는,
그냥 궁금해서 비키니 화보를 클릭했어요.
진짜 딱 한 번이었는데 말이죠-!!
그날 이후,
피드는 노출 많은 영상과 수영복 화보로 가득 찼습니다.
나는 그냥 호기심에 손가락을 뻗었을 뿐인데,
알고리즘은 나를 졸지에 외설 콘텐츠 애호가로 낙인찍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여름, 브이로그, 운동, 비치웨어가
제 일상처럼 화면을 점령했죠.
‘당신, 이런 거 좋아하시잖아요?’
확신에 찬 표정으로 유튜X가 속삭이듯 다가왔습니다.
가끔은 조금 소름이 돋을 때도 있습니다.
검색한 적도 없는데,
마음속으로만 ‘사고 싶다’고 생각한 물건이
정확히 광고로 떠오를 때요.
진짜 누가 제 머릿속을 들여다본 건 아닐까 싶은 순간들.
그럴 때면
“나를 내가 아는 것보다, 이 친구(알고리즘)가 더 잘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두 번 흘끗 본 영상,
한 번 눌러본 썸네일이
제 취향을 정의해 버리거든요.
저는 그냥 눌렀을 뿐인데,
플랫폼은 아주 단정적인 말투로 말합니다.
“이분, 이런 거 좋아하시네요.”
이쯤 되면 근묵자흑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먹 옆에 있으면 까매진다지만,
요즘은 영상 옆에 오래 있으면
그 주제가 곧 내가 되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고마운 순간도 있어요.
힘든 날엔
명상이나 감정일기 쓰는 영상이
저를 조용히 다독여줄 때도 있으니까요.
그럴 때면 또
“얘가 나 좀 아네…”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하죠.
그래서 요즘은
무엇을 보느냐보다,
무엇을 오래 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해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은
비키니 화보 대신
‘혼밥 브이로그’를 클릭했습니다.
그냥 배가 고파서요.
그럼 또 내일은
혼밥계 갓생러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죠.
세상이 나를 정의하는 방식이 클릭 한 번이라면,
나는 오늘도 조심스럽게 나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