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칭찬을 두려워합니다.

by 천재손금

요즘 자주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가 제게 보인 태도와 반응이 자꾸만 생각납니다.

그는 제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모범적인 인간형입니다.
일에 대한 책임감, 사람에 대한 예의, 작은 일에도 성실한 태도.
주변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고 좋아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함께 일해보면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일이 꼬이거나 긴급한 상황에서도 감정의 진폭이 크지 않고,
겉으로는 늘 조용하고 단단해 보입니다.

그런 그가 어떤 평가를 들을 때마다 무심하게 웃으며 넘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대단하세요.”
“정말 덕분에 잘 마무리됐어요.”
“늘 배웁니다, 진심으로요.”

누가 들어도 고마움과 존경이 담긴 말들인데,
그는 곧바로 고개를 젓습니다.
“아유, 아닙니다. 운이 좋았던 거죠.”
“제가 뭐 했다고요. 그냥 하던 일인데요.”

그의 겸손은 공손함을 넘어서, 마치 칭찬을 부정하는 방식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진짜 겸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조금 더 오래 지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누군가의 좋은 말에는 쉽게 무뎌지면서도,
부정적인 말에는 오래도록 마음을 빼앗깁니다.
가벼운 농담처럼 던진 조언도,
다른 사람 입에서 흘러나온 짧은 평가도
그의 말수를 줄이고, 눈빛을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누가 봐도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그는 그런 말들을 가볍게 넘기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왜일까요.
왜 칭찬은 빠르게 흘려보내고,
비난은 그렇게 오래 머물게 되는 걸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는 그 사람 한 명의 태도만은 아닙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그런 분들이 꽤 많습니다.
아니, 우리 모두가 그렇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겁니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진심 어린 칭찬에는
“아유, 그냥요”라며 얼버무리고 선을 긋습니다.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스로 겸손을 연기하듯 불편한 웃음을 짓습니다.

마치 ‘칭찬을 받는 순간’이 어딘가 위험하고
부담스러운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겸손하려는 마음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누군가를 칭찬하는 일이 얼마나 드물고,
그 말에 진심이 담겨 있을 확률이 얼마나 낮은 지를.
우리는 ‘진짜 잘했어’라는 말보다
‘잘하긴 했는데’라는 말에 더 익숙해져 있습니다.

게다가 이 사회는 누군가가 조금만 잘해도
금세 ‘더 잘하라’는 무언의 압박을 던집니다.
어깨를 펴면 거만하다 하고,
감사 인사를 받으면 다음엔 더 큰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는 기대가 따라옵니다.

칭찬은 격려가 아니라,
새로운 기준의 시작점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방어하게 됩니다.
고개를 숙이고, 몸을 낮추고,
"아니에요, 별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작게 만듭니다.

그를 지켜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반응은 그만의 성격이나 유별난 예민함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저 역시 거기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칭찬을 들으면 얼른 다른 말로 바꾸고,
좋은 평가는 인사치레쯤으로 여기며 넘깁니다.
반면, 부정적인 말은 며칠이고 따라다닙니다.

그 말을 꺼낸 사람의 의도를 되짚고,
그 말에 맞는 행동을 찾아 스스로를 다듬으려 애씁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칭찬은 흘려보내고,
비난은 품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어갑니다.

스스로를 다독이지 못한 채,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과
겸손해야 한다는 강박 사이에서
조용히 자신을 깎아내며 하루를 보냅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에게조차 관대하지 못한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타인의 한마디에 쉽게 흔들리고,
상처엔 오래 머물며,
따뜻한 말엔 미심쩍은 눈빛을 보냅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누군가의 칭찬 앞에서는 머쓱해지고,
조금의 비난 앞에서는 오랫동안 주눅이 드는 현실.
분명 잘하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 누구도 스스로를 잘하고 있다고 말하지 못합니다.

그런 세상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괜히 마음에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