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구룡포 문화답사기(feat. 공포체험)

D+17

by 천재손금
이너피스(inner peace)를 찾아, 달리다.

-완전한 혼자됨을 위한 키워드-
체력, 메타인지, 비교하지 않기, 다름의 인정, 슬럼프 극복, 거짓말하지 않기, 나 자신 관조하기, 재빠른 조정, 불굴의 의지, 나이 듦의 미학, 귀신 안 무서워하기


오늘 달리며 생각한 것은,


‘17화는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까?’였습니다.


선친 산소를 뵈러 경북 포항 구룡포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타는 KTX는 여전히 빠르고 쾌적했지만, 예전처럼 간식을 파는 트레이가 없다는 사실이 살짝 아쉽더군요. 망사 그물에 담긴 찐계란과 사이다가 떠올랐습니다. 추억의 맛이란 게 이럴 때 살아나나 봅니다.


포항은 역시나 더웠습니다.

대프리카(대구)에 버금가는 ‘포집트’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죠.

가족들과 맛집을 찾아 점심을 먹고, 구룡포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호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산소는 다음 날 이른 아침에 가기로 했기에, 그날 오후는 오롯이 휴식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달리기는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동네, 낯선 밤거리. 하지만 “그래, 해보자!”는 마음으로 호텔 밖으로 나섰습니다.

계획은 단순했습니다.

시내 방향으로 30분 걸어간 후 다시 돌아오는 왕복 1시간 코스. 밤 8시가 넘은 시간이라 거리는 이미 어둑했습니다.


해수욕장을 잠깐 지나쳐 큰길을 따라 빠르게 걸었는데, 주변에 사람이 한 명도 없어 약간은 무섭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 낯선 곰 같은 아저씨가 마을 사람들에겐 더 무서울 수도 있겠다”

는 생각에 혼자 웃었습니다.

구룡포 시내 입구에 도착했을 즈음, 일제강점기 일본인 가옥 거리라는 표지판이 보여 골목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였습니다.

‘까멜리아’ 앞도 지나고, 구석구석 걷다 보니 반가운 장면들이 떠올라 기분이 묘하게 들뜨더군요. 포구도 들르고 대게 가게들도 기웃거리며 30분을 채웠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다른 루트를 택했습니다. 해안선을 따라 걷기로 한 거죠.

온 마을이 조용했고, 무섭기로 유명한 중학생들도 좁은 골목을 피해 줄 정도로 순박했습니다.

바닷바람, 짠내, 파도소리가 어우러지며 몸이 점점 풀렸습니다.

언덕 위 등대에서 쏟아지는 불빛을 보며 반지의 제왕의 ‘싸우론의 눈’이 떠오르기도 했죠.

그러다 해안 도로가 끊기고, 그 옆에 바다 위로 조성된 둘레길이 나타났습니다.

올라가는 계단과 둘레길 시작점

모험심에 이끌려 올라섰지만, 그 선택이 실수였다는 걸 곧 깨달았습니다. 오로지 파도 소리뿐, 사람도, 가로등도 없었습니다.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나는 사람보다 ‘사람이 아닌 존재’를 더 무서워하는 타입이라는 걸요. 한 번 공포가 마음에 들어서자 둘레길은 끝이 없어 보였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불안한 속도로 걷게 됐습니다. 그 무모함이 후회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소리 켜지 마세요!!

간신히 둘레길을 빠져나오고, 처음 지났던 해수욕장을 지나 다시 숙소로 향했습니다.

소리를 들어보세요

마지막 골목에서도 또 한 번, 이유 없는 공포가 엄습했지만—어쨌든 무사히 도전은 마무리됐습니다.

익숙한 곳이 아니기에 더 불안했고, 낯선 밤이기에 더 조심스러웠던 하루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래도 해냈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하루의 도전을 조용히 접습니다.




[달리기 일지 – 2025.7. 2. 20:15~21:19]

몸무게 : 안재서 모름
눈바디 : 내 몸이 이 동네에서 제일 큼
특이사항 : 귀신이 쫓아와도 아직 뛰지 못한다는 걸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