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1
이너피스(inner peace)를 찾아, 달리다.
우리 지역 소방공무원은 1월과 7월에 정기 인사발령이 있습니다.
오늘은 하반기 인사발령 후 첫 근무날이었고,
함께 동고동락하던 팀원 세 명이 바뀌었습니다.
소방관들 사이에는 '근무자가 바뀌면 꼭 불이 난다'는
묘한 미신이 전해 내려옵니다.
실제로 아침에 출근해 보니 전일 근무조도 비슷한 상황이었고,
새벽까지 단독주택 화재를 진압하느라 밤을 새웠다고 합니다.
우리 팀은 나름 고사의 의미로
치킨을 시켜 야식을 함께 먹으며
앞으로의 근무에 대한 열의를 다졌습니다.(저도 그전에 1시간 달리기를 했다는 게 무색할 만큼, 맛있게! 많이!! 먹었죠.ㅠㅠ)
비가 많이 와서인지,
몇 건의 오인 출동을 제외하곤
조용한 밤이 이어졌습니다.
다들 “고사를 잘 지낸 덕이다”라며 웃으며 넘겼죠.
8시 30분에 다음 근무자에게 인수인계를 하는데
7시쯤부터는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렇게 룰루랄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마침 막 아침식사를 시작하려던 참이었는데,
서둘러 장비를 챙기고 출동했습니다.
출근길 도로는 꽤 혼잡했습니다.
우라는 긴장을 감추기 위해 “어제 치킨을 남겨서 그런가 봐”,
“음료수라도 고시레했어야 했는데” 같은 말을 주고받으며
현장 상황을 파악해 갔습니다.
자살 예고 구조출동은 대부분 두 가지입니다.
도착했을 땐 이미 너무 늦었거나,
정작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거나.
하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현장에 도착해 아파트 위를 올려다보니,
정말로 사람이 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요구조자의 몸이 창문과 창문 보호틀 사이에 반쯤 끼어 있었죠.
층고가 3m라고 치면, 지상에서 약 60m 위였습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심정은,
아마 겪어보지 않았다면 상상조차 어려운 공포일 겁니다.
머릿속엔 혹시라도 추락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몸이 순간적으로 굳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구조대에게 공기안전매트를 전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전동팬으로 공기를 주입하고,
요구조자가 떨어졌을 때 정확히 매트 위로 떨어질 수 있도록
위치를 잡는 것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수십 명의 대원들이 가랑비를 맞으며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저는 20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공동현관을 열 수 없어
아무 세대나 인터폰을 눌러 소방 제복을 보여드리며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고,
다행히 한 분이 열어주셔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해당 층에 도착하니
서너 명의 구조대원과 경찰관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강제 개방을 시도하려 했지만,
경찰관이 요구조자와 통화 중이라며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통화 내용이 이상했습니다.
경찰관도 “목소리가 치매 어르신처럼 이상하다”고 말했고,
우리도 뭔가 이상하다는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분명히 지상에서 요구조자가 창문 보호틀에 끼어 있는 것을 확인했고, 또 세대 내 가족은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경찰관의 통화 상대가 요구조자가 아닌 걸 눈치챘고,
문 개방을 지시했습니다.
몇 분 뒤 문이 강제 개방되었고,
우리는 세대 안으로 진입했습니다.
곧장 작은방 창문 쪽으로 달려가
창을 열고 요구조자의 몸을 감싸듯 붙잡고 구조했습니다.
그분의 첫마디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이렇습니다.
비가 와서 창문을 닦으시던 중,
창문이 잠겨 밖에서 열 수 없게 되었고
그 상태로 보호틀 사이에 끼어버린 것입니다.
무려 1시간 가까이 그 위험한 곳에 계셨던 거죠.
그분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며 소리를 지르셨고,
위층 세대에서 그 소리를 듣고 119에 신고해 주셨습니다.
정말 천만다행이었습니다.
※ 대부분의 아파트 샷시창은 밖에서 열 수 없습니다.
얼마 전에도 담배를 피우기 위해 난간에 나가셨다가 고립되신 분이 계셨습니다.
[달리기 일지 – 2025.7. 16. 19:34~20:35]
몸무게 : 는 중요하지 않다!!
눈바디 : 퇴근길에 어떤 여직원과 엘베에서 만났는데 "팀장님 배가 너무 많이 나오셨어요!!"

(한 건물에서 근무하지만 처음 말해본 사이였다. 아마 이 평가가 정확하리라...)
특이사항 : 달리기 해서 740kcal가 빠졌는데 치킨을 5000kcal쯤 먹은 거 같다.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