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오늘 달리며 생각한 것은 ‘없음’이다

D+43

by 천재손금

이너피스(inner peace)를 찾아, 달리다.



오늘은 단 1분도 달리지 못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그 조용한 도전은 오늘로 끝이 났습니다.

근무 교대를 하고 막 업무를 시작하자마자, 안전센터 인근 아파트 주민 한 분께서 민원을 주셨습니다.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아요.”
그 민원 응대에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밥도 채 다 안 내려갔을 때 화재 출동 지령이 울렸습니다.

신고 내용은 이렇습니다.
“15층인데, 책상 위에서 불이 활활 타고 있어요!”
한낮의 더위는 잔인할 정도였고, 방화복을 입자마자 땀이 주르륵 흘렀습니다. 도로를 넘나들며 현장에 도착했고, 큰 불로 번지기 전에 빠르게 진압을 마쳤습니다.
속으로 오늘의 마지막 출동이기를 기도했지만, 기도는 무척 짧았나 봅니다.


복귀해 간단히 장비를 정비하고 넋 놓고 앉아 있는데,
“삐용~ 화재 출동! 카페 천장에서 불이 번지는 중!”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시 방화복을 입고 출발했습니다.

조금 전 쏟은 땀 덕에 방화복 안은 이미 축축했고, 안쪽에서는 퀴퀴한 땀 냄새가 올라왔습니다. 도로에서는 여전히 사이렌을 울리며 신호를 무시해 가며 출동 중인데, 대부분의 운전자분들은 잘 비켜주시지만 몇몇 차량 때문에 아찔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 오전 민원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사이렌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어찌 된 일인지, 그 말이 현장 가는 길에 문득 헛웃음을 유발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방수 작업에 들어갔고, 복식사다리까지 전개해서 큰 피해 없이 불을 잡았습니다.
옷은 땀과 물에 절어 마치 세탁기에서 방금 꺼낸 수건처럼 푹 젖어 있었습니다.
카페 사장님이 감사하다며 에이드를 만들어 주셨는데, 달고 시원하고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습니다.


복귀하자마자 저녁을 먹었습니다.
“이 참에 땀난 김에, 좀 쉬었다가 달리자.”
그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화재 출동! 공사 중인 단독주택 2층에서 연기 분출 중!”
이건 좀 억울합니다. 불이야 언제 날지 모른다고 해도, 하루 세 건은 통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일입니다.
저녁 7시도 안 됐을 시간. 우리는 차 안에서 서로 ‘오늘 누가 금기어를 먼저 말했나’ 폭로하며 잠깐 웃었습니다. 다들 너무 지쳐서라도 웃고 싶었던 거겠죠.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소방차 상단 방수포를 펼치고, 무전으로 작전이 실시간 공유됐습니다.
다행히 내부에 인명은 없었고, 우리는 방수를 개시했지만… 문제는 현관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강제개방을 하려다 말고, 상황실을 통해 비밀번호를 수배했습니다.
빠루로 문을 강제로 열면 종종 손해배상 문제가 생깁니다.
처음엔 고맙다 하시더니 나중엔 고쳐달라고 하시는 분이 많거든요.
운 좋게도 비밀번호를 빨리 알아내 문을 열었고, 나도 물줄기를 피해 내부로 진입했습니다.
머리에 물방울이 후드득 떨어졌지만, 엉뚱하게도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이 현장에서 4시간을 보냈습니다.
복귀하니 밤 10시 30분.
부서장님이 고생했다며 야식을 사주셨습니다.


“남기면 새벽에 또 불난다.”
우리끼리의 미신이지만, 이상하게 잘 맞아 떨어 지기에 남김없이 싹싹 비웠습니다.
치킨무까지 다 먹고 나니, 누군가 물었습니다.
“양념 남은 거는 어쩌죠?”
“에이 설마~ 이 정도는 괜찮지 않겠어요?”
그렇게 한껏 방심한 결과…

새벽 2시 40분, 오토바이와 차량의 큰 교통사고로 다시 출동했습니다.

사실, 야식을 먹고 나서 30분이라도 걷자고 마음먹었었습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현기증까지 느껴져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방화복, 장화, 장비를 다 갖추면 무게만 20kg이 넘습니다.
그걸 입고 이 더위 속에서 세 번의 화재 현장을 뛰었습니다.
아팠던 게 당연했죠.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며, 결국 내 도전이 멈췄다는 사실을
변명처럼 길게 늘어놓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었다고. 그렇게밖에 안 됐다고.

하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
단 한 명도 다치지 않게, 큰 피해 없이
내가 맡은 임무를 다해냈다는 걸 위안 삼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