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겠지'라는 믿음 위에 불을 올리다

불의 왕국 제1화

by 천재손금

불의 왕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왕좌에 앉아 있다는 사실조차, 이 공간에서는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불의 왕국의 대전은 언제나 뜨거웠고, 열은 곧 위계였다.
가장 뜨거운 자가 가장 높은 곳에 있었고,
가장 오래 타오른 자가 가장 많은 말을 가졌다.


그날, 왕의 앞에는 불꽃 장군과 연기 참모,
그리고 무관심을 다루는 자들이 반원으로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미묘한 시선과 미세한 떨림으로 서로의 위치를 계산하고 있었다.
누구의 계략이 선택될지,
누구의 말이 왕의 분노를 잠시라도 누그러뜨릴지.
그 계산이 이 방의 공기를 더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이번엔,”


불꽃 장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타닥이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모여드는 곳이 좋겠습니다.
따로 불러낼 필요도 없고,
도망치게 만들 필요도 없는 곳 말입니다.
이미 안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공간이지요.”


연기 참모가 낮게 웃었다.
웃음은 숨과 함께 흘러나와,
대전의 공기 위에 얇게 깔렸다.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는 일부러 말을 늘이며 말했다.
“확인은 줄어듭니다.
책임은 흐려지고,
‘누군가 하겠지’라는 말이 가장 먼저 튀어나오지요.”


불의 왕은 아직 말하지 않았다.
왕은 늘 마지막에 입을 열었다.
부하들은 그 침묵이 곧 허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중이용업소.”


무관심을 맡은 자가 고개를 들며 덧붙였다.
“사람들은 그곳을 안전하다고 믿습니다.
허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늘 열려 있다는 이유로,
문제가 생기면 바로 도망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비상구?”
연기 참모가 혀를 찼다.
“짐으로 막혀 있거나,
장식물 뒤에 숨겨져 있거나,
아예 잠겨 있겠지요.
그래도 아무도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들어올 때만 생각하니까요.”


불꽃 장군의 웃음이 커졌다.
“불이 날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가는 인간은 없으니까요.
그들은 늘 이렇게 말합니다.


‘설마 오늘이겠어.’”


그제야,
불의 왕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움직임은 크지 않았지만,
대전의 열기가 한층 더 조여 왔다.


“그곳에서,”
왕의 목소리는 낮고 느렸다.
“인간들은 무엇을 가장 믿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누군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지금까지 괜찮았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 말에 대전 안에 웃음이 번졌다.
짧고, 거칠고,
서로를 경계하는 웃음이었다.
불의 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왕의 한마디에 공기가 굳었다.
“그 믿음 위에 불을 올려라.”
불꽃 장군은 고개를 숙였다.
“전하,
불은 작게 시작하겠습니다.
너무 빨리 드러나지 않도록.
사람들이 상황을 이해하기도 전에,
이미 돌아갈 길이 사라지도록.”


연기 참모가 말을 받았다.
“연기는 천천히, 그러나 끈질기게.
처음엔 냄새로,
그다음엔 답답함으로,
마지막엔 공포로.
인간들은 연기를 불보다 늦게 인식합니다.
늘 그렇듯.”


불의 왕은 그 말을 들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기억 속에는
수없이 반복된 장면들이 떠올랐다.
경고음이 울려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
안내 방송이 흘러나와도 자리에 남아 있는 몸들,
그리고
‘조금만 더 있다가’라는 말로
스스로에게 시간을 내주는 선택들.


“기억해라.”


불의 왕이 말했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는다.
인간이 스스로 늦어질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부하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들의 속은 들끓고 있었다.
이번 계략이 성공하면
왕의 분노는 잠시 누그러질 것이다.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누군가가 떠안아야 했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를 흘끗 보며,
이미 다음 변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불의 왕은 그 모든 계산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관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
확인이 생략되는 공간,

그리고
“괜찮겠지”라는 말이
가장 쉽게 나오는 순간.
불은,
그때 가장 잘 자란다.
그리고 그날 밤,
도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불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