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를 들은 날〉

Section. 이별

by 천재손금


“야, 말대가리야.
넌 뭐가 그렇게 바빠?”
운전하며 어렵게 검색한 노래는
첫 소절이 시작되기도 전에 끊겼다.
아, 받지 말걸.
“너 빼고 애들 다 모였어.
너도 올 수 있었잖아.”
“그랬어? 하하… 일이 좀 많아서.”
남자는 대답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이 전화가 길어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야 근데…
민정이 죽었대.”
“누구?”
“아 왜.
너 고등학교 때 사귀었던 그 민정이.”
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남자의 발이 브레이크를 조금 더 깊이 밟았다.
차가 고개를 숙이듯 속도를 늦췄다.
하얗고 마른 몸.
짙은 검은 머리.
웃을 때마다 동그랗게 접히던 눈.
그녀는 늘 교복 소매를 길게 끌어당기며
“춥지 않아?” 하고 묻던 아이였다.
“걔가 왜…?”
놀란 기색이 들키지 않도록
남자는 목소리를 고르게 만들었다.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처럼.
“잘 모르겠어.
갑자기 쓰러졌대.
장례는 조용히 치른다더라.”
“그렇구나…
일찍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산다더니.”
아무렇지 않은 말투였다.
너무 쉽게 나와버린 말이었다.
하지만 그 한 문장을 말하는 동안,
고등학교 운동장 한쪽에 서 있던 오후가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다.
매점 앞 벤치.
같은 이어폰을 나눠 끼고 듣던 노래.
별 의미 없는 말에도 웃던 얼굴.
“졸업하면 뭐 할 거야?”
“글쎄. 그냥… 잘 살고 싶어.”
그 말이 왜 그렇게 오래 남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야, 나 운전 중이야.
조만간 보자.”
전화를 끊었다.
방향지시등이
깜빡, 깜빡
규칙적으로 울렸다.
뒤차의 경적 소리가
몇 번이나 날카롭게 스쳐 갔지만
남자는 그대로 차를 세워 둔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신호는 이미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핸들을 쥔 두 손에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손등이 눈에 띄게 하얘졌다.
그제야 그는 알았다.
자신이 울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눈물은 없었고,
가슴도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대신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만이 또렷했다.
핸들이
유난히
딱딱했다.
마치
이미 놓쳐버린 무언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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