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tion. 이별
처음엔 아주 사소한 습관 하나였다.
사자는 사냥을 마치고도 소 쪽으로 바람을 등지고 누웠다. 피 냄새가 소의 숨에 닿지 않게 하려고.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유난스러울 정도로 조심스러운 배려였다.
소도 비슷했다. 사자가 가까워지면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도, 결국은 다시 한 걸음 다가갔다. 무서워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무서운 채로 곁에 남는 법을 배우는 얼굴이었다.
둘은 서로를 바꾸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서로의 속도를 흉내 냈다. 사자는 걸음을 늦췄고, 소는 걸음을 조금 빠르게 했다. 다름을 존중하는 방식 같았지만, 실은 서로가 불편해할까 봐 먼저 불편해지는 연습이었다.
사자는 풀을 씹는 법을 배웠다. 배우는 척, 더 정확히는 따라 하는 척이었다. 턱은 익숙하지 않았고 위장은 늘 거부했다. 그래도 사자는 소의 옆에서 같은 방향으로 입을 움직이고 싶었다. 같은 식탁에 앉아 있다는 모양새가 사랑을 증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소는 사자의 발소리에 놀라지 않으려 애썼다. 처음엔 몸이 먼저 굳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놀란 표정을 숨기는 연습을 했다. 사자가 상처받을까 봐. “괜찮아”라는 말이 사실은 “괜찮은 척”이라는 걸 소만 알고 있었다.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처음엔. 서로가 원해서 하는 일 같았고, 그래서 다정했다. 조금씩 변하면 사랑도 자리를 잡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다 가뭄이 왔다.
초원은 소리를 먼저 잃었다. 바람이 풀을 쓸지 못했고 풀은 바람을 받아 흔들리지 못했다. 사자는 아침부터 목 안쪽이 거칠었다. 침을 삼켜도 갈라진 흙이 목으로 넘어오는 느낌이 났다.
소는 물웅덩이 쪽으로 걸었다. 어제도 마른자리였다. 소는 발굽으로 흙을 두드려보더니 오래된 습관처럼 고개를 숙였다. 풀 끝에 남아 있던 이슬을 혀로 훑었다. 혀끝에 닿는 건 물이 아니라 먼지였다.
사자는 소의 걸음을 따라갔다. 따라간다는 말을 사자는 싫어했다. ‘함께’라는 말을 더 좋아했는데, 오늘의 ‘함께’는 배가 고픈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오늘은 더 멀리 가야겠지?” 소가 말했다. 담담한 목소리 아래쪽에 마른 소리가 섞여 있었다.
사자는 대답 대신 풀 한 줌을 뜯어 입에 넣었다. 씹는 시늉이었다. 턱이 먼저 지쳤고 위장이 나중에 반항했다. 사자는 삼키지 못하고 뱉어냈다. 뱉어낸 풀은 침으로 잠깐 색을 되찾다가, 곧 다시 말라갔다.
소는 그걸 보지 않은 척했다. 요즘 소는 사자가 ‘약해 보이지 않으려는’ 순간들을 자주 본다. 소는 그게 사랑이라고 믿고 싶었다. 믿고 싶다는 마음이 배고픔만큼 무거웠다.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초원은 더 조용해졌다. 멀리서 사냥꾼 무리가 지나간 흔적이 보였다. 새의 울음도 멈췄다. 사자는 그 흔적을 보는 순간 어깨가 들썩였다. 몸이 먼저 방향을 잡으려 했다.
소가 사자의 옆구리를 툭 쳤다. “그쪽은 가지 마.”
사자는 이유를 알면서도 물었다. “왜?”
소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너는 사자고, 나는 소야’라는 문장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그 문장을 말하는 순간 둘은 끝날 것 같았다. 소는 끝이라는 단어가 겁났다.
대신 소는 다른 말을 꺼냈다. “내가 더 빨리 걸을게.”
웃으려 했지만 웃지 못했다. 웃으면 거짓말처럼 들릴까 봐.
사자는 그 말에 화가 났다. ‘빠르게 걸어준다’는 건 사랑이 아니라 자비처럼 들렸다. 사자는 자비를 원하지 않았다. 원하게 되는 순간부터, 사자는 점점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둘은 마른 강바닥을 따라 이동했다. 강바닥은 길처럼 반듯했다. 길은 늘 목적지를 약속하는 척했지만 오늘은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 소는 한 번 넘어질 뻔했고, 사자는 한 번 침을 삼켜 삼키지 못했다.
해가 기울자 공기가 조금 내려앉았다. 그때부터 사자의 눈이 달라졌다. 원래 사자의 눈은 멀리를 본다. 그런데 오늘의 멀리는 ‘넓이’가 아니라 ‘먹이’였다. 사자는 스스로의 눈을 느꼈다. 그게 부끄러웠다.
소도 사자의 눈을 느꼈다.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눈은 거짓말을 못하니까.
소는 잠깐 사자의 앞에 섰다. 사자의 시야를 가리듯이. 그리고 어색하게 길어진 문장을 꺼냈다. “나… 오늘은 너랑 같이 자고 싶어.”
소는 사실 “무서워”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서워’는 소가 작아지는 말 같아서, 소는 다른 말을 골랐다.
사자는 그 말이 고마웠다. 동시에 잔인하다고 느꼈다. 함께 자는 건 오늘 밤을 넘기자는 말이었다. 오늘 밤을 넘기면 내일이 온다. 내일이 오면 배고픔도, 또 와서 똑같이 말을 걸 것이다.
사자는 고개를 돌렸다. 발톱은 오래전부터 날카로웠다. 요즘은 그 날카로움을 숨기는 법을 배웠다. 숨긴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숨긴 날카로움은 자주, 자신에게 먼저 박혔다.
“너는 내가 착해졌다고 생각해?” 사자가 물었다.
소는 한참을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사자의 앞발을 봤다. 발톱 끝이 흙 속에 반쯤 박혀 있었다. 소는 그 발톱을 모른 척하며 살아온 날들이 있었다. 모른 척하는 동안만 둘은 평화로웠다.
소는 몸을 낮췄다. 그리고 사자의 앞발 옆 흙을 발굽으로 한 번, 두 번 다졌다. 발톱 끝이 더 보이지 않게. 흙이 조금 더 눌렸다. 소는 그 행동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도 모른 척한 채 입을 열었다.
“우리… 약속을 하나 하자.”
사자는 소를 보지 않았다. 소가 눌러놓은 흙을 보았다.
“네가 배고플 땐, 나한테 말해.” 소가 말했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지지 말고.”
사자는 웃을 뻔했다. 말하면 해결될 것처럼 들려서. 사자는 소의 선의를 알았다. 선의가 더 잔인해질 때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말하면.” 사자가 천천히 말했다. “너는 어떻게 할 건데.”
소는 숨을 골랐다. “난 도망치지 않을 거야.”
그리고 소는 말보다 먼저 손을 뻗어 사자의 턱 아래를 건드렸다. 아주 가볍게. 만지면 진정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만지면 ‘우린 아직 여기 있다’고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사자의 턱이 미세하게 굳었다.
소는 급히 한마디를 더 얹었다. “그러니까 넌… 하지 마.”
말이 나가자마자 소는 후회했다. 너무 빨리 떠난 말은 다시 붙잡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나는—”
사자는 뒤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사자의 눈이 아주 잠깐, 얇게 흔들렸다. ‘하지 마’는 단순한 부탁이 아니었다. 사자의 몸 전체를 향한 금지였다. 사자는 갑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또렷하게 떠올렸다. 굶주린 밤에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하지 말라니.” 사자가 낮게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질수록 그 안에 있던 것이 올라왔다. “그럼 너는… 나를 뭘로 사랑한 거야.”
소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급하게, 너무 많이. “아니야. 난 그냥… 같이 있고 싶어서.” 소는 손을 떼었다. 손이 떨어지는 순간 공기가 함께 떨어지는 것처럼 들렸다. “같이 있으려면… 안전해야 하잖아.”
‘안전’이라는 단어에서 사자의 숨이 얕아졌다. 소는 사자를 사랑하려고 하면서 동시에 사자의 위험을 지우고 있었다. 위험을 지운 사자는 사자가 아니었다.
사자는 한 걸음 가까이 갔다가 멈췄다. 가까이 가면 소가 굳을까 봐가 아니라, 가까이 가면 자기 자신이 시작될까 봐였다.
사자는 시선을 내려 자기 앞발을 봤다. 흙 속에 박힌 발톱 끝이 아주 조금 드러나 있었다. 사자는 그 끝을 다시 흙으로 눌러 덮었다. 덮는 손길이 조심스러울수록 더 잔인해졌다.
소는 그 모습을 보고도 움직이지 못했다. 마른 숨을 한 번 삼킨 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무서워.”
그 말은 솔직했다. 그래서 더 늦었다.
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혀끝에 남은 마른 풀 맛을 몇 번이고 삼켰다. 소의 숨이 가까웠고, 그 숨이 가까울수록 사자의 가슴 안쪽이 더 조여왔다.
사자는 한 걸음 다가가려다 멈췄다.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말이 거짓말이 될 것 같았다.
소를 보지 못한 채 사자가 낮게 말했다. “미안해.”
그날 밤, 둘은 마른 바위 그늘 아래 누웠다. 잠은 오지 않았다. 소는 눈을 감고도 사자의 숨을 들었다. 숨은 깊었지만 깊은숨이 늘 넓음을 뜻하는 건 아니었다. 오늘 사자의 숨은 굶주림의 깊이였다.
새벽이 가까워질 때 사자는 일어났다. 발소리를 죽였다. 소가 깰까 봐가 아니라, 깨어 있는 소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자는 몇 걸음 가다가 멈췄다. 그리고 뒤돌아봤다.
소는 자고 있지 않았다. 소의 눈은 열려 있었다. 눈은 ‘가지 마’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는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서 막으면, 막는 순간 사자를 더 잃을 것 같았다. 붙잡을 방법이 없다는 걸 소는 알고 있었다.
사자는 소 쪽으로 한 걸음 돌아왔다. 소의 이마에 코를 갖다 댔다. 아주 짧게. 그리고 물러났다. 그 짧은 접촉이 마지막 약속처럼 느껴졌다.
“내가 돌아오면…” 사자가 말하다가 멈췄다. ‘돌아오면’ 뒤에 붙일 문장이 없었다. 배가 찬 사자가 소를 더 안전하게 사랑할까. 사자는 확신이 없었다.
소가 먼저 말했다. “돌아오지 말아.”
사자는 그 말이 미웠다. 동시에 사랑스러웠다. 사랑은 이상한 방식으로 사람을 살리고,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죽였다.
사자는 새벽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소는 그대로 남았다. 사자가 사라지는 방향을 보지 않으려 했다. 보면 따라가고 싶어질까 봐서였다. 소는 한 번, 아주 작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숨을 내쉬지 못한 채 목 안쪽에서 그 숨을 오래 굴렸다.
해가 떠오르자 초원은 어제보다 더 말라 보였다. 소는 풀을 뜯었다. 풀은 여전히 거칠었고 목은 여전히 마르다. 그런데도 소는 뜯었다. 뜯는 일은 살아 있다는 증거였다.
멀리서 짧은소리가 났다. 포효는 아니었다. 포효처럼 들리길 바라는 소리도 아니었다. 그냥,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살아남았다는 소리였다.
소는 그 소리를 듣고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풀을 뜯던 입을 잠깐 멈췄다. 멈춘 입안에 거친 섬유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소는 그걸 삼키지 못하고 한 번 뱉어냈다. 뱉어낸 풀은 침으로 잠깐 색을 되찾다가, 곧 다시 말라갔다.
소는 그 마른풀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고개를 들었다. 햇빛은 따뜻했지만 따뜻함이 위로가 되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이 있다. 오늘은 둘 다였다.
소는 다시 풀을 뜯었다. 뜯으면서도, 방금 뱉어낸 풀의 모양을 잊지 못했다. 소는 생각을 거기까지만 했다. 오래 생각하면, 다시 맞추고 싶어질 것 같아서였다.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으니까. 처음엔.
초원은 조용했다.
조용한 건 평화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소는 그 얼굴이 가끔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도, 오늘은 그 거짓말을 입안에 넣고 씹기로 했다. 삼키지 못할 걸 알면서도.
소는 고개를 숙였다. 흙 위로 길게 드리운 자기 그림자를 한 번 밟고 지나가며, 살아 있는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