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반납대 위의 반듯함
강자영은 책을 반납받을 때 사람의 손부터 본다. 급한 사람은 책을 내려놓는 순간 손을 떼지 못하고, 미련이 남은 사람은 손바닥을 한 번 더 얹는다. 사서로 일하며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이었다. 그 손이 책을 다루는 방식은 대개 말보다 먼저 그 사람을 설명했다.
그날도 그랬다.
“반납이요.”
남자는 『백야행』 한 권을 반납대 위에 올려놓았다. 책은 반듯했다. 모서리 하나 어긋나지 않게, 각을 맞춰야 마음이 정리되는 사람처럼. 자영은 바코드를 찍으며 그의 손을 흘끗 보았다. 떨림도, 망설임도 없었다. 필요한 힘만 정확히 쓰는 손이었다.
자영은 그 손이 낯설지 않다고 느꼈다. 얼굴이 아니라 행동으로 기억나는 이용자였다. 외국어 원서를 자주 빌리던 사람. 반납할 때면 책을 늘 반듯하게 맞춰 내려놓던 사람. 말을 거의 하지 않았고 시선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남는 사람이었다.
자영이 그를 기억하는 건 아주 사소한 한 번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예전부터 자영을 유심히 보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자영도 그 시선을 가볍게 넘겼다.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의 관심 표현일 수도 있다고, 혹은 그냥 낯을 가리는 사람이 시선을 둘 곳을 찾는 거라고. 그런데 몇 번이 지나자 결이 달라 보였다.
그의 시선은 자영의 얼굴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늘 자영의 손과 동작을 따라왔다. 바코드를 찍는 순서, 반납된 책을 펼쳐 페이지를 훑는 방식, 끼워진 종이를 찾아내는 습관 같은 것들.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을 보는구나’—자영은 어느 순간 그렇게 느꼈다.
그 확신이 생긴 날이 있었다. 원서 한 권이 책등부터 벌어져 있던 날, 자영이 무심코 말했다.
“이 책, 종이가 얇아서요. 넘길 때 손에 힘이 조금만 들어가도 자국 나요.”
남자는 그 말을 듣고 페이지를 넘기던 손을 한 번 멈췄다. 고개를 들지는 않았지만, 그날만큼은 ‘들었다’는 기색이 있었다. 그리고 자영이 책을 정리하는 손놀림을, 마치 외우려는 사람처럼 잠깐 따라가던 시선도.
자영은 손을 멈춘 채, 남자가 무엇을 더 할지 잠깐 지켜봤다.
남자는 작은 봉투를 함께 내밀었다. 초콜릿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자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야, 말하네.’
그런데 곧바로 의아해졌다. 보통 이런 순간에는 말이 조금 더 따라온다. “혹시 연락처 좀…”이라든가, “저기요, 잠깐만…”이라든가. 최소한 ‘나’가 끼어들어야 할 문장인데, 그는 끝까지 “부탁드립니다”로만 남았다. 부탁의 대상이 자영이 아니라, 자영이 하는 ‘일’인 것처럼.
공손한 말투였다. 그러나 고백을 앞둔 사람 특유의 숨 고르기나 웃음은 없었다. 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감정이 아니라 절차를 수행한 사람처럼, 해야 할 일을 끝낸 사람처럼.
자영은 봉투를 받아 들고도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음료수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고 초콜릿을 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자영에게는 늘 비슷한 패턴이었다. 감정이라기보다 업무에 가까웠다. 책 속에 끼워진 쪽지를 찾아 제거하는 일, 누군가의 오해나 민원을 미리 지우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근처에서 동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머.” 누군가가 숨을 삼키듯 말했다.
“부럽다.” 다른 사람이 따라붙었다가, 곧 익숙한 투로 웃었다.
“근데 자영 씨는 진짜 이런 거 자주 받는다. 또야, 또.”
“그러게. 여기서 일하면 초콜릿이 그렇게 나오나?”
장난 섞인 말들이 몇 개 더 오갔다. 그 반응들이—놀람이라기보다 ‘이번엔 뭐야’에 가까워서—자영은 더 말이 없어졌다.
자영은 봉투를 서랍에 넣고 『백야행』을 펼쳤다. 반납된 책을 확인하는 건 늘 하던 일이었다. 페이지를 훑고 가볍게 털었다.
툭.
이번엔 쪽지가 아니라 투명한 얇은 필름 조각이 떨어졌다. 자영은 본능적으로 그걸 손가락 끝에 올려 빛 쪽으로 돌렸다. 도서관의 조명은 밝지 않았지만, 투명한 것일수록 빛 앞에서는 성격이 드러난다.
아무 글자도 없었다. 그런데 모서리 한쪽에 아주 작은 눌림이 있었다. 손톱으로 만든 듯한, 종이를 상하게 하지 않는 최소한의 흔적. 그리고 가장자리에는 아주 얇게 잘린 결이 남아 있었다. 찢은 게 아니라 칼로 자른 흔적이었다.
자영은 잠깐 숨을 멈췄다. 누군가가 ‘아무것도 아닌 척’ 남기려고, 오히려 더 공을 들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건 우연히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다. 들어갔다면, 들어가게 만든 손이 있다.
자영은 피식 웃었다.
“별 걸 다 하시네.”
필름을 손가락 끝에 올려 돌리다, 자영은 작게 말을 덧붙였다.
“근데… 이걸 왜?”
“장난인가?”
“아니면… 어디에 쓰는 거지.”
말은 혼잣말이었지만, 스스로도 그 질문이 너무 또렷해서 잠깐 멈칫했다. 손끝이 먼저 굳었다. 필름은 테이프처럼 끈적이지도 않고, 종이처럼 구겨지지도 않는다. 이건 글을 담는 물건이 아니라, 어딘가의 틈을 건드리기 위한 물건이었다. 붙어 있는 것을 찢지 않고 들추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열어’ 보게 만드는 재질.
자영은 그 사실이 기분 나쁘게 정확하다고 느꼈다. 사서라서 더 그랬다. 책은 누군가가 남긴 것을 가장 안전하게 숨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 자영은 필름을 다시 끼워 넣지 않고, 책갈피처럼 접어 서랍에 따로 넣었다. ‘분실물’이 아니라, ‘도구’처럼.
그 남자가 초콜릿 봉투를 내밀던 순간의 눈이 떠올랐다. 사람을 좋아하는 눈이 아니라,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전달할 것’을 전달해야 하는 사람의 눈. 그래서 더 싫었다.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딱 맞게 조여 오는 느낌이 싫었다.
그 눈을 떠올리면 자영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정리되지 않은 서류가 책상 한가운데 놓인 것처럼 마음이 계속 걸렸다. 설명할 수 없는 찜찜함이 서랍 속 초콜릿 봉투처럼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느낌. 자영은 그 소리를 지우려는 듯 서랍을 한 번 더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때, 반납대 위에 놓인 책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백야행』.
자영은 책등의 글자를 한 번 더 읽었다. 백야행.
백야.
어제 주영이 전화기 너머로 꺼냈다가 끝내 삼켜버린 단어가, 책 제목에 그대로 박혀 있었다.
어젯밤 통화에서 주영은 거의 숨을 고르듯 말했다.
“우리 관내에 ‘백야’라는 데가 있거든.
거기서 살인 사건이 났는데…”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주영이 먼저 끊은 것도 아니고, 자영이 끊은 것도 아니었다. 둘 다 말이 더해지는 순간을 피하듯, 침묵이 통화를 닫아버렸다.
자영은 그 침묵을 떠올리며 다시 책 등을 봤다.
『백야행』.
백야.
주영이 삼키고 지나간 단어와, 소설 제목의 단어가 같은 모양으로 겹쳐 있는 게 이상했다. 우연이라면 너무 정직했고, 우연이 아니라면 너무 노골적이었다.
자영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겹친다고 해서 이어지는 건 아니라고. 단어는 단어일 뿐이라고. 그런데 손끝이 먼저 차가워졌다. 서랍 속 필름 조각이 떠오르면서, 단어가 아니라 ‘방식’이 더 걸렸다. 남기되 이름은 남기지 않는 방식. 들키지 않으면서도 발견되길 바라는 방식.
자영은 반납대 위에 손을 올린 채 잠깐 눈을 감았다. 주영이 전화를 끊기 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순간이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떠올랐다. 쌍둥이라는 건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말보다 먼저, 설명보다 먼저, 상대의 감정이 몸 어딘가에 먼저 닿는 순간.
그 순간 자영은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 불편한 건 ‘필름’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남자가 남긴 방식이, 주영이 하던 일과 닮아 있어서였다. 누군가의 손에서 넘어온 흔적을 정리하고, 남겨진 것을 찾아내고, 말해지지 않은 것을 ‘증거’로 바꾸는 일.
주영이 며칠째 집에 못 들어오는 이유도, 어쩌면 그런 ‘남겨진 것’들 때문일 텐데.
그리고 이상하게, 그 남자의 눈을 떠올릴 때마다 자영의 머릿속에는 전혀 다른 장면이 하나씩 따라붙었다. ‘백야’보다도 더 먼저, 그 남자가 자영의 일상 안으로 들어온 순간. 사건이 일어나기 훨씬 전—도서관 구내식당에서였다.
도서관 구내식당. 그때는 아직 주영이 사건을 입에 올리기 전이었고, 자영도 자신이 이런 식으로 어떤 밤의 가장자리에 서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하던 때였다.
점심시간의 식당은 늘 소란했다. 트레이가 부딪히고, 국을 뜨고, 의자가 끌렸고, 사람들의 말은 대개 별 의미 없이 웃음과 함께 흘러갔다. 그런데 그날 자영은 누군가의 시선이 한 번 길게 머무는 걸 느꼈다. 그 남자였다.
정확히는 ‘자영’이 아니라—자영과 주영을 번갈아 훑는, 잠깐의 멈춤이었다.
똑같이 생긴 얼굴이 두 개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겐 그 정도로 낯설고, 신기한 일일 수 있다. 자영은 그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주영은 밥을 몇 번 뜨다 말고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고, 자영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언니, 오늘도 집 못 들어가는 거야?”
주영은 물 한 모금을 삼키고, 대답 대신 김이 빠진 숨을 한 번 내쉬었다.
“모르겠어. 상황 봐야지.”
“어제도 ‘상황’이더니.” 자영이 웃지도 못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가 또 전화했어. 그냥 목소리만 듣고 싶다는데, 언니는 전화도 못 받고.”
주영은 잠깐 눈썹을 찌푸렸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 밥을 떠먹었다.
“미안. 요즘은… 그래.”
자영은 그 ‘그래’가 제일 싫었다. 설명을 줄인 말, 끝내자는 말.
“언니, 나 진짜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냥 걱정돼서 그래. 잠은 자? 밥은?”
주영은 젓가락 끝으로 반찬을 건드리며 말했다.
“강력반은 원래 그래.”
자랑도 불평도 아닌, 그냥 직업을 말하는 톤이었다.
자영은 더 낮게 덧붙였다.
“원래 그런 거 말고… 언니가 요즘 너무 얼굴이 달라 보여. 집에도 못 오고, 연락도 끊기고. 그게 ‘원래’로 넘어갈 일이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옆자리에서 젓가락이 아주 잠깐 멈추는 소리가 났다. 소란 속에 묻힐 정도로 작은 정적이었다.
그 남자가 옆자리에 앉았다. 트레이가 내려앉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한 번 접히는 느낌이 났다. 자영은 고개를 들지 않았지만, 대화가 그쪽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목소리를 한 번 더 낮췄다.
그런데도 ‘강력반’이라는 단어가 지나가는 순간, 남자의 손이 트레이 위에서 이상할 만큼 반듯해지는 게 보였다. 젓가락이 멈췄고, 물컵을 놓는 각이 맞춰졌다. 듣고 있다는 표시를 굳이 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그러면서도, 방금 들은 말을 손끝으로 붙잡아두는 사람처럼.
자영은 순간 불쾌했다. 누가 엿듣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 건 몸이 먼저 안다.
그런데 그 불쾌함 사이로, 아주 얇게 다른 감정이 끼어들었다. ‘강력반은 원래 그래’라고 말하던 주영의 얼굴. 자랑도 불평도 아닌, 그냥 제 일을 말하던 톤. 이상하게도 자영은 그 순간, 언니가 조금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더 싫었다. 그 남자가 그 단어를 ‘정보’처럼 주워가는 걸 보는 게. 오늘 『백야행』을 받는 순간, 그때의 감정까지 함께 떠오른 건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기억이 그렇게 늦게 따라붙는 날이면 자영은 더 싫었다. 감정이 먼저 남고, 이유는 한참 뒤에야 도착한다. 구내식당에서 느꼈던 불쾌함도, 이상한 자랑스러움도—그때는 그냥 지나가는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백야행』을 받는 순간, 어젯밤 주영의 통화 속에서 삼켜졌던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백야.’ 말로는 끝내지 못했던 그 단어가 책등에 그대로 박혀 있는 게 이상했다.
그 남자의 손끝이 ‘강력반’에서 멈췄던 장면까지 겹치자, 우연이라고 넘기기엔 너무 딱 맞았다. 정직한 우연은 가끔 더 꺼림칙하다. 그래서 자영은, 그냥 지나가게 둘 수가 없었다.
2화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