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쌓이면

by 주석현실

우리는 가끔 그런 말을 한다.

“눈만 높아가지고.”


맛집을 고를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작은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예전처럼 쉽게 “이 정도면 됐지”가 잘 되지 않을 때.


좋은 걸 몇 번 경험하고 나면

기준이 생긴다.

그리고 기준이 생기면

타협이 어려워진다.


커피의 산도와 향을 구분하게 되고,

그림의 색감과 구도를 보게 되고,

사람의 말투 안에 담긴 태도를 읽게 된다.


그렇게 겹겹이 쌓인 취향은

어느 순간 나를 까다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차라리 몰랐을 때가 더 편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그냥 좋으면 좋은 줄 알았고,

싫어도 크게 따지지 않았는데.


그런데 그 때, 수화기 너머로 그가 말했다.


“그게 왜 안 좋은 거야?

그만큼 더 많이 경험했고, 더 많이 느꼈다는 거잖아.

선별할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좋은 거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췄다.


눈이 높아진 게 아니라

눈이 깊어진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좋은지 아는 건

무엇이 나와 맞지 않는지도 안다는 뜻이고,

그건 결국 나를 더 잘 안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는 건

쉽게 아무거나 선택하지 않겠다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안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의 결을,

내가 설레는 대화의 온도를,

내가 오래 머물고 싶은 사람의 분위기를.


그래서 가끔은 조금 외롭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 더 선명하다.


눈이 높아진 게 아니라

나는 그냥

내 삶을 더 천천히 음미할 수 있게 된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행복의 해상도가 조금 더 높아진거라고.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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