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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스 Aug 21. 2023

서초동 생활 적응기

다시 수습, 아니 두번째 수습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날 자의 반, 타의 반 법조팀으로 인사이동했다. 아침 7시 20분, 고검 기자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으나 가슴은 수습으로 돌아간 듯 미친듯이 뛰었다. 실은 수습 기간 내내 서초동에서 보냈으니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서초경찰서가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기자실도 지난 2019년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출근해서 내가 오늘 무슨 일을 할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그때나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모르겠는 지금 상황 역시 똑같다.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법조팀은 검찰팀과 법원팀으로 나뉜다. 검찰팀은 경찰서에서 송치된 사건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수사하는 검찰의 수사 상황을 취재한다. 수사 상황은 경찰이나 검찰이나 아주 내밀한 부분이라 새로운 팩트를 얻어내기 쉽지 않고, 취재원 입장에서도 아직 판결로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데 극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반면 법원팀은 검찰이 기소한 사건을 법정에서 다시 따진다. 비공개였던 그간의 범죄 사실과 피고인의 반박, 검찰의 입장은 이제 더 이상 내밀하지 않다. 법정 내에서의 한마디 한마디를 기자들은 놓치지 않고 노트북에 받아 쓰기 바쁘다. 사건의 제2막이 열리는 것이다.


입사 이후 줄곧 경찰만 취재해와서일까, 나는 검찰팀으로 배정됐다. 경력 이틀에 불과한 검찰 말진은 취재원이 아니라 기자를 취재하기 바쁘다. 내가 맞딱뜨릴 검사는 이 사안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으나 입을 열지 않을 취재원이고, 의뢰인이 원치 않는 한 입을 열지 않을 변호인 역시 기자에게 곁을 내줄 리 만무하다. 결국 나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는 타사 기자의 얼굴을 쫓는다. 눈앞이 캄캄한 것이 꼭 수습 때와 같다.


잘 모르니 나서서 질문하기 두려웠다. 수사는 경찰기자 시절부터 친하지 않은 분야였다. 이건 방송기자의 특성과도 연결된다. 나의 취재 영역은 형사/강력 사건이다. 폭행, 절도, 살인, 강간, 성폭행, 방화 등이 그 예다. 대부분 CCTV나 블랙박스, 목격자 영상들을 구해야 보도할 수 있었고, 비교적 방송으로 풀어내기도 수월한 주제다. 하지만 법조팀에선 그런 사건들은 관심 밖이다. 이미 팩트들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나올만큼 나왔고, 다른 사건에 비해 선악도 비교적 명확하다. 판사의 선고가 이례적이지 않다면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대신 법조팀에서 중요한 건 비리 수사다. 정치권 비리나 대기업의 횡령 등 비교적 타임라인이 길고 첨예안 쟁점 사안들로 복잡하다. 누군가 잘 정리해 놓은 기사 한 줄 읽는 걸로는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없으며, 디테일한 질문을 할 수 없다. 매일 나의 무식을 깨닫고 반성하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희망은 내가 막내라는 점이다. 아직은 잘 몰라도, 실수를 해도, 혼나도 부끄럽지 않은 막내다. 실컷 혼나고(?) 마음껏 물어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이 출입처에서 막내라는 것이지, 기자로서는 결코 막내가 아닌 나의 현실도 알고 있다. 다만 좋은 선배들 아래에서 막내로 시작하는 행운을 얻었다. 덕분에 다급한 내 SOS에 선배들은 열렬히 응답해주고, 나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똑똑한 막내로 거듭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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