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헌나8

계엄에서 탄핵, 파면까지

by 주스

2024년 탄핵(헌나) 사건 중 8번째로 접수된 사건,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이다. 온국민이 다 아는 사건번호라니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웃음을 거두고, 온 국민이 똑똑하게 기억할 2024년 12월 3일과 2025년 4월 4일을 더 늦기 전에 기록해본다.


2024년 12월 3일

창원 출장(명태균 이슈로 창원지검에 며칠 내려 갔었다)을 마치고 사흘간 휴무를 보내고 있었다. 다음날 출근을 앞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 계획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드라이기 소리를 뚫고 남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계엄이라는데?


드라이기를 멈추고, 동생의 아이패드로 눈길을 돌렸다. 대통령의 입에서 계엄을 말하고 있었다. 어? 이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순간, 팀방에서 카톡이 울리기 시작했다. 출근을 직감했다.


머리만 서둘러 말린 뒤 회사로 향했다. 국회의사당을 거쳐 광화문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헬기 소리를 들었다. 외투를 입었는데도 팔에는 소름이,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났다. 차로 꽉 막힌 반대편 차선과 국회 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 앞에 있는 수많은 경찰병력까지. 아찔했다. 더 늦기 전에 가족들에게 전화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나의 무탈을 당부하는 메시지로 황급히 마무리됐지만, 회사에서도 콩닥대는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특보에 이용할 영상들을 모니터링하며 업로드(이미 사건팀과 국방부, 국회 출입기자들은 현장으로 뿌려졌고 법조팀인 나는 회사로 갔다) 했다. TV 화면에는 무장한 계엄군이 로텐더홀로 진입하고, 국회 관계자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막아내는 모습들이 끊임없이 생중계됐다. 누구 하나 다치지 않고선 끝나지 않겠다 싶어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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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서로의 충혈된 눈을 본 건 자정을 지난 새벽 1시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을 의결하진 않았지만, 급한 불은 끈 셈이다. 특보 순서를 보며 번갈아 쪽잠을 청하다 다시 국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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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해제안이 의결됐지만 놀란 시민들은 국회의사당 앞을 떠나지 못했다. 생전 처음 보는 호외가 신기한지 여기저기서 찰칵! 소리도 들렸다.



2025년 1월 6일

인사 이동으로 나는 서초동에서 여의도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검찰에서부터 함께 일했던 타사 기자(다른 당 출입)에게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곳 생활의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무도하다. 법과 원칙이 없어.
무엇보다 스피커 과잉이야.


아침 8시 20분부터 공식 일정으로 시작해 퇴근 직전까지 급하게 추가되는 기자회견, 브리핑을 마친 후에도 몇 차례에 걸친 온마이크 백브리핑, 돌아서면 나오는 갖가지 논평… 소화를 시키지 못한 채 꾸역꾸역 무언갈 넣어대는 체할 것 같은 느낌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거다. 마치 수습처럼 눈물을 펑펑 쏟으며 국회에서의 일주일 인상평을 얘기했다. 그러다 내 시야에 들어온 풍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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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청 한켠에는 아직도 이렇게 부서진 의자와 비품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마치 2024년 12월 3일은 여기 있어, 라고 말하듯이. 다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누군가는 그날 집에 들어가지 못할 각오를 하고 이 민트돔으로 들어왔었다. 그런 많은 이들의 소신이 묻어있는 곳이라는 걸 깨닫자 눈물이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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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공수를 나눈 말싸움터에서 흩뿌려진 워딩을 찾아내는 기사도 많이 썼다. 양심고백이든 진실게임이든 계엄 국조특위에서 쏟아진 증언들은 대통령의 형사재판은 물론 탄핵사건에도 영향을 줄 터였다. 모니터에 박힌 무시무시한 워딩을 보고 있노라면, 무장한 계엄군이 발 딛었던 곳이 여기였지 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나의 정치부행은 계엄 당일(엄밀히 말하면 새벽이었으니 다음 날) 국회의사당 앞에서 중계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던 미래였다. 새로운 부서에서의 적응은 매우 혼란스럽고 정신 없었으나 이따금씩 계엄의 흔적들이 튀어나올 때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소명의식이 불끈 샘솟았다.



2025년 3월 28일

예상보다 탄핵선고가 늦어지면서 주말마다 대한민국은 두쪽으로 쪼개졌다. 광화문과 여의도는 각자의 메아리만 퍼졌다. 헌법재판소 앞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일이나 주말, 밤낮 가리지 않고 양 진영에서 릴레이 시위를 시작했다. 누구는 단식을, 또다른 누구는 삭발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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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하루들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만을 확대 재생산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말 그러했는지는 시청자가 판단할 몫이다.



2025년 4월 4일

대통령 탄핵사건 선고일과 선고 결과에 대한 온갖 지라시와 받글들이 난무했던 몇 달이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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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심판 첫 변론준비기일에 나는 헌법재판소 중계석에서 워딩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백일 남짓 시간이 흘러 선고일, 나는 국회 본청 복도 끝에 앉아 실시간으로 대통령의 파면을 들었다. 주문 낭독과 동시에 왼쪽 당 회의실에선 환호가 터져나왔고, 오른쪽 당은 침묵했다. 탄핵을 눈과 귀로 경험한 하루였다.


22분 동안 읊은 준엄한 심판이 하루종일 국회를 감쌌다. 조기대선의 '조'자도 공식적으로 꺼내지 못하던 국민의힘도 대통령 파면으로 여당의 지위를 잃었다. 정권을 재창출하느냐 다시 탈환해오느냐, 각 정당들의 본격적인 선거 경쟁이 시작됐다. 그리고 그속에서 아직 쪼렙인 나는 매일 역사책 위를 (아주 살금살금)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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